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문화 시대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반면에 한민족이라 말하는 북한 새터민(탈북자)에 대한 관심은 상대적으로 낮은 편이다. 이미 용인지역사회에서 새터민은 공동체를 이루며 살아가고 있지만 정작 시민들과 이질감을 좁히지 못하고 ‘그들만의 리그’에서 살아가고 있는 실정이다.
피부색이나 생김새로 봐서는 우리와 다를 것이 없지만 대화를 나눌 때 심한 사투리나 환경의 차이로 이질감은 더욱 커지고 있다. 또한 직업이 일정치 않아 국가 지원에 의존하며 살아가고 있으며 대한민국, 용인에서 살기란 녹록치 않다. 사립문의 지원으로 결혼을 해서 가정을 꾸려나가는 새터민들은 한국사회 적응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아직도 그들이 한국사회에 적응하는데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탈북4번 태국거쳐 입국
2년 전 한국에 들어와 용인에서 새 삶을 살고 있는 새터민 이명옥(39·여·구갈동)씨와 연변출신 김록(37·남)씨 부부를 만났다.

이 씨는 다가오는 설 명절이 한국에서 두 번째 맞이하는 명절이다. 남편과 아이, 따뜻한 보금자리가 있어 편안한 생활을 보내고 있지만 북한에 두고 온 이 씨의 가족 중 막내 여동생만 살아있다는 소식에 이번 명절도 쓸쓸함이 가시지 않을것 같다.

“북한에서는 추석이든 설 명절이든 그날 하루는 제사를 지내는 것 밖에 생각하지 않아요. 여기에 오니까 명절을 여러날씩 휴일로 정하고 가족들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게 된다는 것을 알았어요. 명절이라고 하니까 예전에 부모님, 형제들과 함께 했던 기억들이 생각이 납니다.”

#연변출신 김록씨와 결혼
2시간마다 깨어 보채는 아홉달 된 아들(2·김현남)에게 분유 먹이랴, 기저귀 갈랴, 도통 잠을 잘 수가 없지만 이씨 부부의 모습은 여느 한국 엄마, 아빠의 모습과 다르지 않았다.

이제 막 걸음마를 뗀 현남이는 이씨 부부의 행복이자 희망이다. 엄마, 아빠의 얼굴을 번갈아 보며 마냥 행복한 “까르르”소리를 내며 얼굴에 웃음이 떠나질 않는다. 이명옥씨는 10년 전 처음 두만강을 건넜다.

“1997년 첫 탈북을 시도해 중국에서 살았습니다. 4년간 숨어 지내며 살았지만 중국 경찰인 공안에게 잡혀 북한으로 끌려가 수감생활을 했어요. 그렇게 2005년까지 4번의 탈북과 3번의 수감생활을 겪으며 어렵게 한국으로 왔습니다.”

이씨는 북한 여군 출신으로 6~7년간 군 생활을 했다. 당원활동을 했던 그는 다른 여성 탈북자보다 오랫동안 수감생활을 견뎌야만 했다.

“중국 당국의 북송은 사형선고나 마찬가지에요. 특히 남자 탈북자들을 끌고 갈 때 족쇄보다 심한 처벌로 사람대우를 하지 않습니다. 탈북 했다는 이유 하나로 같은 동포를 짐승 끌고 가듯하죠.”

이 씨는 중국에서 사는 동안 언제 붙잡혀 갈지  모르는 두려움에 떨면서 살 수 밖에 없었다. 북한을 탈출하려면 북한서 중국으로, 중국 북방에서 내부 도시로, 그곳에서 타국으로, 총 3번의 여정을 거쳐야 한다. 탈출 비용과 방법은 동료 탈북자들이 어떻게 해서든 마련할 수 있지만 문제는 ‘안전’이었다.
이씨는 2007년 12월 현남이를 뱃속에 가진 상태에서 중국에서 태국을 거쳐 한국으로 왔다.

“한국에 오는 길은 하늘에 운명을 맡기는 일이었어요. 태국은 탈북자들을 난민으로 받아주는 국가지만 그 곳에서 3개월의 시간은 ‘여기서 내가 죽겠구나’였습니다.”

그날의 일을 담담하게 꺼낸 이씨는 “같은 시련이 다시 온다면 이제는 못 견딜 것 같다”고 회고했다.

