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바라기요양원 배정은 원장
양지면의 한 마을, 들녘 끝 단층집에서 해가 가장 먼저 닿는 곳. 해바라기요양원의 하루는 창가에서 시작된다. 문턱은 낮고, 마당은 열려 있다. 9명의 어르신이 함께 밥을 먹고, 서로의 이름을 부르며 하루를 엮는다. 배정은 원장은 이 공간을 ‘요양원’이라 부르지 않는다. “그냥 우리 집이에요.”
그의 목소리는 낮고 부드럽다. 말끝마다 친근함이 묻어난다. 간호학을 전공한 그는 병원과 교육 현장을 거쳐 요양보호사 교육원에서 간호와 사회복지를 함께 가르쳤다. 2008년 장기요양보험 제도가 도입되면서, 돌봄이 ‘제도’가 되었지만 어딘가 비어 보였다. “사람의 삶은 규칙서로만 설명할 수 없어요. 마음이 닿아야 하죠.” 그렇게 배 원장은 돌봄의 기준을 다시 세웠다. 제도 속에서 사람을 찾기보다, 사람 속에서 돌봄을 시작했다. “집에서, 함께 살면 가능하겠다고 생각했어요.” 그 결심이 지금의 해바라기요양원을 만들었다.
아홉 명이 만든 가족의 크기
해바라기요양원에는 9명의 어르신이 산다. 배 원장은 이 숫자를 ‘가족의 크기’라고 부른다. “한 사람의 부재를 느낄 수 있을 만큼의 거리, 그게 우리 집의 크기예요.” 이곳은 병실이 아니라 방이고, 환자가 아니라 이름을 가진 사람이 산다. 각자의 방에는 각자의 이야기가 있다. 어떤 방은 햇빛이 오래 머무르고, 어떤 방은 조용하다. 치매로 기억이 흐릿해진 어르신도 방의 문손잡이를 기억한다.
배 원장은 병원용 침대 대신 주니어 옷장을 들였다. “옷을 걸고, 거울을 보고, 서랍에 양말을 넣는 일상. 그게 사람 사는 거잖아요.” 병실의 냄새 대신 집의 온기를 담기 위해, 그는 구석구석을 직접 닦고, 가구를 밀고, 방 안의 먼지를 없앤다. “내가 병원에 있을 때 느꼈어요. 청소가 덜 된 구석 하나가 마음을 무겁게 하더라고요.” 그래서 해바라기요양원은 언제나 ‘집처럼 깨끗한 집’이다.
이곳은 어르신을 모시는 시설이 아니라, 함께 사는 사람들의 집이다. 배 원장은 말한다. “요양원이라는 단어에는 어딘가 단절된 느낌이 있어요. 하지만 여긴 서로 기대는 집이에요. 작은 공간이지만 마음이 통하면 충분하죠.”
“우리는 모두 달팽이” — 돌봄의 리듬
배 원장이 가장 자주 쓰는 말은 ‘우리는 모두 달팽이’다. 달팽이는 느리지만 멈추지 않는다. 자기 짐을 등에 지고, 조용히 나아간다. “어르신들도 각자 다른 무게를 지고 살아오셨잖아요. 그 속도를 존중해드려야 해요.”
새로 들어온 어르신들은 대부분 낯설고 불안하다. 밥을 거부하거나, 불을 끄지 못하고, 예전 집을 찾아 나서기도 한다. 배 원장은 기다린다. 말투를 낮추고, 표정을 부드럽게 한다. “소금을 찾아 헤매던 어르신이 계셨어요. 밥마다 소금을 치셔야 마음이 놓였죠. 그 어르신에게 소금통을 따로 챙겨드렸어요. 그때부터 달라졌어요.” 그렇게 쌓인 신뢰는 어느 날 식탁 위의 웃음으로 돌아온다. 소금없이 밥을 한 숟가락 더 뜨고, 밤에는 스스로 불을 끈다. 한 달 뒤, 그 어르신의 체중이 3kg 늘었다. “살이 찐 게 아니라, 마음이 조금 더 편해진 거예요.”
배 원장은 돌봄을 기술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말 한마디, 표정 하나가 돌봄이에요. 따뜻하게 바라봐주는 일, 그게 가장 큰 치료죠.” 그래서 이곳의 하루는 말보다 표정이 많다. 서로의 속도에 맞춰 걷고, 기다리는 시간까지 돌봄의 일부가 된다.
함께 돌보는 삶, 그리고 내일
이 집의 하루는 언제나 바깥으로 향한다. 문을 열면 마당이 있고, 그 끝에는 작은 텃밭이 있다. 봄엔 흙을 만지고, 여름엔 그늘을 고르며, 가을엔 고구마를 캔다. 겨울엔 데크에 나와 햇살을 쬔다. “낮을 채워야 밤이 편하거든요.” 배 원장은 웃으며 말한다. 오전엔 건강 체조를, 오후엔 짐볼로 발배구를 한다. 공이 오가고, 웃음이 번진다. 몸이 움직이면 마음도 따라 움직인다.
집 앞에는 햇살이 머무는 카페가 있다. 보호자와 마을 주민이 차를 마시며 어르신의 하루를 나누는 곳이다. 배 원장은 이곳을 ‘햇살카페’라 부른다. “이곳은 단순한 쉼터가 아니에요. 어르신의 하루를 함께 만들어가는 곳이에요.” 그는 이 공간을 마을 도서관이나 치매 상담소로 넓히고 싶다고 했다. “마을이 자연스럽게 스며들면 어르신 마음도 한결 편안해져요.” 해바라기요양원은 언제나 문을 열어둔다. 문턱이 낮을수록 사람의 온기가 오래 남는다.
배 원장은 “요즘 시설들은 다 잘해요. 하지만 부모님에게 맞는 곳을 찾는 게 중요하죠. 그리고 ‘맡긴다’는 생각은 버려야 해요.”라고 말한다. 보호자는 방문자가 아니라, 함께 돌봄을 이어가는 동반자다. “이곳에서는 보호자와 우리가 함께 어르신의 하루를 만들어가요. 돌봄은 같이 해야 진짜 힘이 나죠.”
해바라기요양원은 커지지 않는다. 대신 하루를 더 곱게 살핀다. 햇빛이 오래 머물고, 웃음이 천천히 번지는 집. 배 원장은 고요히 말한다. “이곳은 해가 뜨면 함께 깨어나고, 저물면 하루를 나눠 쉬어요. 어르신들의 하루가 평안하면, 우리 마음도 그만큼 따뜻해지죠.” 오늘이라는 시간을 정성껏 살아내는 일, 그것이 이 집이 지켜온 가장 소박하고 단단한 믿음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