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민병덕의 역사 속으로

용인시민신문을 통하여 독자 여러분을 만나게 되어 기쁩니다. 오늘부터 역사의 궁금증, 잘못 알고 있는 역사, 생활사를 중심으로 글을 쓰고자 합니다. 첫 회로 요즈음 인기를 끌고있는 사극의 주인공들인 궁녀에 대하여 2회에 걸쳐 소개하고자 합니다. /편집자

어떻게 궁녀가 되었을까?

요즈음 텔레비전 방송에서 시청자들의 많은 관심을 끄는 프로그램 중에 '대장금'이 있다. 장금이라는 궁녀가 여성으로서 최초이자 마지막으로 임금의 주치의인 어의(御醫)가 되는 과정을 그리고 있는 드라마이다.
궁녀는 왕족을 제외한 궁중의 모든 여인을 이르는 말인데, 크게 상궁과 나인으로 구분할 수 있다. 삼국 시대나 통일 신라 시대에는 궁녀에 대한 기록이 보이지 않지만, 백제의 마지막 왕인 의자왕이 3000궁녀를 거느렸다는 기록이 있다. 문헌에 나타난 궁녀에 대한 기록은 고려 시대 제2대 왕 혜종 때부터이다. 궁녀에 대한 구체적인 기록이 나타난 것은 조선 시대라고 할 수 있다. 조선 초기에는 관청의 여자 노비나 기생의 딸을 궁녀로 많이 뽑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궁녀를 뽑는 것이 매우 신중해져, 신분이 너무 천하지 않으면서 조상 중에 반역자가 없는 집안에서 궁녀를 뽑았다. 집안의 배경이 좋아야 할 뿐 아니라, 벼슬이 있는 사람의 추천이 있거나 상궁들의 추천을 받아야 궁녀에 뽑히기가 쉬웠다고 한다. 예를 들면 대장금에서 장금이와 경쟁관계인 최금영이가 고모인 최상궁의 추천으로 쉽게 궁녀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궁녀는 대개 4∼5세에 뽑는데, 한 번 궁녀가 되면 궁궐에 들어가 죽을 때까지 살아야 했다.

궁궐에서의 생활은?

일단 궁녀로 뽑히면 사가(궁궐에 들어오기 전에 살던 집)에서의 모든 일을 잊으라는 뜻으로 왕이 직접 이름을 지어 주었다. 그래서 궁녀들은 일청(一淸), 경운(景雲), 소선(素仙) 등 옛 여성답지 않게 멋들어진 이름을 갖게 되었다. 나중에 이러한 풍습이 사회에 퍼져 기생들의 이름에 쓰이기도 했다. 궁녀가 된 후 7∼8세가 되면 궁중의 법도와 학문, 글씨 등을 익혔다. 그러다가 궁궐에 들어온 지 15년이 되거나 18세가 되면 관례를 치른 후 정식 나인이 되었다. 이들의 관례는 성년식과 결혼식을 겸하는 것이지만 특이하게도 남편이 없는 결혼식이었다. 마음 속으로야 누구나 왕을 남편으로 꿈꾸었지만 그것은 하늘의 별 따기일 뿐, 한숨과 벗하며 사는 경우가 더 많았다. 관례를 치를 때 사가에서도 음식을 준비해 나누어 먹기도 하였다. 관례를 치른 궁녀는 스승 상궁으로부터 독립하여 한 방에 두 명씩 살았다.

궁녀도 월급을?

궁녀의 보수는 한 달에 백미(흰 쌀) 세 말쯤 되었다고 한다. 이 외에도 1년에 명주 한 필과 무명 한 필, 솜 한 근이 지급되었고, 여름철에는 베, 모시 등이 지급되었다. 화폐로 돈을 쓰면서부터는 월급제가 실시되었는데, 순종 때 가장 많은 월급을 받았던 궁녀는 196원을 받았다고 한다. 지금의 화폐로 계산하면 약 150만 원 정도이다. 궁녀들은 맡은 업무와 연차, 품계에 따라 월급을 받는 여성 공무원이었던 것이다.

/용동중 교사

<역사이야기 designtimesp=158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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