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내 양극화 해소, 공동체 회복에서 찾는다4

도시 쇠퇴하자 주민들 지역주택조합 설립
2035년 목표 주민중심 재생사업 시작  

1993년 도시재생이 시작되기 전 캐슬베일의 시가지 모습. 1963년에 세워진 고층아파트가 보인다.

영국 제2의 도시 버밍엄. 10월 22일 버밍엄 북동쪽에 있는 작은 위성도시 캐슬 베일을 찾았다. 주민들이 주택조합을 만들어 황폐한 도시를 살고 싶어하는 도시로 만든 도시재생 과정과 커뮤니티 현장의 생생한 목소리를 듣기 위해서였다. 

인구가 1만여 명으로 규모가 작은데다 최근까지 재생사업을 진행한 도시여서 그런지 거리는 깨끗하고 조용했다. 아파트는 물론 고층의 주상복합 형태의 건물은 보이지 않았다. 너비 10미터의 도로 양쪽에는 3층 이하 주택이 도로를 따라 들어서 있었다. 취재진이 찾은 곳은 주거지역 중심에 있는 캐슬 베일 도시재생을 이끌고, 지금은 주택관리를 책임지고 있는 비영리단체인 캐슬 베일 커뮤니티 지역주택조합이었다.

캐슬 베일 도시재생사업을 이끌고 있는 커뮤니티 하우징 건물

영국은 한국보다 30~40년 앞서 국가적 차원에서 도시재생을 진행하고 있다. 도시쇠퇴에 대해 적극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 였는데, 1980년 영국은 민간의 개발이익을 극대화하고 공적 이익을 최소화하는 정책을 폈다. 그러나 대규모 개발 프로젝트는 지방정부의 역할을 축소시켰고, 지역과는 연계성이 부족해 지역 간 불균형을 초래했다. 도시재생의 의미보다 민관파트너십을 통한 도시재개발에 가까웠다. 지역간 불균형과 대규모 개발로 인한 폐해가 극명하게 드러난 지역 중 한 곳이 캐슬 베일이었다. 

1950~60년대 자동차산업으로 번성했던 캐슬 베일은 전형적인 공업지역이었다. 그러나 1970년대 오일쇼크 이후 80년대 불경기가 심해지면서 실직자가 늘자 캐슬 베일 도심은 슬럼가로 변했다. 이에 정부는 이 곳에 아파트 34채를 짓고 슬럼가에 있던 사람들을 이주시켰다. 그러나 주거문제 해결에만 급급했던 정부 주도의 도시재생사업은 많은 문제점을 남겼다. 

“슬럼가에 살던 주민들은 아파트에 와서 사니까 좋아했어요. 목욕탕, 부엌 등 좋은 시설이 갖추고 있었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행복은 오래가지 않았어요. 건물 질이 좋지 않았고, 엘리베이터나 히터 등이 자주 고장나는 등 불편했기 때문이에요.” 케이트 폴리 캐슬 베일 커뮤니티주택조합 이사는 주민들의 겪어야 했던 불편을 이렇게 설명했다. 

캐슬 베일 주택조합 건물에서 내려다 본 주택가 모습. 고층 아파트가 철거된 자리에는 사진과 같은 쇼핑시설과 저층의 주택 등이 들어섰다.

고층아파트 32채 허물고 병원·학교 등 건설
영국 정부가 2차 세계대전 이후 비어 있던 비행장에 34개 아파트를 지어 슬럼가 주민을 이주시킨 도시개발사업이 실패로 돌아간 것이다. 당시는 영국의 경제구조도 바뀌고 있었다. 산업화가 끝나면서 많은 사람들이 실업자로 내몰리고 있었다. 실업은 주거환경을 더욱 악화시켰다. 캐슬 베일 커뮤니티 대표를 맡고 있는 아이퍼 존스씨는 “집을 짓긴 했지만 공동체에 투자하고 주민들의 고민을 들어주고 해결할 수 있는 시스템은 갖춰지지 않았다. 이는 지역사회의 문제가 됐다. 범죄는 늘고, 교육율은 낮아지는 등 캐슬 베일은 살고 싶지 않은 도시로 변했다”고 말했다..

