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의 옛땅이름 (74)

문수산(文殊山)은 불교적인 이름이다. 성륜산(聖輪山)이나 법화산(法華山), 연화봉(蓮花峰), 선장산(禪長山) 등등 많은 산 이름들이 불교식 명칭을 가지고 있다. 불교가 우리나라에 전래된지 2,000 여년이 가까워지고 현재까지도 가장 영향력있는 종교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우리 주위에는 현존하는 사찰도 많이 있지만 지금은 절터만 남아 불당꼴이나 절꼴, 부처꼴, 등의 땅이름으로만 남은 곳도 많다. 절터가 남아있으되 위와 같은 형태의 지명으로 불리지 못하는 것 까지 감안 한다면 훨씬 많은 불교와 관련된 지명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문수산은 문수사(文殊寺)에서 비롯된 이름이다. 문수사는 문수보살에서 유래된 이름인데 전국 어디를 가도 크고 작은 문수사를 만날 수 있다. 문수는 지혜를 상징하는 보살이다. 지혜란 세속에서는 명석한 두뇌를 가리키지만 불교에서는 깨달음을 이루는 혜안을 말한다고 한다. 지혜와 행원은 불교의 두 축이라고하며 석가모니 부처님의 좌측에는 지혜를 상징하는 문수보살, 우측에는 행원을 상징하는 보현보살을 모시는 것도 그 때문이라고 한다.

깨달음의 핵심적 내용인 지혜를 상징하다 보니 문수보살은 주로 수행자들의 공부를 깨우치는 역할을 맡는다고 한다. 이를 보면 왜 수 많은 문수사가 세워 졌는지를 알 수 있으며 원삼면 문촌리에 있었던 문수사 역시 이와 같은 이유에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생각된다.

1894년에 간행된 『죽산부읍지』를 보면 사찰조에 문수사가 원삼면 문촌(文村)에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또 1894년 이전의 읍지에는 문수암(文秀菴) 이 보이는데 거리가 조금차이가 있으나 표기가 다르기 때문에 같은 절을 가리키는 지는 신중한 판단이 필요하다. 또 1894년 읍지 이후에는 기록이 사라지고 없는데 1910년경의 구한국시대의 『지명지』에는 문수산(文殊山)이 나타나고 있다. 이는 1894년 이후 어느 시기에 폐사(廢寺)된 것으로 보인다.

우리 주위에 있는 사찰을 방문하면 가장먼저 일주문이 맞이하는데 문 위에 높다랗게 절 이름이 걸려있다. 그런데 현판에 쓰여진 이름을 보면 대개 산명(山名)과 사명(寺名)을 이어서 씀으로써 절의 성격이나 특징을 드러내고 있다.

가야산해인사, 영축산통도사, 종남산송광사 등등의 예를 얼마든지 들어 볼 수 있는데 영축산은 본래 부처님시대에 고대 인도에 있던 산이름이요, 종남산은 본래 중국에 있는 명산이다. 이는 절을 짓고 난 뒤에 새로이 붙여진 이름이 명백한데 우리 용인에 있는 절에서도 이와 같은 예를 찾아 볼 수 있다. 누워있는부처님으로 유명한 와우정사의 경우 '연화산(蓮花山)와우정사'라고 쓰고 있는데 부근 어디에도 연화산은 없다. 절주위의 수많은 연봉(連峰)을 연꽃에 비유하여 아흔 아홉개의 봉우리가 있다고 하는데 절 이름과 더불어 새로이 지은 산 이름이다.

원삼면 성륜산에 쌍령사가 있었는데 나중에는 쌍령사라는 절이름이 산이름으로 전이(轉移)되어 성륜산은 사라지고 쌍령산이 된 예를 이야기한 적이 있다. 즉 사람들이 많이 부르는 이름이 세력을 얻게 되면 먼저 불리던 이름을 대신하여 새로운 땅이름으로 등장하게 되는 것이다. 성산의 본래 이름이 보개산>석성산>성산으로 변화해 온 것은 이러한 예의 하나이며 보개산이라는 이름은 이제 산신제 축문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 이름이 되어 버렸다.

문수산(文秀山)은 모현면 능원리 포은정몽주선생 묘역 위에 있는 산을 가리키는 이름이다. 발음은 같으나 한자표기가 다른데 이른 포은선의 문덕(文德)과 연결시켜 설명하는 예가 많은 것 같다. 또 포은 선생묘 바로 옆에는 역시 명현이신 저헌 이석형선생의 묘도 함께 있으나 문수(文秀)라 이름하여도 전 혀 어긋남이 없다. 주위에 앞의 문수(文殊)와 관련지을 수 있는 절터가 확실한 게 없으니 이 역시 후대에 지어진 이름이라고 할 수 있다.

결국 문수산(文殊山)과 문수산(文秀山)은 자연발생적으로 생겨난 우리말 땅이름을 한자로 옮겨 적은 것이 아니라 하나는 불교적이고 다른 하나는 유교적인 연관성이 있는, 인위적으로 지어진 지명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하겠다.

정양화 / 용인문화원 부설 용인향토문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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