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에서 송전 쪽으로 가다보면 남동을 지나 이동면과의 경계를 이루는 야트막한 고개가 나온다. 이 고개를 무네미고개라고 하는데 비가 오면 떨어진 물이 용인쪽에 떨어지면 경안천을 통해 한강으로 흐르고 송전 쪽에 떨어지면 안성천을 통해 서해로 들어가게 된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즉 무네미고개는 분수령(分水嶺)이되어 물을 양쪽으로 나눈다는 뜻인데 무네미 또는 무내미라고 하는 말은 「물넘이」「물이 넘어가는곳」이란 뜻이 된다. 무네미를 한자로 적을 때 수여(水餘)가 되는데 이는 물이 남는다는 뜻으로 이해해 붙인 표기이고 현(峴)은 앞서도 이야기했다시피 야트막한 고개에 주로 붙이는 고개이름이다.

무네미고개처럼 분수령에 위치하여 물이 넘는다는 뜻을 가진 고개는 다른 지방에서도 적지 않게 볼 수 있다. 서울의 수유동(水踰洞)이 대표적인데 이때의 유(踰)는 넘을 유다. 여(餘)보다는 넘는다는 뜻을 더 살렸다고 할 수 있는데 무네미고개도 국한국시대의 지명지를 보면 수유령(水踰嶺)으로 기록하고 있고 이는 수유현과 같은 표기다.

용인이 시로 승격되어 중앙동을 비롯해 동이 신설되기 이전에는 용인시청이 자리한 용인의 중심지가 용인읍이었는데, 용인읍의 옛 이름이 수여면(水餘面)이었다. 용인의 옛 이름이 수여면이었던 것은 바로 이 무네미고개에서 비롯된 명칭이다. 또 영문중학교 입구 휴맥스 앞의 유방동과 둔전과의 사이 경안천 위에 있는 다리를 수포교라고 하는 데 이는 용인읍이 수여면이었던 당시에 건립됐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이는 면과 면의 경계에 지어진 다리의 경우 양쪽의 이름을 참고하여 이름을 짓다보니 수여면의 「수」와 포곡면의 「포」를 따서 수포교가 된 것이다. 사족이지만 용인면이었을 당시에 다리를 건립했다면 아마도 「용포교」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언제부터 무네미고개가 수여현으로 불리워졌는지는 확실하게 알기 어렵다. 그러나 영조년간(1760년)에 간행된 「여지도서」나 이전의 용인현읍지, 또는 정조년간(1789년)의「호구총수」 등과 그 이후의 용인현읍지의 기록을 보면 모두 수여면으로 기록돼 있다. 수여면이 수여현에서 비롯한 이름임이 분명한데 무네미고개를 수여현으로 표기한 것은 현존하는 기록상 적어도 250여 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다고 하겠다.

용인읍이 수여면으로 호칭된 것은 적어도 1413년 조선 태종때 용구와 처인을 합해 용인현이 된 이후로 보이며 그때의 치소(治所)는 현재의 구성읍 마북리였다. 그후 1911년 수여면으로 이전됐고 1914년 일본인들에 의해 행정구역이 개편되면서 동제(洞制)실시 이전의 용인읍 관할구역을 갖게 되었다. 1938년에는 수여면을 용인면으로 개칭했고 1975년에 읍으로 승격됐다. 1996년에는 용인군이 용인시로 승격되면서 용인읍이 폐지되고 중앙동, 유림동, 역삼동, 동부동 등의 행정동과 그 아래 읍 당시의 리가 동으로 이름을 바꾸어 김량장동, 유방동, 고림동, 마평동, 남동, 역북동, 호동, 운학동, 해곡동, 삼가동 등의 10개 법정동을 관할하게 되었다.

/정양화(용인문화원 부설용인향토문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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