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재난지역 선포 건의 용인시 처인구 백암·원삼면 수해현장 다녀보니

“가진 게 아무 것도 없는데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해요.(80대 여성·백암면 백암리) ”
“3일째 오도 가도 못했어요. 물이 이렇게 무섭구나 하는 걸 이번에 처음 알았어요(50대 여성·원삼면 죽능리)”
“이 곳(마을입구 도로)이 잠긴 건 평생 살다가 처음 봤어요(70대 남성·백암면 박곡리)”
“그날 너무 놀라 며칠째 잠을 제대로 못잤어요(40대 여성·원삼면 두창리)

지난 2일 내린 집중호우에 처인구 백암면 박곡리 박석골에 산사태가 발생해 농경지가 유실됐다.

8월 2일 처인구 백암면과 원삼면 주민들에겐 꿈조차 꾸고 싶지 않은 날이다. 일부 주민은 집이 흙탕물에 잠겨 11일째 면에서 마련한 임대 거주시설에서 생활하고 있다.

애써 키운 농작물을 하루아침에 잃어버린 농민들은, 벌써 몇 날 며칠 팔지 못하는 작물과 흙탕물을 뒤집어 쓴 농자재 등을 치우고 정리하고 있다. 얼마나 더해야 새 작물을 키워 출하할 수 있을지 걱정이다.

7~12일 4일간 찾은 특별재난지역 선포를 요청한 처인구 백암면과 원삼면을 비롯해 모현·포곡읍은 물론, 9일 하루에만 130mm가 넘는 장대비가 쏟아진 역삼동과 유림동을 둘러봤다.

지난 2일 내린 집중호우로 산사태가 발생해 바위와 아름드리 나무, 흙더미가 덮친 전통사찰 법륜사. 사찰 스님과 신도, 각 처에서 온 자원봉사들의 도움으로 응급복구는 마친듯 보였다. 하지만 요사체와 삼성각 등 전각 주변에는 산에서 굴러 내려온 바위와 뿌리째 뽑힌 아름드리 나무, 흙더미가 그대로 쌓여 있었다. 요사체를 덮친 산에는 계곡이 만들어졌을 정도로 산사태 규모를 짐작케 했다.
 

곳곳에서 산사태가 발생한 처인구 백암면 박곡리. 박곡로 10번길 마을 입구에 있는 고추밭이 대덕천 범람과 산사태로 발생한 흙으로 뒤덮여 있다.

산사태로 펜션에 주차돼 있던 차량 10여대가 파손되고 펜션에 묵었던 사람들이 한때 고립됐던 원삼면 죽능3리도 생채기가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12일, 유실된 도로와 능선이 무너진 산 등에 대한 복구가 한창이었고, 펜션이 몰려 있는 산사태 발생지역은 그날의 상흔이 여전했다.

산사태를 목격한 한 주민은 “오전 9시40분쯤 우르르 쾅쾅 하는 소리에 집에서 나왔더니 집을 짓기 위해 터를 닦아놓은 곳에서 하수관과 축대 바위가 쏟아져 내리고 있더라고요. 펜션 차량은 모두 흙더미에 덮히거나 파손됐어요. 3일 동안 오도 가도 못했는데, 물이 이렇게 무섭구나 하는 걸 이번에 처음 알았어요”라고 상황을 생생하게 전해들을 수 있었다. 산사태 현장에는 축대 바위와 하수관이 한데 엉켜 위태롭게 놓여있어 조치가 필요해 보였다.

처인구 원삼면 두창5리 하천과 맞닿아 있는 도로는 열흘 넘도록 1개 차선이 통제돼 있다.

원삼면 두창리와 백암면 근삼리로 이어지는 유실된 318번 지방도는 여전히 응급복구가 진행 중이었고, 두창5리 하천 옆 도로는 여전히 왕복 1차선 중 1개 차선이 통제돼 있었다. 청미천 지류인 백암과 원삼면 내 소하천 곳곳은 범람하거나 둑이 무너졌는데, 그 흔적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한창 익어가고 있어야 할 벼는 하천 둑이 터져 흙에 파묻혀 보이지 않았고, 시설채소와 화훼 등을 키우는 비닐하우스 주변에는 비닐 등 각종 농자재와 출하를 못하고 버려진 농작물이 쌓여 있었다. 시설채소 하우스 안에는 작물은 보이지 않고 두 내외가 내부를 정리하고 있었다.

곳곳에서 산사태가 발생한 백암면 박곡리는 더 참혹했다. 박곡로 입구부터 뿌리째 뽑힌 아름드리 나무가 하천 옆에 누워있었다. 대덕천 옆에는 더 무너지거나 파이지 않도록 임시로 쌓아둔 거대한 모래포대가 유실된 하천과 도로에 놓여 있었다. 박곡로와 마을 안길 옆에 드넓게 펼쳐져 있는 논은 성한 곳을 찾기가 더 어려워 보였다. 박곡로 105번길 입구 대덕천 옆에서는 30여명의 군인들이 침수 방지를 위해 마을 곳곳에서 사용할 모래주머니를 만들고 있었다.

처이눅 원삼면 두창리 하천둑이 터져 논에 흙더미가 뒤덮여 있다.

복구현장에서 만난 한 70대 주민은 “이곳(마을입구 도로)은 산골짜기에서 흘러내린 흙탕물과 대적천이 넘쳐 거의 허리만큼 물이 찼는데, 잠긴 건 평생 살다가 처음 봤다”며 악몽과도 같았던 당시를 회상했다.

박곡로와 마을 안길 곳곳에는 산사태로 쓸려내려온 흙더미를 치우기 위해 동원된 포클레인과 굴삭기 등 크고 작은 중장비가 쉴새 없이 굉음을 내고 있었다. 마을을 ‘쑥대밭’으로 만들었다는 말을 실감할 수 있었다.

침수피해 복구 중이어서 영업할 수 없다는 안내문을 붙여놓고 물에 젖은 물품을 밖에 내놓고 정리하던 백암면 백암리의 한 마트. 집이 침수돼 열흘 넘게 임시생활시설에서 거주하고 있는 80대 노인. 전날 밤을 샜는지 책상에 엎드려 잠시나마 눈을 부치고있던 백암면사무소 직원. 진흙에서 하나라도 건질 수 있는게 없나 농가의 수해복구를 지원하는 시민들. 2일 쏟아진 집중호우는 적지 않은 주민들에게 깊은 상처를 넘어 ‘트라우마’로 남지 않을까 하는 우려마저 들었다.

처인구 원삼면 전통사찰 법륜사는 2일 내린 집중호우로 인한 산사태로 요사체가 바위와 흙더미에 묻히고 파손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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