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9. 9. 8. 매일신보

씨름은 우리민족이 가장 사랑하는 민속놀이의 하나다. 씨름은 특별한 도구가 필요없고 언제나 어느 때나 경기를 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씨름은 정월부터 동지섣달까지 언제든지 할 수 있었지만 그중에도 여름 한복판에 벌어지는 백중씨름이 가장 유명하다.

백중은 머슴들의 명절이라는 별칭이 있기도 한데 논농사의 경우, 모내기를 마치고 애벌에 이어 두벌 쯤 김매기를 하면 특별히 할 일이 없게 된다. 이 무렵이 백중이 되는데 백중장이 서면 가장 큰 볼거리가 바로 씨름마당이었던 것이다.

기사는 백암장(현재 용인시 처인구 백암면)에서 벌어진 백중씨름대회를 보도하고 있다. 즉, 시국하 국민체위 향상을 목적으로 백암청년회에서 3일간 씨름대회를 열었는데 각지에서 장사 수 백 명이 운집해 장기를 다투고 막을 내렸다는 기사와 함께 입상자 4인의 주소와 성명을 싣고 있다.
1등은 원삼면의 송수창이고 2등은 내사면의 이태헌, 3등은 이웃 이천 호법면의 이정재, 4등은 외사면의 안용출이다. 이 가운데 이천 호법면의 이정재가 훗날 자유당정권에서 정치깡패로 이름을 날렸던 소위 동대문사단의 보스다.

각희(脚戱)는 씨름을 가리키는 한자어이고, 시국하라는 뜻은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직전의 상황을 뜻하는 말로 일제가 본격적으로 태평양전쟁을 일으키기 시작하던 때다. 외사면과 내사면은 지금의 백암면과 양지면으로 1995년 광복 50주년을 기해 명칭이 바뀌었다.

지금도 백암은 용인씨름을 대표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때 백옥씨름단이 용인을 대표했던 적이 있었는데 어느새 보이지 않고 있어 아쉽기만 하다. 용인시의 살림살이가 나아진다면 다시 한 번 씨름을 용인의 대표적 경기로 육성하는 것도 좋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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