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영조
임영조

설 명절 잘 보냈는지요. 고향이 남쪽이라 경기도에서 개인 차량을 이용해도 상당한 시간이 걸립니다. 오가는 데 각각 7시간이 조금 더 걸립니다. 그래도 고향은 포근했습니다. 귀성길은 항상 손은 무겁게 하라고 했습니다. 평소 자주 가지 못하니 더 챙기려 하지만, 올해는 특히 쉽지 않았습니다. 마음은 그렇지 않다고 해도 마음은 현실을 표현하는 데 상당한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고향이 흔히 말하는 시골입니다. 농업이 주요 경제원입니다. 봄이면, 감자와 딸기가 풍성히 나오며 여름엔 제철 과일이 한정 없습니다. 가을이면 들녘은 농심을 담은 황금색 물결이 일렁입니다.

그래서일까요. 흐드러진 농산물은 농촌에 사는 아이들에게 먹을거리라기보다는 놀거리에 가까웠습니다. 감자로 야구하고, 수박은 축구공을 대신해 뒹굴어 다니기 일쑤였습니다. 물론 상품성이 매우 낮은 것들이기 때문에 아깝다는 생각은 그리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농산물은 농민 피땀이 고스란히 담긴 것입니다. 옹골차게 익은 참한 것은 귀한 가족이나 이웃과 나눴습니다. 고급 백화점에서도 볼 수 없는 것입니다. 그 가치는 돈으로 환산하기 힘듭니다. 가족애며, 인정입니다.

명절 과일은 또 다른 의미입니다. 특히 과일 구하기가 쉽지 않은 설은 더 했습니다. 말 그대로 귀한 음식이었습니다. 지금에야 외국산이 많으며, 시설재배 역시 발달해 제철 과일이란 표현이 무색할 정도입니다.

농촌을 떠나 도시 생활하다 보니 농산물이나 과일을 돈 주고 산다는 것이 아깝다는 생각까지 들었을 것은 어쩌면 당연했을지 모릅니다. 너무 흔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가족이나 이웃에게 너무 귀한 것을 받아왔기 때문입니다.

과일값이 천정부지라고 합니다. 명절을 맞아 찾은 고향 대형상점에서 팔리고 있는 사과 한 상자 평균 가격 역시 5~6만 원이었습니다. 용인과 같은 대도시와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상자 속에는 사과 10개가 채 들어가 있지 않았습니다. 배는 더했습니다. 멜론 크기만 한 배 하나 가격은 만 원을 훌쩍 넘었습니다.

참 아찔한 가격이었습니다. 설을 맞아 성인 키 두 배는 넘길 만큼 쌓여 있었지만, 오가는 사람마다 선뜻 사려하지 못했습니다.

과일이 금값으로 오른 이유는 많겠지요. 누구는 가격 조절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정부에서 이유를 찾기도 하고, 또 어떤 사람은 각종 물가 상승의 흐름에서 불가피한 상황으로 세계적 추세라고 보는 것입니다.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사과 한 개 가격 1만 원 시대는 우리 서민에게 직격탄을 날립니다. 과일 가격 하나쯤 오른 것이 우리 생활에 얼마나 큰 영향을 주겠느냐 여기겠습니까. 과일값이 도드라지게 급상승한 게 아니라 생활필수품 가격 고공행진을 과일이 이끌고 있다는 것이 경제 전문가 분석입니다. 지금 상태라면 달걀 하나에 500원 하는 시대는 절대 오지 않을 것이라고 누가 장담하겠습니까.

설 명절을 보름여 앞두고 용인 시내 곳곳에는 ‘함께해서 행복한 설 쇠세요’란 현수막이 내걸렸습니다. 보기만 해도 풍족함이 느껴지는 문구입니다. 그럼에도 문득, 정말 올해 설 함께 하는 것만으로 행복한 설이었나요.

땅값을 크게 올린 미래 먹거리 반도체를 이야기하고, 두 달여 앞으로 다가온 선거 이야기를 나눠보고, 축구 국가대표도 절대 빠지지 않은 주제였을 겁니다.

가족끼리 정겨움을 나누는 그 시간, 차례상에 오른 과일 한쪽에 담긴 서민 경제는 이야깃거리가 되지 않았을까요.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습니다. 어수선한 연말·연초 분위기를 뒤로 하고 본격적인 2024년을 살기 시작합니다. 잠시 늦췄던 계획도 이제는 하나하나 실천해야 할 때입니다. 때문에 다시 신발 끈 제대로 묶고 달리는 길 응원해 봅니다. 귀하고 상품성 높은 과일을 가족과 또 이웃에게 나눠주던 시대는 지나, 지금 우리는 사과 하나에 만원 하는 세상에서 살고 있다는 것을 절대 잊지 말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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