이동훈 원장
이동훈 원장

산에 있는 여러 풀 중 질병에 도움이 되는 약초를 찾아 채취한 뒤 말리는 작업을 해서 보관하는 과정은 많은 힘이 들었다. 특히 최근에도 건강기능식품에 백수오와 비슷한 이엽피우소가 혼입돼 문제가 발생한 경우가 있을 정도로 약초와 독초의 감별은 쉽지 않았다.

<조선왕조실록>에는 실록 숙종 37년 8월 3일자에 영동·영남에서 진상하는 인삼을 붙여서 만든 것도 있고, 서북의 인삼은 푹 삶아 쪼개서 도라지 등을 넣어 엄히 처벌하자는 내용이 보인다.

약초를 찾는 것보다 더 어려운 것은 질병의 원인을 밝히는 것이었다. 상처나 골절과 같은 직관적으로 보이는 경우 원인이 명확하지만, 복통이나 두통, 발열과 같이 보이지 않은 내부 장기의 이상은 쉽게 알 수 없었다.

<사기> 열전에 나오는 편작의 경우 장상군이라는 사람이 준 약을 먹고 투시 능력을 얻어 몸속의 질병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편작은 진맥을 하는 척하면서 투시 능력으로 오장육부의 이상을 알아내 치료하며 큰 효과를 보기 시작했다.

편작은 귀족들을 치료하면서 큰 명성을 떨쳤으나, 이를 시기하던 진나라의 태의령이 보낸 자객에게 암살되고 말았다. 편작과 더불어 명의로 이름을 떨치던 화타 역시 조조와 같은 고위 관료의 질병 치료를 주로 했다.

질병을 진단하고 치료하는 데 많은 비용이 발생했기에 일반 서민들은 의사를 찾아 도움을 요청하기 쉽지 않았다. 화타와 비슷한 시기 오나라에서 활동하던 동봉은 조금 달랐다. 환자를 진료하면서 치료비를 받지 않고 대신 집 근처에 살구나무를 심게 했다.

살구나무를 치료비 대신 삼은 것이다. 얼마 뒤 동봉의 집 근처에는 수만 그루의 살구나무가 자라 숲을 이뤘다. 살구나무숲을 뜻하는 한자어 행림(杏林)은 의사의 인술을 대변하는 한자어로 자리 잡게 되었다.

근대 이전의 의학은 일종의 경험 의학으로 치료 효과가 일정하지 않았다. 동일한 증상도 서로 다른 질병일 수 있었고, 세균과 바이러스에 대응 방법이 없었기에 자연적으로 회복하는 데 도움을 주는 방법이었다. 때로는 잘못된 치료 방법으로 질병을 악화시켜 위험한 상황에 빠지게 하거나 사망에 이르는 경우도 있었다. 조선 효종은 어의였던 신가귀가 침을 놓다가 동맥을 찌르는 바람에 과다 출혈로 급사하기도 했다.

세균 발견과 질병 예방은 혁명적 사건

서구도 상황은 비슷했다. 기원전 2000년경 제작된 바빌론의 <함무라비 법전>에는 의사의 진료비가 기록돼 있는데, 귀족은 은 10세켈, 평민은 5세켈, 노예는 2세켈이었다. 은 1세켈은 한달 일한 급여에 해당되었으니 상당히 비싼 편이다.

전문적인 의사들의 접근은 고위 관료나 귀족들에게 집중되었다. 일반 서민들은 전해져 내려오는 처방법이나 경험 많은 노인들의 의견으로 치료가 진행되기도 했다. 중세 서구의 수도원들은 빈민구제뿐 아니라 의료기관 역할도 했다. 당시 귀족들은 수도원과 병원 등을 지원하면서 간접적으로 지역 주민들의 건강에 도움을 주었다.

18세기 산업혁명과 과학발전은 의료계에도 큰 영향을 주었다. 현미경을 통한 세균의 발견과 질병이 예방되고 치료될 수 있다는 사실은 의료계의 일대 혁명적인 사건이었다. 과거에 사망했던 환자들은 완치돼 다시 일상으로 돌아갔다.

