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미취학 아동이었던 시절에 ’토마스와 친구들’이라는 티브이 프로그램을 계속해서 보여줘야 하는지 심각하게 고민한 적이 있었다.

햇살이 비치는 겨울 숲 풍경.
햇살이 비치는 겨울 숲 풍경.

'매우 쓸모 있는 기관차(very useful engine)'가 되어야 한다고 스스로 다짐하는 모습과 더불어 자신이 최고임을 증명하기 위해 기관차들끼리 경쟁하며, 나중에 쓸모없게 되어 폐차될까 두려워하는 모습을 자주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당시 직장을 그만두고 남편의 경제활동에 의지하며 육아에 전념하고 있던 터라 티브이 속 내용에 대한 거부감이 더 컸던 것 같다. 아이들이 어릴 적부터 은연중에 자신이 어딘가에 꼭 필요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살게 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들었던 건 사실이다.

주말에 스마트폰을 보며 집에서 빈둥거리는 아이에게 10년도 더 지난 TV 프로그램을 물어보니 토마스 기관차는 기억하지만 내용은 전혀 기억하지 못한다는 말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매번 어딘가에 의미를 부여하거나 숨겨져 있을 거라 생각하고 그것이 필요한 것인지 아닌지를 판단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빠져있던 게 오히려 필자가 아니었던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철학자가 이야기하듯 자식과 부모 사이에 어떠한 이익 관계가 없듯이 세상엔 그런 의미 없는 것들이 더 많으니 피곤하게 살지 말란 이야기가 나를 빗댄 것 같았다.

푸릇푸릇한 나뭇잎을 뽐내는 울창한 여름 숲 산책길에서 그 푸르름과 대조적으로 썩어서 부러진 나뭇가지나, 태풍에 꺾여 시들어진 잎을 달고 말라가는 나뭇가지에 눈길이 가곤 했다.

쓰임이 끝난 가지와 나뭇잎들의 쓸쓸함에 ‘토마스와 친구들’의 매우 쓸모 있는 기관차가 오버랩 된다면 비약이 심한 걸까 하는 생각이 떠올랐다.

해 질 무렵 강아지와 산책
해 질 무렵 강아지와 산책

갈색으로 변해버린 이름 모를 풀들, 수북이 쌓인 낙엽, 앙상한 나뭇가지, 그 사이로 예전엔 보지 못했던 다른 풍경들, 완연한 겨울이 되어가는 요즘의 산책 풍경이다.

여름과 대조적으로 반짝반짝 빛이 나던 푸른 잎들이 떨어지고, 마른 가지들이 적나라하게 드러나 어느 것이 살아있는 가지인지, 썩은 가지인지 분간하기 어렵다. 그저 나무 자체로 존재하는 듯하다.

나무의 이름이 무엇인지, 어떤 쓸모가 있는지 의미를 부여하거나 추측할 일 없이 숲 자체의 모습을 만끽하고 가지 사이로 비치는 따스한 햇살만으로 충분히 만족감을 느낀다.

오늘도 필자는 쓸모없는 강아지와 함께 산책한다. 느릿느릿 걸으며 쓸모없이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특별히 쓸모없는 강아지는 산책길이 마냥 즐겁다. 쓸모없어 보이는 지금이 행복하다고, 수능을 망친 아들에게 말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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