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에 더 아름다운 늘푸른 나무들

요즘 계속되는 눈 소식에 마음만 들떠있기 일쑤입니다. 여느 때와 달리 내리는 눈은 바로 폭설로 이어지다 보니 숲을 향하는 길이 차량과 사람의 나들이를 허락하지 않는 탓입니다.

겨울 숲에 애타하는 마음에는 단지 눈에 덮인 산과 숲의 겨울 장관을 보는 재미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나무가 없고 산이 없이 그저 눈만을 보고 오는 것이 아니라, 식물 개체 개체가 추운 겨울을 맨몸으로 나는 감탄스럽고 대견한 모습들을 보자 함이 우선입니다.

흔히 겨울 숲이라 하면 나무들이 이파리를 떨구고 앙상한 가지만 남아 매서운 바람과 눈보라를 온몸으로 맞는 모습을 생각합니다. 하지만 겨울의 숲은 그렇지만도 않습니다.

숲 안을 걸어 들어가면 한겨울에도 푸른 이파리를 간직한 채 싱싱하게 살아가는 녀석들이 꽤 있습니다. 상록수라 부르는 늘푸른 나무들입니다. 이 늘푸른 나무에는 바늘잎나무(침엽수)만 있는 것이 아니라 넓은잎나무(활엽수) 또한 상당수 개체가 존재합니다.

▲ 겨울눈을 달고 눈을 맞고 있는 소나무
ⓒ2005 신순배
겨울 숲에 들어서 처음 만나는 늘푸른 나무는 소나무입니다. 가히 기상과 푸름이 늘푸른나무를 대표할 만 합니다.

늘푸른 나무이면서 바늘잎나무인 소나무가 잎을 단 채로 겨울을 견디는 이유는 바로 잎에 있습니다. 바늘잎은 넓은 잎에 비해 단면적이 적어 수분의 손실을 최소화합니다. 수분의 뺏김을 최소화하니 일부러 겨울에도 잎을 떨굴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손실을 최소화하여 자신을 보호하는 실리적이고 현명한 삶에 박수를 보냅니다.

▲ 억새는 마른 줄기 끝에서 마지막 떠남을 준비합니다.
ⓒ2005 신순배

겨울 숲은 지난 가을의 흔적들을 지니고 있습니다. 아직 씨앗을 다 날리지 못한 억새꽃 무리들이 생명이 떠난 줄기 끝에 매달려 거센 바람에 몸을 맡긴 채 흔들리고 있고 청미래덩굴은 생명을 떠나 보내기가 아쉬운 듯 아직 낙엽이 되지 못한 이파리로 내리는 눈을 받아내고 있습니다.

▲ 청미래덩굴 또한 이별이 아쉬운가 봅니다.
ⓒ2005 신순배

겨울 숲 한가운데 사랑의 열매가 열렸습니다.

자금우과에 속하는 백량금이라는 나무로 겨울에도 생기있는 잎을 달고 있는 늘푸른 나무입니다. 겨울에 익는 방울모양의 빨간 열매는 연말연시 사랑나누기로 상징되는 사랑의 열매의 원형입니다.

춥고 시린 겨울 숲, 백량금이 사랑의 온기를 온 숲에 퍼뜨리는 것 같아 마음이 포근해집니다.

▲ 백량금은 겨울 숲의 사랑전도사입니다.
ⓒ2005 신순배

돌잔고사리에게 겨울은 무척 힘이 든가 봅니다.

그도 그럴 것이 줄기 없이 땅에서 내놓은 이파리만으로 추운 겨울을 나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생명은 생명인지라 나름대로의 전략을 내놓는데, 로제트형으로 겨울을 나는 것이 그것입니다.

로제트란 민들레처럼 줄기가 없는 식물들이 겨울을 나는 대표적인 방법으로 이파리를 땅에다 바짝 붙여 살아가는 것입니다. 로제트 방식은 땅에 엎드림으로서 강풍을 피해갈 수 있고 상대적으로 따뜻한 지면의 기온에 의해서 한겨울에도 얼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전략입니다.

환경이 불리하면 바짝 엎드려 때가 되기를 기다립니다. 사람의 삶이 이런 것만 골라 취하는 듯하여 미소만 짓고 맙니다.

▲ 엎드려서 대를 기다리는 돌잔고사리
ⓒ2005 신순배

산새들의 달콤한 가을 성찬이었을 복분자나무.

단순히 산딸기로 통칭되어 불리던 것이 열매의 효능이 알려지면서 제 이름을 찾고 유명세를 타게 되었습니다.

정력에 좋다던가요, 아직까지도 성한 이파리를 간직하고 있는 게 그 말이 틀리지는 않은 듯 합니다.

▲ 아직까지 혈기가 남아있는 복분자
ⓒ2005 신순배

두세 살쯤 되었을 어린 종가시나무가 눈위로 고개를 내밀고 있습니다.

