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훈 원장
이동훈 원장

<삼국유사>에 신라 헌강왕 때 동해 용왕의 아들 처용 이야기가 등장한다. 처용은 신라에서 관직을 얻어 봉사했으며 역신을 춤을 춰서 물리쳤다는 고사가 <삼국유사>에 나온다. 처용에 대해서 여러 설이 존재하나 전해 내려오는 특이한 외모는 외부에서 이주해 온 사람일 것이라는 주장이 있었다. 특히 중동 지역 출신일 것이라는 학설이 제기되기도 했다.

당시 아라비아 상인들이 신라까지 찾아왔다는 기록도 있다. 876년 중국 남부 지역에서 발생한 ’황소의 난‘은 해안가를 중심으로 무역을 하던 이슬람인들에게 큰 피해를 주었다. 일부는 탈출해 다른 지역으로 이주하는데 그중 하나가 한반도였을 것이라는 추정이다.

중동 지역은 당시 동서양 문명이 교차하면서 크게 발전했고 의학도 그중 하나였다. 신라에는 이슬람 상인을 통해 새로운 약초와 문물이 들어왔고, 전염병에 대응하는 방법도 소개된 것으로 보인다. 이런 것들이 설화적 요소와 합쳐지면서 처용무 형태로 전래된 것으로 보고 있다.

전염병의 유행은 집권층에게는 위협적인 요소 중 하나였다. 제례와 정치가 하나로 생각되었던 시절에는 지도부가 퇴출되기도 했다. 전염병 관리에 특별히 신경을 쓸 수밖에 없었으며, 역병이 발생하는 경우 해당 지역을 봉쇄해 전파를 막아보려는 시도가 있었다. 전 세계를 지배했던 몽골족도 중국 남부에서 시작된 전염병에 흔들리면서 무너졌으니 정치권에서는 역병의 유행에 각별하게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전염병에 대해서 체계적인 접근이 가능했던 것은 현미경으로 미생물 관찰이 가능해지면서 전염병의 원인이 하나씩 밝혀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눈으로 보이는 세균이 있음에도 나쁜 냄새로 전파된다는 악취설이 사라지기까지 많은 세월이 필요했다. 파스퇴르는 가는 입구를 가진 백조목 플라스크로 생물이 저절로 생기지 않고 단지 공기의 유통만으로 발생되지 않는다는 것을 입증해야만 했다.

과학적인 접근으로 전염병이 정복되면서 인류의 활동 영역은 넓어졌다. 과거 열대지역은 말라리아 등 열대성 전염병으로 사람들의 접근이 쉽지 않았다. 키나나무에서 추출된 키니네라는 항말라리아제 개발로 말라리아 치료 및 예방이 가능해졌고, 말라리아가 모기에서 전파된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과학적 결과를 얻은 서구 열강은 본격적으로 적도 지역으로 진출하기 시작했다. 열대 지역에 위치했던 국가들은 과거와 차원이 다른 침입에 시달려야 했고, 대부분 식민지화되고 말았다. 과학적으로 전염병을 방역할 수 있게 되자 그 힘이 더 커진 것이다.

우리나라에 체계적인 방역이 본격적으로 도입된 것은 구한말이었다. 역병, 돌림병으로 불리던 전염병의 이름을 처음 알게 된 것은 1821년 순조 21년에 유행한 호열자였다. 10만 명 이상 사망한 극심한 전염병은 청나라부터 들어와서 서북지역에 큰 피해를 주었다.

‘콜레라’는 청나라에서 한자로 음차한 ‘호열랄(虎列剌)’이 후에 호열자(虎列刺)로 불리게 되었는데, 마지막 한자가 비슷해서 생긴 오독으로 보여진다. 호열자, 즉 콜레라가 수인성 질환으로 인한 것임을 알았지만 체계적인 방역은 어려웠기에 당시 조선은 막대한 인명 피해가 발생했다.

구한말 혼란기에 도입된 서구 의학의 뛰어난 치료 효과에 감탄했지만 일제 식민지배가 이어지면서 발생한 거부감과 강압적인 의료 정책으로 인한 부작용이 발생했다. 위생을 개선하고 전염병을 예방하는 방향성은 맞았지만, 총칼로 무장한 경찰들이 위생경찰이라는 이름으로 나타났을 때 백성들에겐 상당한 두려움이 발생할 수밖에 없었다.

최근 코로나19 재유행으로 방역의 변화가 많았다. 지난 3년간 방역 지침 중에 처음 경험하는 일인 만큼 과도한 방역 대응도 있었고, 때로는 부족한 과학적 자료로 인한 오류도 빈번했다.

과학적 방역과 정치적 방역은 어느 시대나 공존한다. 전염병 억제를 강화하면 사회 경제에 큰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고, 이를 완화하면 다시 유행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런 상황을 잘 조절하는 것은 의학의 영역을 넘어선 우리 사회 전체의 결정이고 정치의 영역일 것이다. 최근 확실한 것은 최근 코로나19 치명률이 과거만큼 높지 않다는 점과 이미 인구의 절반이 넘는 확진 경험자가 발생한 상황이다.

물론 다가오는 겨울 재유행 가능성은 있다. 그러나 현재와 같은 방역 시스템을 지속적으로 유지할 지 아니면 우리의 일반적인 의료체계로 녹여낼지는 검토해 볼 문제이다. 지난 2년 넘는 기간 동안 우리나라는 코로나19 관리 병상을 만들었다가 부수었다가 또다시 만들기를 반복하고 있다. 감염 관리는 공짜가 아니다. 많은 투자와 재원이 필요하다. 앞으로도 그런 관심이 없다면 오늘 만든 격리 병상은 내일 또 부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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