환자들은 외과적 처치와 항생제 등으로 회복될 수 있었지만, 회복되는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의료비 역시 함께 증가했다. 치료 대상자가 늘어나기 때문에 당연한 일이었다. 새롭게 개발된 신약 가격 역시 고가였다.

1850년 미국 의료비는 GDP 대비 2.2%에 불과했으나 100년 뒤인 1950년에는 4%로 증가했다. 1980년에는 8.9%로 30년 만에 또다시 두 배 증가했다. 영국 역시 1950년 3%대에서 2014년 10%로 증가했다. 우리나라도 1970년 2.6%에서 점차 증가해 1990년 3.7%까지 늘었다. 선진국과 큰 격차가 있었으나 의약분업 이후 급격하게 증가해 2020년 8.4%까지 빠르게 늘었다.

한국은 어려운 경제 상황으로 의료보험 도입 초기에 의료보험료를 조금 내고 혜택도 적게 받는 정책을 시행했다. 하지만 1990년대 민주화 이후 복지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면서 건강보험 적용 분야가 점점 증가했다. 반면 건강보험료율 인상은 소극적으로 진행되면서 건강보험 재정은 불안정해졌다.

규제 앞서 정부 지원금 지급 필요

2000년 의약분업이 시행되면서 6만여 명이나 되는 약사들이 건강보험 재정에 편입됐다. 의약분업은 어렵던 건강보험 재정에 치명타를 주었다. 2001년 2조4000억원의 적자가 발생하면서 기금은 고갈되고 1조8000억원의 누적 적자가 발생했다.

1990년대 후반부터 건강보험 대상 인구의 급격한 확대로 매년 적자가 발생하고 있는 상황에서 무리한 의약분업을 추진한 결과였다. 정부는 과잉진료와 항생제 오남용을 지적하며 의료계에 책임을 돌렸지만 2000년 처방의약품 판매 1위는 항생제가 아닌 고혈압 치료제였다. 고혈압, 당뇨, 고지혈증, 혈액순환제 등이 가장 많이 처방되고 있었다. 모르고 있던 만성질환자들이 의약분업으로 의료기관을 방문해서 진단되거나 치료를 시작한 것이다.

건강보험 재정을 확보해야 하는 건강보험공단은 의료기관에 대한 자의적인 규제를 늘렸고, 의학적인 내용과 다른 법규들은 진료 현장에서 갈등을 증가시켰다. 위중한 환자를 구하기 위한 치료 방법 중 보험 규정을 위반하는 경우 치료비를 받을 수 없었다.

중증 환자를 많이 진료할수록 적자가 발생하는 모순적인 상황이었다. 한편, 의료비는 줄이면서 의료의 질은 높이라는 이율배반적 규정은 다인실을 늘려 병원비를 싸게하고, 1인실을 늘려서 감염병을 예방해야 하는 모순된 상황마저 일상이 되었다. 감염관리에 대한 무관심은 급기야 감염관리료도 없애고 코로나19 검사를 해야 하는 상황이다.

감염관리나 필수 의료가 아닌 한국 의료계 전반적인 현상이다. 사람보다 기계의 가치를 높게 평가하고 전문가보다 획일적인 규정을 강조한다면 경험 많은 의료진이 살아남을 수 없다. 올해도 낮은 수준의 건강보험료 인상을 결의하면서 규제를 생각하고 있다.

현행 국민건강보험법 108조에는 국가가 해당 연도 보험료 예상 수입액의 100분의 14를 지원, 건강증진기금에서 100분의 6을 지원하도록 했다. 한국 정부는 지금까지 이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아 미이행된 금액이 30조원을 넘고 있다.

편작은 치료할 수 없는 불치의 경우 중 하나로 몸을 가벼이 여기고 재물을 아까워하는 경우를 꼽았다. 동봉은 살구나무로 진료비를 대신 받았는데, 현재 한국의 의료비는 살구나무보다 더 싼 편이다. 건강과 안전을 위한 투자가 필요하고 정부도 규제할 것이 아니라 법에 규정된 정부 지원금부터 지급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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