영국 정부는 결국 쇠퇴한 도시를 활성화시키기 위해 1995년 비영리공공단체인 HAT(Housing Action Trust)를 출범시켰다. HAT는 도심 교외의 가난한 임대주택단지를 재개발하기 위해 설립됐다. HAT는 재생사업에 필요한 지역 6곳을 선정하며 200만 파운드(약 3000억원)를 투자하게 되는데, 6번째 선정된 지역이 캐슬 베일이었다. 캐슬 베일 주민들은 도시재생사업을 추진하기 위해 캐슬 베일 지역주택조합(CVCHA)을 설립했다. 영국 정부와 지방정부 등으로부터 대규모 자금을 투자 받은 CVCHA는 영국에서 가장 큰 단지 중 하나인 10층 짜리 아파트 34채 중 32채를 철거하는 것부터 시작했다. 2동은 리모델링해 다른 용도로 사용하기 위해 남겼다.

그 자리에 집을 새로 짓기로 결정했다. 다만 과거와 다른 점은 주택을 건설만 하는게 아니라 사회와 경제를 중심으로 한 재생에 중점을 두고 접근했다는 것이다. 도시재생사업 전에는 건물은 낙후됐고, 가난했으며 환경적으로 좋지 않았다. 건물만 급하게 지어 사람만 옮기면서 문제가 생긴 것이다. 여기에 높은 실업률과 건강에도 문제가 많았다. 물론 실업 등 이 두 가지 문제는 현재 캐슬 베일이 안고 있는 문제이기도 하다.

케이트 폴리 이사는 “재생에서는 이같은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 나갈 것이냐인데, 예전에는 재규어 생산공장이 있어서 일을 했는데. 지금은 자동화돼 있다. 따라서 주민들에게 새로운 기술교육을 통해 직업을 가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낙후된 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건강이 안 좋은데 사람들이 어떤 음식을 먹고 사는지를 파악하는 것도 중요한 접근법”이라고 강조했다.

캐슬 베일이 지향하는 재생모델은 변화와 지속가능한
도시의 선순환이다.

실업률·범죄율 감소, 지역 이미지 좋아져
지역주택조합을 통한 주민 주도의 도시재생은 성과를 거두고 있다. 진학률 등 학업성취도는 전국 평균보다 낮았고, 과거에는 캐슬 베일로 진학하려는 학생들 수가 적었지만 재생사업 이후에는 대기자가 생길 정도로 교육 성취도가 크게 개선됐다. 범죄율도 현저히 낮아졌다. 무엇보다 도시 이미지가 바뀌었다는 것이 케이트 이사의 설명이다.

“캐슬 베일은 못사는 동네, 범죄가 많은 동네라는 인식이 컸는데, 지금은 잘 사는 곳, 살기 좋은 곳으로 바뀌었다. 예전에는 전부 임대주택이었는데 지금은 50%는 임대주택, 50%는 자기소유로 구조가 바뀌었다. 캐슬 베일로 이주하려는 사람이 많아 지금은 임대주택을 얻기 위해 기다려야 할 정도다.”

캐슬 베일 도시재생프로그램이 자리를 잡았음을 보여주는 지표가 있다. 주택 2200채를 철거하고 1500개의 신규 주택을 건설했다. 1333채에 대한 보수를 마쳤고, 1만명이 사는 도시에 1461개의 일자리를 창출했다. 3415명에 이르는 주민들은 새로운 기술을 익히기 위해 기술훈련을 받았다. 슬럼화 된 도시에는 주민들이 원하던 쇼핑 센터, 공원, 커뮤니티 시설이 들어섰다. 앞서 밝혔듯이 실업자는 줄었고, 교육 성취도 크게 개선됐으며 범죄율은 현저하게 줄었다. 캐슬 베일은 지난 20년 간 노력과 성과에도 불구하고 최근 실업이 다시 증가하는 등 활력을 잃어가고 있다. 캐슬 베일은 지속가능한 모델을 찾기 위해 힘쓰고 있는 이유다.

