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 우리나라에서 복권은 언제 등장했을까?

우리나라 전통적인 복권의 기원은 근대 이전의 우리나라 사회에서 크게 발달한 협동 조직체인 “계”에서 찾을 수 있다.

서양과 같은 전통 공익복권으로 십층계라는 것이 있다. 절을 새로 짓는다든지, 학교를 새로 짓거나 운영할 돈이 필요할 때, 조상의 산소에 제사를 지내는 비용의 마련을 위해, 활터를 운영할 돈을 마련하기 위하여 복채를 팔아 마련하고, 그 금액의 일부로 당첨금을 삼는 반복권의 형태를 띠고 있었다.

이것말고도 사익복권이라는 것도 있었다.

잡백계는 작백계 또는 작태계라고도 하는데 일련번호가 적혀있는 복권을 100명이나 1000명 단위로 팔고 추첨 방식으로 당첨자를 정하여 전체 판매액의 80%는 당첨금으로 돌려주고, 전체 판매액의 20%는 복권을 발행한 사람이 먹는 복권이다.

삼십육계는 36명 단위로 모든 사물의 유래나 기원을 적은 연기지를 36명에게 팔아 맞히는 사람에게 자신이 건 돈의 30배를 상금으로 주는 복권이다. 이 복권이 사행심을 조장하여 집안이 망하는 집안이 줄을 잇자, 나라에서는 이를 금지하는 명령을 내리기도 하였다.

산통계는 상자 속에 각 계원들의 이름을 기입한 공을 집어넣고 그 통을 돌려 나오는 공에 따라 당첨을 결정하는 복권으로 오늘날의 추첨 방식과 비슷하다.

오늘날 복권을 사서 동전이나 쇠붙이로 즉석에서 긁어 당첨을 확인하는 즉석복권이 있다. 옛날에도 십인계라는 즉석복권이 있었다. 바가지를 둥글게 10개를 오려 1에서 10까지 숫자를 적어 대통 안에 넣어 흔든 뒤 그 중 한 개를 꺼내어 그 숫자에 미리 돈을 건 사람이 그 판에 걸어 놓은 모든 돈을 모조리 먹는 것으로 오늘날의 ‘야바위’와 비슷하다.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적 복권은 1948년 제16회 런던올림픽대회 참가 경비를 마련하기 위해 1947년 12월에 올림픽 후원권이 발행되었다. 1949년 10월에는 이재민 구호기금을 모으기 위하여 세 번에 걸쳐 후생복표가 발행되었다. 1956년 2월에는 공장을 짓고 사회 복지에 필요한 돈을 모으기 위하여 애국복권이 발행되었다. 그러나 이들 복권들은 계속 발행되지 못했다. 우리나라에서 정기발행복권으로 처음 등장한 것은 1969년에 나온 주택복권이다. 현재의 주택복권은 1988년 서울 올림픽을 위한 올림픽 복권에서 이름을 바꾼 복권이다. 현재 1000원에서 2000원정도 하는 복권이지만 1947년에 처음 발행할 때에 복권 가격은 100원이었다. 현재 1억원에서 수십억원에 이르는 당첨금도 1947년에는 100만원이었다. 그러나 서울의 집값이 100만원이었으니, 오늘날에 3억이상의 가치가 있을 것으로 추측된다.

복권으로 모인 돈이 공공의 이익을 위해 쓰여지고, 사람들이 복권을 일확천금을 얻을 수 있는 수단이 아닌 생활의 스트레스를 날려버릴 수 있는 오락거리로 삼는다면 복권은 사회에 좋은 영향을 주는 감초같은 역할을 할 것이다.

/민병덕(용동중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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