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의 옛땅이름(75)

어정은 기흥구 중동에 속하고 어수물은 동백동에 딸린 마을이다. 용인이 도시화되기 이전에는 구성읍에 딸린 마을로 어수물마을은 동백리에 속했었고 어정마을은 어정삼거리에서 당시 구성읍내로 넘어가는 길옆의 하천을 경계로 각각 중리와 상하리에 속했던 마을이다.

지금은 동백리와 중리, 상하리가 모두 동(洞)으로 승격되었는데 동백지구 개발과 인근의 도시화로 인해 어수물은 마을이 거의 사라지고 일부만 남게 되었고 어정은 마을 주위에 아파트들이 들어서 도시의 한가운데 있는 마을이 되어 버렸다.

어정은 본래 어정(漁汀)으로 표기했었으나 1995년 일제식 지명을 정비할 때 어정(御井)으로 고쳤다. '어정(漁汀)'은 물가에서 고기를 잡는다는 뜻이 되고 '어정(御井)'은 임금이 마시는 우물'이라는 의미가 된다. 이는 같은 땅이름을 어떤 한자표기로 옮기느냐에 따라 하늘과 땅 같은 차이를 보이게 되는데 바로 어정에서 하나의 예를 보게 된다.

특히 어정은 과거 수원과 여주를 운행했던 수여선(水驪線)의 철도역이 있었던 관계로 많이 알려진 이름으로 당시 역(驛)이름의 한자표기가 어정(漁汀)이었다. 때문에 어정은 어정(御井)이 아닌 어정(漁汀)으로 알려지게 되었던 것이니 실로 60여 년간 무심하게 사용해온 이름이 되었던 것이다. 이를 일제 잔재 청산의 의미를 가지고 뒤늦게나마 본래의 뜻(?)으로 바로 잡은 것은 실로 뜻있는 일이라 하겠다.

어수물(御水)은 어정의 옆에 있는 마을이다. 동(洞)은 달라도 하나로 연결되어 있는 마을인 셈이다. 어수물은 '어수+물'로 풀어볼 수 있는데 어수(御水)가 바로 임금이 마시는 물이라는 뜻이니 한자화 된 지명에 우리말 이름이 하나 더 붙어있는 지명인 것이다. 즉 '역전앞'이나 '처가집'처럼 같은 뜻을 가진 말이 중복된 지명인 것이다. 그런데 마을의 유래를 보면 마을에 깊고 맑은 샘이 있었는데 임금님이지나가다가 물을 마셨기 때문에 어수물이라고 했다고 설명하고 있다.

이러한 유래는 본래의 이름을 되찾은 어정(御井)의 유래와 같다고 볼 수 있는데 이는 만일 임금님이 이곳을 지나갔다면 결국 두 마을 모두 거쳐 간 것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의 행정구분으로 마을을 가르는 것은 결국 사람들이 인위적으로 그어놓은 선에 불과한 것이니 당시에는 의미없는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실제로 조선왕조 500여 년간 왕조실록에 보이는 기록을 참고해 보면 세종임금이 용인 들(野)에서 사냥한 기록이 있고, 세조임금역시 용인 일대에서 사냥한 기록이 있다. 성종임금은 용인을 거쳐 여주 영릉에 행차하기도 하였는데 용인의 원(院)에서 유숙한적도 있으니 길목이었던 어정이나 어수물 일대가 쉬어갔던 장소로 선택되었다고 볼 수 있는 것이고 많은 수행원들 또한 물도 먹고 간단하게 요기도 했을 것이다.

속설에 충청도 노랭이인 자린고비가 된장을 발에 묻혀가지고 도망가는 파리를 ㅉ아 이곳까지 와서 어정어정 찾아다녔다고 해서 '어정개'라고 한다는 유래도 있으나 이 역시 앞서 많이 보았던 글자풀이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따라서 어정이나 어수물 모두 임금님이 친림(親臨)하시고 마을의 우물물을 떠 마신 뒤에 생긴 같은 뜻을 가진 길(吉)하고 상서로운 마을이름이라고 할 수 있다. 이제 수백 년을 내려오던 자연마을은 비록 사라지기도 하고 크게 변하기도 하였으나 새로이 아파트단지의 이름으로 남아 또 다른 생명을 준비하고 있는 것이다.

정양화/ 용인문화원 부설 용인향토문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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