캐슬 베일은 주민주도 거버넌스를 유지하기 위해 도시재생 기금을 남겨 지역주택조합과 비영리재단인 등과 파트너십을 맺고 새로운 형태의 기업을 만들었다. The Pioneer 그룹이 그것이다. 이 사회적기업을 통해 지역자산을 늘려 자생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해 세 번째 재생사업인 ‘2018~2030년 캐슬 베일 네이버후드 프로젝트(Neighbourhood Plan)’를 시작했다. 투자금 때문이기도 하지만 도시재생 주체가 HAT에서 Pioneer 그룹으로 바뀌었다는 것은 파트너십을 통해 ‘주민’을 중심으로 지속가능한 커뮤니티 도시재생 모델을 만들겠다는 의지도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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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아이퍼 존스 캐슬 베일 커뮤니티 하우징 대표

“캐슬 베일 재생 모델 실험, 핵심은 주민이 중심돼야”

캐슬 베일은 주민 참여의 좋은 사례로 꼽히고 있는데.

“캐슬 베일은 주택관리 측면에서 주민 참여가 잘된다. 주민들이 이사회에 들어가서 중요 사항에 대해 결정을 한다. 지역이 안고 있는 문제를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더 효과적으로 관리할 수 있다.”

한국도 지역마다 도시재생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영국과 도시재생 시스템과 상황이 다를 수 있지만 어떤 말을 해줄 수 있나. 
”우리가 처음 이 프로그램을 시작했을 때 재생을 잘하고 있는 것일까 하는 생각을 많이 했다. 그간의 경험은 어떻게 지속가능한 도시를 만들 수 있느냐였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HAT가 만들어졌을 때 지역사회가 갖고 있는 재산을 어떻게 재투자가 계속 될 수 있도록 하는 것에 목적을 두었다. 과거 같으면 집을 한 번 지으면 한 세대로 끝났다. 그러나 지금은 다음 세대까지 이어질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도시재생사업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인 것 같다.
“도시재생을 위해서 반드시 깨달아야 할 것은 집만 주는 것은 안 된다. 사람들을 물리적으로 이주만 한다고 해서 재생이 성공할 수 없다. 사회적·경제적 측면에서 어떻게 지속가능하게 할 것인지 목적을 설정해야 한다. 주민들에게 주인의식을 갖게끔 하는게 캐슬 베일 HAT 전 대표의 생각이었다. 민관이 같이 운영하는 것이지만 우리(주민) 것이다라는 인식 갖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

기금 소진으로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가 고민일 듯하다.
“정부 부처 소유였던 축구장, 수영장 등을 캐슬 베일로 자산화 하는데 힘썼는데 수익은 크지 않다. 그래서 주택 건설을 계획하고 있다. 재생사업도 Pioneer 그룹의 중요사업이다. 정부의 긴축정책 때문에 트너십이 없으면 기금 조성이 어렵기 때문이다. 아울러 임대비를 1년에 1%씩 줄이는 노력도 하고 있다. 앞서 언급하긴 했지만 기금을 조성하기 위해 캐슬 베일에만 머물지 않고 주변 도시를 보기 시작했다. 약 70가구를 지어 임대료로 재생사업 등을 위한 기금을 조성할 계획이다.”

캐슬 베일은 새로운 도시재생 모델을 만들려고 하는 것 같다.
“처음에는 유토피아로 시작했다. 집안에 화장실을 가져보자는 게 목적이었다. 지금은 질이 떨어졌다. 꿈이 산산이 부서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새로운 도시재생 통해 지역사회 변화를 이끌어내고, 그 변화는 지속가능한 변화로 선순환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캐슬 베일 도시재생이 지향하는 모델이다.”

 

*이 기획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 지원으로 진행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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