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시민신문 - 용인시마을공동체지원센터 공동기획7

때로는 사소하고 우연한 일이 물꼬가 되어 삶에 변화를 가져다주기도 합니다. 에코벽과의 만남이 그랬습니다. 친환경 비누를 만든다고 해서 대타로 따라나섰다가 나중엔 그 곳에서 밀랍랩 강사도 하고 판매까지 하게 될 줄 누가 알았을까요.

지난해 동천마을네트워크는 ‘경기도 자원순환 마을만들기 사업’에 선정돼 마을 단체들과 함께 우유팩과 페트병 뚜껑을 모으고 친환경 비누와 주방세제를 생산, 판매하는 ‘에코벽 프로젝트’ 진행했습니다.

우리 마을의 장점이 인적 자원이 풍부하다는 것인데, 일에 열정적인 사람들도 많아요. 그러다 보니 일의 진행 속도도 빠릅니다. 처음 모여서 만들었던 비누가 굳기도 전에 각 단체의 한 귀퉁이엔 에코벽 나무 현판이 걸리고 환경 책자와 팸플릿이 놓이고, 다음날엔 우유팩과 페트병 뚜껑 수거함이 놓였어요.

며칠 후엔 용기를 가져와서 덜어가는 커다란 주방세제 리필통이 자리잡고, 그렇게 거점이 된 단체들(굿모닝·숲속·밤토실·느티나무 도서관, 우주소년 책방, 이우생공, 에코&양생, 이우락쿱, 주민자치센터와 해도두리 마을장터)의 한쪽 공간은 점점 에코벽이 되어갔습니다.

수지구 동천동 굿모닝 작은도서관에 설치된 에코백
수지구 동천동 굿모닝 작은도서관에 설치된 에코백

없던 게 자리를 차지하자 오고 가던 사람들이 기웃거리고 에코벽이 뭐냐고 관심을 갖고 물어봅니다. 어느새 책 빌리러 오는 아이들 손에 깨끗이 씻어 말린 우유팩이 들려지고, 모아온 뚜껑을 색깔대로 구분해 넣으니 교육을 따로 시킬 필요가 없습니다. 이렇게 모은 우유팩은 휴지와 종량제봉투로 교환되어 이주노동자쉼터와 홀몸 노인들께 보내졌고, 페트병 뚜껑은 판재로 만들어져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의자로 재탄생했습니다.

서울 망원동의 알맹상점과 서울시새활용플라자로 견학도 다녀왔는데, 다양한 종류와 세련된 디자인의 제로웨이스트 제품이 많아 눈을 뗄 수 없었습니다. 그 중 눈에 확 들어오는 게 있었으니, 바로 밀랍랩이었습니다. 예쁜 패턴이 그려진 천 위에 밀랍을 입혀 비닐랩 대용으로 쓰는 건데요. 빵이나 채소, 과일을 싸서 두면 방수도 되고, 항균 작용도 되고, 빨아 쓰는 거라 쓰레기도 줄일 수 있어요.

반제품 밀랍블록 몇 개를 사 와서 예쁜 천으로 밀랍랩과 밀랍봉투를 만들었더니 생각보다 쉽고 재밌었습니다. 그걸 본 에코벽팀에서 밀랍랩 수업을 해보라고 요청을 해왔습니다. 처음엔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전문가도 아닌 내가 어떻게 하냐고 손사래를 쳤어요. 그러자 처음부터 전문가가 어디 있냐고 그렇게만 만들면 된다고 해보랍니다.

그렇게 졸지에 밀랍랩 강사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밀랍블록도 직접 만들면 더 많은 수량을 만들 수 있겠다는 의욕에 선뜻 밀랍 덩어리를 사고 보니 밀랍에 송진과 호호바오일을 어느 정도 비율로 배합할 지가 문제였습니다. 원재료를 배합해서 블록 만드는 과정은 어디에도 나와 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직접 재료들을 배합해서 블록을 만들고 천에 입혀 보는 수밖에요.

그런데 생각처럼 단번에 원하는 농도의 블록이 만들어지질 않고 어느 땐 너무 끈적이고, 어느 땐 접착력이 너무 약해서 잘 달라붙지 않았습니다. 비율을 바꿔가며 다시 시도하길 수차례, 실패의 경험이 노하우가 되어 마침내 원하는 밀랍블록이 만들어졌습니다.

그 과정 속에 밀랍랩 만드는 실력도 함께 늘어났습니다. 다양한 시도를 해볼 수 있도록 기회를 준 에코벽의 지원 덕분입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밀랍랩은 많은 이웃들에게 나눔으로 돌아갔고, 마을공구를 통해 생산과 판매까지 이어져 우리 마을에선 밀랍랩이 어디에 쓰는 물건인지는 알 정도로 친숙해졌습니다.

김란(마을활동가)
김란(마을활동가)

지금 우리 집에선 EM주방세제로 설거지를 하고, 밀랍봉투에 채소와 빵을 보관하고 마그네슘 세탁볼로 빨래를 하고, 종이타올 대신 소창행주를 쓰고 있습니다.

에코벽이 가져온 변화입니다. 오랫동안 길들여진 습관이 한 번에 바뀌기는 쉽지 않기에 하나씩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 바꿔가고 있습니다. 다행인 건 우리 마을엔 자주 눈에 띄는 곳, 발길이 머무는 곳곳에 환경지킴이 에코벽이 포진해 있다는 것입니다.

이제 봄입니다. 봄을 맞아 에코벽은 또 어떤 모의를 도모할지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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