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된 수요예측과 졸속 행정으로 1조 원 이상의 세금이 낭비됐다며 주민감사 청구로 시작된 용인경전철 주민소송에 대해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하는 첫 사례가 나왔다.

2013년 10월 ‘용인경전철 손해배상 청구를 위한 주민소송단’ 대표가 수원지방법원 앞에서 용인경전철 손해배상청구를 위한 주민소송 접수에 앞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용인시민신문 자료사진
2013년 10월 ‘용인경전철 손해배상 청구를 위한 주민소송단’ 대표가 수원지방법원 앞에서 용인경전철 손해배상청구를 위한 주민소송 접수에 앞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용인시민신문 자료사진

‘용인경전철 손해배상 청구를 위한 주민소송단(아래 주민소송단)’이 용인시에 1조 127억 원의 손해를 끼쳤다며 전직 용인시장 3명 등 관련자들의 책임을 물어 손해배상을 청구하라고 낸 주민소송에서 법원이 소송단 측 주장을 일부 받아들인 것이다.

‘주민소송’은 지방자치단체의 불법 재무회계 행위를 방지·시정하거나, 이로 인한 손해를 회복하기 위해 주민들이 제기하는 소송이다. 소송 당사자인 원고와 피고뿐만 아니라 주민소송에 참여하지 않은 지자체 전체 주민에 대해서도 모두 효력이 있다.

주민소송은 용인시민들과 시민단체들이 용인경전철 사업으로 1조 원 이상의 세금이 낭비됐다며 2013년 4월 11일 경기도에 주민감사를 청구하면서 시작됐다.

이어 10월 10일 용인시 전·현직 시장과 공무원, 수요예측을 맡은 용역기관 등 경전철사업 관계자들에게 전체 사업비 1조 127억 원을 청구하라는 주민소송을 냈다.

용인경전철 실시협약의 기초가 된 한국교통연구원의 수요예측에 현저히 미달하는 인원이 경전철을 이용, 예상 수입과 실제 수입 간 금액이 컸기 때문이다. 더구나 용인시는 실시협약 중 최소수입보장 약정에 따라 사업시행자에게 막대한 재정지원금을 지급하는 손해를 입게 했다는 게 주민소송단의 주장이다.

1심 재판부는 김학규 전 용인시장과 박순옥 전 보좌관을 상대로 용인시는 5억 5천만 원을 지급하도록 청구하라며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다.

전체 손해배상 청구 중 극히 일부분만 인정한 것이다. 반면 이정문·서정석 전 시장을 비롯해 연구기관과 공무원 등 32명을 상대로 한 1조 4400억 원 규모의 손해배상청구와 부당이득반환청구에 대해서는 모두 각하 또는 기각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김학규 전 시장 정책보좌관 박순옥 씨에 대해 1심이 인정한 배상액 5억 5천만 원보다 늘어난 10억 2500만 원을 배상액으로 인정했다. 다만, 공동책임을 물었던 1심과 달리 김 전 시장을 배상 대상에서 제외하며 과실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대법원은 2020년 7월 이 전 시장과 한국교통연구원의 손해배상 책임 인정 여부에 대해 더 심리해 판단하라는 취지로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용인시장의 실시협약 체결 중대 과실 인정

용인경전철 손해배상청구를 위한 주민소송단이 지난 19일 오후 용인시의회 앞에서 경전철 졸속개통 중단과 협상내용 공개를 촉구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자료사진)
용인경전철 손해배상청구를 위한 주민소송단이 지난 19일 오후 용인시의회 앞에서 경전철 졸속개통 중단과 협상내용 공개를 촉구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자료사진)

서울고등법원은 최소운영수입 보장 약정 자체가 위법한 것은 아니라고 밝혔다. 하지만 한국교통연구원의 과도한 수요예측에 대해 타당성을 검토하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고, 그대로 실시협약 기초로 삼아 사업시행자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한 내용이 포함되도록 한 것은 잘못이라고 판단했다.

기획예산처장관이 ‘30년간 90% 운영수입 보장은 축소할 필요가 있다’는 심의 결과를 통보했음에도 실시협약에 반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운영수입 보장기간과 수준, 보장조건 등을 합리적으로 개선해 용인시 손실을 줄일 수 있는 내용의 ‘2003년 민간투자사업기본계획’을 적용하지 않고, 용인시에 더 불리한 2002년 기본계획을 적용한 점도 잘못이라고 밝혔다.

