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도둑’이란 별명을 가진 작가가 있다. 꽃잎을 똑똑 따는 버릇 때문에 생긴 별명이란다. 그는 꽃잎들에게 ‘넌 뭐가 될래?’라고 묻는다고 한다. 그는 꽃잎들을 책갈피에 넣어 말린 다음 마른 꽃잎에 드로잉을 더해 다양한 사람을 만들어낸다. 마른 꽃잎은 그의 손길을 거치면서 아이들로, 여인네로, 할머니로, 공주로, 황후로 변신하게 된다.


  '처음엔 그냥 흔한 꽃잎이었습니다.

  그런데 손과 발, 얼굴을 그려주자 사람이 되었습니다.

  마치 당신과 내가 아무 인연이 없다가 어느 날 연인이 된 것처럼 말입니다.'


  전시회에 가본 적은 없지만 인터넷으로, 텔레비전으로 접한 백은하 씨의 작품은 무척 신기했다. 상상력이 참 놀랍고도 예쁘다는 생각이 들었다.


  겨울이 다가오면 나무들은 추위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잎을 떨어뜨린다. 지금 숲에 들어서면 그 잎들이 발밑에서 바스락거린다. 어쩌면 11월의 숲 속에는 사람의 발걸음 소리보다 갖가지 색 낙엽들의 속삭거림이 더 요란할지도 모르겠다. 그래서이겠지만 이맘때는 자연학교 아이들과의 숲 나들이에서 자꾸만 나뭇잎을 들여다보게 된다.


  “어라~ 손을 살짝 갖다 대기만 했는데 저절로 툭 떨어져요.”

  스치기만 해도 후두둑 떨어지는 이파리에 아이들이 놀라 소리친다. 힘없이 떨어지는 순간까지도 아이들을 놀라게 하는 아까시나무 잎의 위력에 웃음이 난다.


  “나는 벌레 먹은 나뭇잎이 더 멋져 보이던데……”

  한 마디 던지면 아이들도 벌레 먹은 낙엽을 하나씩 찾아든다. 단정하게 생긴 나뭇잎보다 벌레 먹어 한쪽이 패인 낙엽이 더 분위기 있다는 데 마음을 같이 한다.


  한쪽에서 마른 갈대를 흔들고 놀던 아이들은 이삭에서 ‘붐 마이크’를 발견해낸다. 그리고는 영화를 찍겠다는 발상을 하고 저마다 한 가지씩 배역을 맡는다. 그 사이 씨앗들은 주인공이 된 아이의 머리 위로 눈발이 되어 날린다. 철따라 저절로 말라버린 꽃잎들이 춤을 추며 날리고, 아이들도 덩달아 신이 나서 어깨춤을 춘다.


  한바탕 놀고 난 뒤 낙엽으로 작품 만들기를 해본다. 주워 모으다보면 잎들은 금세 수북해진다. 우리아이들은 나뭇잎도둑은 아니다. 나무에 붙어있는 잎들을 일부러 똑똑 따지는 않았으니까. 굳이 별명을 붙이자면 ‘낙엽도둑’이라 해야 할까.


  잎을 들여다보는 아이들의 눈이 이렇게 묻는다. ‘넌 오늘 뭐가 될래?’ 자연으로 돌아갈 뻔했던 낙엽들은 아이들의 작품 속에서 다양한 주인공으로 다시 태어난다. 곤충, 풀밭, 사립문, 구름, 고라니, 영화 속 주인공 등. 단지 마른 나뭇잎 옆에 나뭇가지, 열매, 씨앗, 흙 등을 붙여준 것만으로 말이다.


  꽃도둑의 말을 흉내 내어 자연학교 친구들이 이렇게 말하는 듯하다.

  ‘처음엔 그냥 흔한 나뭇잎이었습니다.

  그런데 나뭇잎, 가지, 열매, 씨앗들로 꾸며주자 이야기가 되어버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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