새터민들은 멀리 두고 온 산천과 가족, 친척을 그리며 살아가고 있다. 고향을 버리고 자유를 위해 목숨을 걸고 강을 건너며 한국땅을 밟았지만 자유를 얻기 위해 넘어야할 산은 첩첩산중이다.

정부의 정착금과 생계지원비 등을 받으며 살아가고 있는 이들 가족은 일자리를 구하는 것이 가장 어려운 문제다. 이씨의 남편 역시 3년전 중국에서 오토바이 사고로를 당해 한 쪽다리가 다 낫지 않아 안정적인 직장을 구하지 못한 상황. 그래도 경전철 공사현장 등에 하루하루 아르바이트를 하며 분유값과 생활비를 보태고 있다.

“남편 다리에 박힌 쇠를 빼내는 수술을 해야 하는데 수술비가 없어서 늦추고 있어요. 힘들어도 일 하려고 노력하는 남편에게 감사할 뿐이죠. 지금은 제가 아이를 돌보느라 일할 순 없지만 아이가 어느 정도 크면 함께 할 계획입니다.”

#임대아파트서 80여명 살아
정부가 새터민에게 지원해 주는 임대아파트에 살고 있는 이씨 부부는 돈은 없어도 같이 마음 터놓고 말할 수 있는 이웃들이 있어 그나마 위로가 된다. 이들이 사는 아파트 단지에는 현재 80여명의 새터민들이 정착해 살고 있다.

“같이 아이 키우는 새터민 가정들이 있어 자주 만나곤 해요. 엄마들끼리의 만남이다보니 당연 아이들 얘기밖에 할 게 없지요. 애들 얘기하다보면 시간가는 줄도 모를 정도니까요.(호호)”

이야기가 자연스레 아이의 얘기로 옮겨가자 북한 말투의 투박함과 군인 출신의 씩씩함을 지녔던 이씨의 모습이 어느새 옆집 새댁처럼 부드럽게 변했다.

이들은 중국에서 생활할 때보다 10배나 높은 물가 때문에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태지만 알뜰살뜰 살림하며 그들만의 보금자리를 만들어 가고 있다. 현재 받고 있는 지원금도 언제쯤 줄어들게 될지, 끊길지 몰라 직업에 대해서도 고민이 많다.

#현남이 위해 열심히 일할 것
“한달 85만원의 지원금으로 빠듯하게 살아가고 있지만 부족하거나 불편하다는 생각은 전혀 없어요. 한국에 와서 제일 좋은 것은 마음 편하게 지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국가와 주민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집도 가정도 없었을 거예요. 그저 감사할 따름이죠.”

마을 주민센터에서도 새터민들에게 작지만 희망과 관심을 주고자 여성 출산자들에게 출산지원금과 생필품·상품권 등을 지급하고 있다.

“중국에서 스포츠마사지를 배웠어요. 한국에서 다시 배울 계획입니다. 새터민들이 한국에서 직장 얻는 게 힘들다고 들었지만 가족, 내 아들을 위해서 꼭 일 할 겁니다.”

일자리 구하기가 무척 힘들다는 그녀, 경제적으로 어느 정도의 수준을 확보하는 것이 무엇보다 시급하다고 말한다.

#일자리 얻어 저축생활 계획
이씨의 새해소망은 가족들이 아프지 않고 돈을 많이 버는 게 소원이다. 부모로써 내 아이가 먹고 싶고, 사고 싶고, 하고 싶은 것들을 위해 일하고 저축할 계획을 세워놓은 이씨.

“현남이 하나 남부럽지 않게 잘 키우고 싶어요. 공부뿐 아닌 아이가 하고 싶은 것들 누리게 하며 누구보다 지혜로운 사람으로 나라에 큰 일 하는 귀한 아들로 키울 겁니다. 우리가 많이 힘들게 겪은 부분을 애한테는 물려주고 싶지 않아요.”

죽을 목숨을 다해 한국으로와 이곳에서 생활한지 13개월된 이명옥씨와 그의 남편 김록씨 부부. 중국에서 배운 스포츠 마사지를 다시 배워 일을 시작하는게 목표이며 다리 수술을 빨리해 안정된 직장을 얻는게 소원인 이들의 부부는 올 한해 반드시 목표를 달성해 당당한 한국인으로 살아가고 싶다고 굳은 의지를 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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