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차 세계대전과 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초강대국이 된 미국은 소련의 스푸트니크 발사에 큰 충격을 받았다. 우주 경쟁에 뛰어들면서 우주 공간에 생물이 생존할 수 있는지에 대한 정밀한 모니터링이 필요했다. 우주 공간에서 우주인들의 생체 신호가 무선 전파에 의해서 지구에 전송되었고, 이를 의료진이 분석해서 건강 상태를 파악할 수 있었다.

아메리카 인디언들은 미국 동부지역에서 암석과 사막만 존재하는 서부로 강제 이주되었다..
아메리카 인디언들은 미국 동부지역에서 암석과 사막만 존재하는 서부로 강제 이주되었다..

긴급한 의료 상황이 발생했을 때 의사가 없는 우주 공간에서 간단한 치료 능력도 필요했다. 나사의 시도는 거리를 초월해 원격의료의 한 형태였다. 그렇다면 ‘지상에서도 원격의료가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구상이 제기되었고, 나사의 주도로 우주가 아닌 땅에서 시범사업이 진행되었다.

1972년 서부 사막지대 불모지에 보호구역으로 갇혀 있던 인디언 부족에게 원격의료 시스템을 이용한 의료서비스를 제공한 것이다. 방사선 촬영 장비와 같은 의료 장비에 위성 통신 장치를 갖춘 이동 차량이 인디언 거주지로 가서 약속된 시간에 주민들이 방문해 건강 상태를 점검했다. 이동 진료와 비슷한 개념이지만 의사들은 현장에 가지 않고 수십 킬로미터 떨어진 병원에서 TV에 수신된 화면으로 통화하면서 진료했다. 이동 차량이 직접 가는 방법으로 확실하게 진료를 받는 횟수는 증가했다.

그런데 원격의료를 이용한 주민들이 오히려 의료기관 방문 횟수가 더 증가했다. 비의료인이 원격의료를 중계할 경우 이 현상은 뚜렷하게 나타났다. 장점도 명확했다. 수백 킬로미터 밖에 있는 의사들은 환자 인근에 가지 않더라도 검사 결과를 확인하면서 치료 방향을 결정할 수 있었다. 방사선 영상촬영의 경우 그 장점이 결정적으로 나타났다.

반면 단점도 나타났다. 참여한 의료진 입장에서는 새로운 장비를 구비해야 했고, 진료를 중지하고 원격의료 환자를 기다려야 했다. 제한된 정보로 진단이 정확하지 않을 경우 돌이킬 수 없는 의료사고로 이어질 수 있었다. 대면 진료보다 더 많은 시간과 장비가 필요한 만큼 1회 원격 진료비가 현재 가치로 70만원에 이르렀다. 이 때문에 확대 실시에 장애가 있었고 나사의 원격의료 시범사업은 2년 뒤 종료되었다.

나사의 원격의료 시범사업 중 방사선 촬영을 이용한 원격 판독 작업은 가장 확실한 효과가 확인되었다. 영상의학과 전문의의 이동시간이 줄어들고 판독에 집중할 수 있다는 장점이 다른 임상 전문과목과 전혀 다른 것이었다.

원격진료 시범사업은 중지되었지만 의료기관 내부에서 방사선 촬영물을 원거리에서 판독하는 시도가 진행되었다. 나바호 인디언 거주구역인 애리조나 대학에서 디지털로 변환해 영상을 저장하는 시도가 있었다. 저장된 영상은 컴퓨터 계산을 통해 비교하거나 변환시킬 수 있었다. 혈관 조영술을 할 때 조영제를 주입한 전후 사진에서 동일한 영상 신호를 제거할 경우, 혈관만 선명하게 볼 수 있는 디지털 감산 혈관 조영술로 발전했고, 현재도 유용하게 활용되고 있다.

1980년대 영상 정보를 고해상도로 저장할 수 있는 의료영상저장 정보시스템이 개발되면서 필름을 대신해 전세계 의료기관에 보급되기 시작했다. 한국도 1995년 삼성서울병원을 시작으로 의료 영상의 전산화가 시작되었다. 현재 1차 의료기관에서도 환자 진료에 활용하고 있다. 방사선 촬영 후 필름보다 컴퓨터 화면을 보면서 검사 결과를 설명하는 의료기관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새로운 기술에 막대한 투자 비용이 발생한다. 한국 보건당국도 처음에는 초기 투자비를 인정해서 의료비용에 포함시켰다. 의료영상저장 정보시스템이 많이 보급되자 한국 보건당국의 입장은 달라졌다. 2008년부터 의료비용을 깎기 시작한 것이다. 3년에 걸쳐 60%, 절반 이하로 만들다가 그나마 2012년부터 1차 의료기관에서 비용 항목 자체를 삭제해 버렸다. 신기술의 도입을 추진할 때 홍보하고 보급된 이후에는 외면한 것이다.

첨단 과학기술이 발전하면서 생명을 구하는 의료분야는 가장 빨리 활용하기 위한 방법을 연구한다. 수많은 시행착오와 검증을 거치면서 좀 더 나은 치료 방법이 국민들에게 제공된다. 과학적이고 좋은 치료는 공짜가 아니다.

연구개발뿐 아니라 유지 관리에도 막대한 비용이 발생한다. 의료에 대한 투자가 없으면 코로나19를 감당할 중환자실이 부족해서 치료 받을 기회를 잃게 만드는 것과 같은 상황이다. 낮은 의료비는 결국 국민 건강을 위협한다. 안전을 위해서도 적정한 의료비 투자는 필요하다.

한국은 OECD 평균보다 낮은 의료비를 사용하고 있고, 용인 지역은 한국 평균보다 의료비 지출이 낮다. 건강을 위해서 합리적인 투자가 필요하다. 정부는 돈을 아끼기 위해 외면했지만 한국 의료기관들은 국민 건강을 위해 비용 부담을 감수하고 의료영상저장 정보시스템을 설치해 활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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