잎을 모두 떨군 낙엽수 사이의 이 녀석의 삶은 겨울에서야 여유가 있어 보입니다. 빽빽한 활엽수들이 하늘을 모두 차지하고 햇빛을 차단하여 한 줌의 햇살이 그리웠던 녀석에게 앙상한 가지만 남아 널찍이 열린 하늘은 자기만의 세상이 된 듯 한 것입니다.

▲ 잠깐 햇살에 취한 어린 종가시나무
ⓒ2005 신순배

가시나무(종가시나무)는 참나무과에 속하는 나무입니다. 신갈나무, 갈참나무, 떡깔나무, 졸참나무 등 도토리가 열매가 열리는 나무들을 통칭하여 참나무라 불리는데, 종가시나무 또한 열매가 도토리로 열리니 참나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참나무라 하면 대부분 신갈, 떡깔, 갈참, 상수리, 졸참, 구슬잣밤만을 열거할 뿐 종가시나무는 안중에도 없으니 이 나무가 느끼는 슬픔의 무게를 알 것도 같습니다.

가시나무는 구실잣밤나무와 함께 참나무과에서 겨울에도 잎을 떨구지 않는 늘푸른 나무입니다. 이 숲 속의 가시나무는 아직 사람 어른 키를 조금 넘어선 정도이지만 그 꿈은 15m에 이르는 거목으로 자라는 것입니다.

주위에 자신을 닮은 사스레피나무란 녀석이 당장은 눈에 거슬리지만 시일이 지나면 모두 밝혀질 일이니 크게 신경쓰지는 않는 듯 합니다.

숲속의 늘푸른 세계엔 나무들만이 있는 건 아닙니다.

덩굴식물들의 푸른 세계 또한 끝도 없이 펼쳐져 있습니다. 이 나무 저 나무 가리지 않고 위로 향한 버팀목만 있으면 달라붙어 자라는 덩굴식물은 황량한 겨울 숲에 푸른 빛을 돋우는 역할을 합니다.

▲ 푸른 겨울숲은 송악이 책임집니다.
ⓒ2005 신순배

덩굴식물은 다른 식물이나 물체에 달라붙어 위를 향해 자라는데 덩굴손을 이용하거나 줄기 자체로 감싸며 자라는 것, 뿌리를 내어 달라붙어 자라는 것 등 종류가 다양합니다.

송악은 흡기를 내어 나무에 달라붙어 자라는 늘푸른 식물입니다. 담쟁이덩굴과 비슷하게 생겼지만 담쟁이는 낙엽성 식물인지라 겨울에는 잎이 떨어지고 없는 탓에 숲 속에서 쉽게 구분이 됩니다.

덩굴식물은 제각각 감아 올라가는 방향이 정해져 있습니다. 칡은 물체를 왼쪽으로 감아서 올라가며, 등나무는 오른쪽으로 감아서 올라가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런데 이 줄이 같은 물체를 타고 올라가다가는 방향이 서로 틀려 엉키고 뒤섞여 결국에 더 이상 자라지 못하게 되는데 갈등이란 말이 여기서 파생된 연유입니다. 칡을 한자어로 갈(葛)이라 하니 갈등은 칡나무와 등나무가 서로 꼬이는 모습을 이릅니다.

▲ 겨울숲의 푸르름을 찾아 떠나시기 바랍니다.
ⓒ2005 신순배

겨울 숲은 무심히 바라보면 허전하고 삭막합니다.

하지만 조금만 세심히 바라보면 그 안에는 어느 때 보다도 푸른 싱그러움이 숨어있습니다. 아이들이 겨울 숲 그림 속에 푸른색을 넣고 싶으면 지금 떠나보시기 바랍니다. 천천히, 세심히 바라보면 그 안에 물감 한 통을 서도 모자랄 푸름이 숨어있으니까 말입니다.
사진 속 식물들이 사는 시오름은 서귀포시와 한라산의 중간지점에 위치한 해발 1118m, 표고 757m의 오름으로, 생김이 남성답다 하여 수컷오름, 숫오름(한자어:웅악)으로 불리다 현재의 이름으로 변하게 되었습니다.

일제강점시대에 숯을 만들었던 숯가마터가 아직도 원형대로 보존되고 있으며, 오름 아래에는 표고버섯을 재배했던 흔적들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초입부터 서어나무, 종가시나무 등 울창한 활엽수림대가 뒤덮고 있고 등반로 중간쯤으로 해서는 인공조림된 삼나무 지대가 빽빽이 펼쳐져 있습니다.

울창한 수림 탓에 등반 도중에 오름의 모습은 전혀 보이질 않고, 삼나무 조림지대를 끼고 왼쪽으로 오르면 정상에 닿습니다.

서귀포시에서 행해지는 생태기행의 주코스로 계절별로 등반로에서 다양한 들꽃들을 만날 수 있는 천혜의 생태를 자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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