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확히 언제부터인지 모르겠지만 대략 네 살 때부터 인 듯하다. 자기 물건 버리는 것에 끔찍할 정도로 과민반응을 보이기 시작한 것은. 혹시 애정 결핍에 따른 이상행동은 아닐까하는 생각에 또래를 둔 지인에게 물어 보니 대부분 비슷한 행동을 보이거나 보였단다. 한시름 놓을 수 있었다.  

그럼에도 아이의 행동은 2년이 지난 현재까지 크게 달라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울음을 터트리는 가장 큰 이유가 된 것이다.

맞벌이 시작 이후 아이는 늘 전쟁 같은 아침을 보내고 있다. 7시가 조금 넘으면 일어나 30여분 만에 씻고. 밥 먹고, 옷 갈아입고 등원 길에 나서야 한다. 일상이 반복되던 어느 날 집을 나선 딸아이가 차에 타기 전 뭔가 발견하곤 갑작스레 울먹인다. 그리고 길에 떨어져 있던 조그마한 장난감을 줍더니 이내 흐느끼기 시작했다. 자기가 가지고 놀다 부서진 장난감 조각이 청소하다 버려진 모양이다.

아이의 돌출행동은 빠듯한 출근 시간에 스트레스일 수밖에 없다. 못난 아버지는 그 순간을 참지 못하고 ‘버럭’ 화를 내버렸다.

어린이집에 보내고 출근길 차에서 어린이집  담임 선생님으로부터 한통의 전화를 받았다. 그리고 이내 딸의 울먹이는 소리가 들렸다.

“아빠 죄송해요. 다음부터는 안 그럴게요. 제 물건이 버려지는 게 너무 속상해요. 사랑해요”

버럭 화를 낸 아비의 심정을 조금 이해한 것일까. 아니면 놀라고 무서운 마음에 선생님을 찾아 아빠께 전화해줄 것을 요청했을까.

속상했다. 왜 버리기 전에 아이에게 물어보지 않았을까. 아니 버려진 것을 다시 주워 아이에게 챙겨주는게 뭐가 그리 어렵다고. 그걸 보고 울먹이는 아이를 보듬지는 못할망정 왜 화를 내서. 

이후 아이를 대하는 자세에 다소 변화가 생겼다. 집 청소는 딸의 검수과정으로 마무리된다. 머리를 묶었던 고무줄부터 접착력이 다해 더 이상 사용 불가능한 ‘프리파라’ 스티커까지 버려질 쓰레기 속에서 자기 물건을 다 챙긴 후에야 ‘됐어’란 승인이 떨어진다.

집안 곳곳에는 버려야 할 물건들이 차곡차곡 쌓이기 시작했다. 더 걱정스러운 것은 택배에 사용된 박스까지 챙긴다는 것이다. 쓰레기 신세를 벗어난 물건을 보관하려면 상자가 필요하다는 이유에서다. 아이의 방 곳곳에 있는 크고 작은 상자에는 언제 모았는지 참 많은 것들이 담겨 있다.

쓰레기와 진배없는, 예를 든다면 내용물을 다 먹고 남은 과자봉지, 흙이 묻은 반짝이 종잇조각도 있다. 안방 장롱 위에는 어른 키만 한 나무 막대기도 1년이 넘도록 보관되고 있다.

참다 참다 용기를 내 버릴 것을 요구하면 대뜸 자신을 이해해 주지 못하는 부모에 대한 강한 성토가 나온다. 물론 이제는 요령껏 검은 비닐봉지를 적절히 이용해 일정 부분 처리하기도 하지만 여전히 아이 물건을 버리는 것은 조심스럽다. 

자기 물건 용도폐기를 두고 옥신각신하는 일상이 이어지는 어느 날. 자기가 좋아하는 만화 ‘엉뚱발랄 콩순이’를 보고 있던 아이가 문득 자기는 ‘쓰레기 순이’란다. 

내심 부모의 행동에 많은 부담을 가지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리고 보면 자기 방 곳곳에 쌓여 있는 물건들은 저마다 추억이 담겨 있다. 다 먹고 남은 과자봉지에는 우리 가족이 함께 본 영화 주인공 ‘피카츄’가 그려져 있다. 흙이 묻은 반짝이 종잇조각은 생일을 맞아 함께 놀러간 놀이동산 퍼레이드에서 주워 온 것이다. 2년이 다 돼 가는 긴 막대기는 그 즈음 가족 여행을 떠나 길에서 본 나무 막대기를 그냥 두고 갈 수 없다며 가져온 것이다.

“그래. 우리 딸. 넌 쓰레기 순이가 아냐. 소중한 기억을 예쁘게 생각하는 ‘저장둥이’야. 언제까지 이 행동이 이어질지 모르겠지만 점점 좁아져 가는 집 안 사정을 생각해 조금 자제해줘. 그렇지 아니하면 ‘세상에 이런 일이’에 나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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