의정부경전철처럼 저지규정을 두지 않은 것도 지적됐다. ‘저지규정’은 실제 운영수입이 추정 운영수입을 크게 밑돌 경우, 운영수입 보장 대상에서 제외해 사업시행자가 과도한 수요예측을 하지 않도록 차단하는 조항이다.

수요예측 기관과 연구원들의 잘못 인정

‘용인경전철 손해배상 청구를 위한 주민소송단’ 회원들이 경전철 운영비 협상 결과를 설명하기 위해 마련된 시의회 대회의실 앞에서 개통반대 피켓 시위를 벌이고 있는 가운데 김학규 시장(오른쪽)과 이우현 시의장이 회의장에 들어가고 있다.(자료사진)
‘용인경전철 손해배상 청구를 위한 주민소송단’ 회원들이 경전철 운영비 협상 결과를 설명하기 위해 마련된 시의회 대회의실 앞에서 개통반대 피켓 시위를 벌이고 있는 가운데 김학규 시장(오른쪽)과 이우현 시의장이 회의장에 들어가고 있다.(자료사진)

재판부는 용인경전철사업 타당성 분석에 있어 과도한 수요예측을 바탕으로 한 잘못이 있고, 그로 인해 용인시에 손해를 입혔다고 봤다.

수요예측에 따른 교통수요 추정은 사업 여부와 실시협약 내용과 직결되는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이다. 한국교통연구원의 과도한 수요예측으로 용인경전철 개통 후 실제 탑승 인원은 실시협약 예상치의 5~13% 수준에 불과했다.

2013년 실시협약 수요예측 인원은 일 평균 17만 명이지만 실제 탑승인원은 8600명, 2017년 연구원 측은 일 평균 18만 2천 명이 이용할 것으로 예측했다. 하지만 탑승 인원은 2만 7천명에 그치는 등 10년이 다 되도록 하루 평균 3만 명에 그치고 있다.

연구원의 예상 수요는 용인경전철 사업 정책결정권자의 실시협약 체결 여부와 의사결정 과정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재판부는 연구원 측의 잘못을 인정한 것이다.

주민소송 파기환송 판결 의미와 한계

용인경전철 주민소송은 용인시가 전 용인시장, 한국교통연구원과 연구원들을 상대로 손해배상청구를 한 것이 아니라, 주민들이 원고가 돼 용인시장을 피고로 ‘전 용인시장, 한국교통연구원 등을 상대로 손해배상청구를 하라’고 청구한 것이다.

그간 주민소송 인용에 소극적이던 기존 판례와 달리 손해배상 책임을 정면으로 인정했다는 게 서울고법의 설명이다.

무엇보다 지방자치단체장은 재정 지출을 수반하는 재무회계행위를 할 때 지위에 따라 요구되는 주의의무를 다해야 한다고 일침을 가했다. 그러한 의무를 게을리해 해당 지자체에 손해를 입히면 임기가 끝났다 하더라도 주민들이 나서서 전임 지자체장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를 하라는 청구를 해당 지자체에 할 수 있음을 선언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덧붙였다.

서울고법은 “재정 지출이 수반되는 행위를 한 지자체장과 사업 타당성 여부에 대한 검토 업무를 수행한 기관의 책임 비율을 달리함으로써 최종 책임자인 해당 지자체장의 책임과 비난 가능성이 더 크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고 강조했다.

또 사업의 타당성 여부에 대한 검토 업무를 수행한 기관에 대해서도 거액의 손해배상책임을 인정했다는 점도 의미가 적지 않다. 과도하게 수요예측을 하거나 근거 없이 좋은 방향으로 사업 타당성 검토를 하는 것은 위법해 해당 지자체에 대한 손해배상의무를 부담하게 되기 때문이다.

주민소송제도에 대한 개선 필요성도 지적됐다. 주민소송 대리인 현근택 변호사는 “대법원 판결이 확정되더라도 용인시가 전임 시장 등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진행해야 한다”며 주민소송의 한계를 지적했다.

그는 “간접 소송이다 보니 먼저 청구하고 확정되면 용인시가 당사자들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형태로 돼 있어서 이번 판결까지 10년 걸렸는데 몇 년 더 걸릴지 확신할 수 없다”며 주민소송 제도 자체를 고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용인시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