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영조 기자
임영조 기자

혐오는 긍정적인 의미가 아닙니다. 싫어하고 미워한다니 그 대상뿐 아니라 그 감정을 가진 상대 역시 반갑지는 않습니다.

정치는 뭘까요. 대답은 어렵지 않게 제각각 해석을 내릴 만큼 일상 속 깊이 파고들어 와 있습니다. 정치에 혐오란 단어가 붙었으니, 혐오란 용어가 일상에 지대한 영향을 주지 않을까요.

요즘은 정치 이야기 외 다른 이야깃거리가 많이 없습니다. 아무래도 선거가 한 달여 앞으로 다가왔기 때문일 것입니다. 우리 동네에는 어떤 후보가 나오는지, 그들은 어떤 공약을 내세울지 한창 이야깃거리입니다.

정당공천까지 대부분 마무리된 상황이라 정치 더 구체적으로 선거는 호사가뿐 아니라 식당 밑반찬만큼 꼭꼭 씹어 먹을거리 역할을 합니다.

전국에서 정당별로 공천잡음이 나오고 있는 가운데 용인에서도 공천을 두고 정치권에서 말이 많은가 봅니다. 용인도 선거 때면 전략공천이 수시로 이뤄졌습니다. 정치 셈법에 명분까지 덧칠하고, 용인과 인연에 연결고리를 걸치면 용인을 대표하는 정치인이 됩니다.

전문성에 정치력까지 가졌다면 굳이 고향 타향을 따질 필요 없지만, 괜히 이런 말이 뒤에 붙으면 유권자가 가진 정치에 대한 신뢰는 사라집니다. ‘낙하산 공천’

지역 정치권도 주판을 튕겨봐도 스스럼 없이 그들을 받아들이기에는 아쉬움이 많은 모양입니다. 물론 정당을 대표해 후보로 용인에서 선거를 치러야 하기에 외면하지는 못하겠지만, 선 듯 쌍수 들고 선거운동에 동참하기에는 발을 빼는 이도 제법 많아 보입니다.

일부는 그저 발을 빼는 수준을 넘어 무소속 연대를 만들겠다고 합니다. 그들도 알고 있을 겁니다. 거대 정당 후보와 경쟁에서 당선증을 받는다는 것이 쉽지 않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도 이들이 나선 명분은 있습니다.

“너희들 용인 잘 모르잖아 용인 시민이 원하는 후보를 정당이 일방적으로 후보를 결정해서는 안 된다. 유권자가 택할 수 있는 후보 선택지를 넓혀야 한다” 깁니다. 짧게 하면 “내가 해보겠어”는 아닐까요.

잠시 잊고 있던 당이 하나 떠올랐습니다. 용인당입니다. 용인을 위해 정치하는 이들이 정당을 떠나 모여 힘을 합쳐본다는 상징적인 용어였습니다. 다소 부정적인 뉘앙스일 수 있지만 '우리가 남이냐?' 정도 의미로 여겨질 수 있을 듯합니다.

‘우리가 남이 가’에서 가장 핵심 의미는 아무래도 용인을 위한다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간 전략공천 받은 후보가 용인당 당원 못지않게 용인에 남아 ‘우리가 남이가’를 하며 버선발로 동분서주한다면 유권자는 선한 정치에 매력을 느끼지 않을까요.

선거철에 들었던 이름이 선거가 끝나면 사라지고, 다시 선거철이 되면 낯선 이름의 후보가 용인을 대표하는 후보가 된다면, 정치는 나와는 상관없는 결국 취미로 즐기는 몇몇 사람 관심거리 정도가 되지 않을까요.

관심 밖에 맴도는 정치는 외면 속에 먼지가 쌓이더니 급기야 혐오 대상으로 전락하기도 합니다.

지역 정치인에 대한 씁쓸한 소식이 그 역할을 하는 모양새입니다. 지난해 말부터 올해 초까지 용인시의회에서는 성추행성 발언이 문제가 되더니, 며칠 전에는 음주운전을 한 경기도의원이 세간에 질타받고 있습니다. 지역을 위해 일하겠다고 나선 의원들이 행적이 칭찬과는 거리가 있어도 한참 있어 보입니다.

탓할 것도 없습니다. 지역주민을 대표해 일하겠다고 쩌렁쩌렁 외치던 이들이 뽑아놨더니 정치에 관심을 가지지 말라는 듯하고 있으니, 혐오가 곧 정치고 정치는 곧 혐오스러운 것이 되는 것은 당연하지 않을까 합니다.

익숙해야 합니다. 굳이 지역 정치인이 아니라도 낯선 외지인이 선거철에 맞춰 용인 곳곳을 다니며 인사를 하더라도 유권자가 가질 자세는 지켜보며 익숙해지는 것입니다. 그 익숙함은 정치가 혐오와 다르다는 것을 드러나게 할 쟁기고 선 고운 붓이며, 밝은 빛일 것입니다.

정치에 무관심해지는 순간, 용인은 정당이 정치하기 좋은 도시가 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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