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7시가 지나야 빼꼼히 얼굴을 내미는 해님 덕에 필자는 아침 운동을 서두르지 않아도 돼 따뜻한 이불속에서의 시간이 길어졌다.

국에 넣어 먹기 위해 말리고 있는 무청
국에 넣어 먹기 위해 말리고 있는 무청

요즘 숲속 오솔길엔 참나무 잎들이 떨어져 수북하게 쌓여있다. 걸을 때마다 사각사각 나뭇잎 밟는 소리가 마치 숲속 행진곡을 듣는 듯하다.

여느 때 같으면 1시간 남짓 걷기 운동 후 텃밭에서 할 일이 많았는데, 김장을 마지막으로 가을걷이도 끝이 나서 밭에서 할 일이 많이 없어졌다. 이제부터 3개월 동안 전원생활은 가장 편하면서 외로운 시기가 될 것 같다.

11월엔 김장을 3번이나 했다. 배추를 90여 포기 심었는데, 농약을 많이 주지 않다 보니 이래저래 못 먹게 된 배추를 빼고 80여 포기의 배추를 뽑아서 절이고 씻어서 김치를 담갔다.

남편이 도와준다고는 하지만, 혼자서 김치 담그기가 힘들어서 40여 포기를 2번에 나누어 아이들 김장까지 일찌감치 마쳤다. 작년에는 아이들까지 모여 김장 축제를 열었는데, 올해는 시간 맞추기 힘들어 혼자서 끝냈다.

나머지 40여 포기는 11월 마지막 주말에 절여서 씻어 놓은 것을 친정 동생이 양념을 가져와서 김치를 만들었다.

친정어머니가 일찍 돌아가셔서 친정어머니의 사랑이 그리웠는데, 우리가 전원으로 이사하면서 동생에게 친정집의 사랑을 조금이라도 느끼게 해주고 싶어서 해마다 필자 집에서 김장을 한다.

어렸을 때 먹었던 친정어머니 김치는 시원한 맛이 났다. 김장 때가 되면 어머니는 큰 통을 가지고 소래포구로 가서 생새우와 새우젓을 사 왔다. 생새우를 넉넉히 넣고 새우젓으로 간을 맞춘 우리 김치맛은 다른 집 김치와는 비교할 수 없이 맛이 있었다.

김장 날 저녁 밥상에 올라온 텃밭에서 키운 고구마와 김장김치.
김장 날 저녁 밥상에 올라온 텃밭에서 키운 고구마와 김장김치.

아버지는 김장하기 며칠 전에 지금은 보기 힘든 큰 항아리 몇 개를 햇볕이 적당히 드는 곳에 묻었다. 항아리 묻은 곳에 작은 움막처럼 기다란 나뭇가지와 짚으로 김치 광을 지었다. 그 김치 광은 친구들과 숨바꼭질 할 때 숨는 장소로 최고였다.

우리 집 김장 준비는 봄부터 시작되었다. 봄에 고추 모종을 심어서 여름 내내 긴 장마와 지루한 실랑이를 해가며 붉어진 고추를 말렸다. 둥근 호박을 일찍 점찍어 두어 가을에 노랗게 익으면 김장 소용으로 보관해놓았다.

요즈음은 늦더위가 심해 8월 하순경 비가 조금씩 내리는 날 김장배추를 심는다. 아침마다 벌레를 잡고 무름병이나 진딧물에 걸릴까 늘 노심초사해야 했다. 여름 막바지에 쪽파를 심었는데, 추석에 먹을 것과 차등을 두어 날씨를 봐가며 김장용은 보름쯤 뒤에 심었다.

전통 5일 장날이면 늘 그 자리를 지키며 계절이 바뀔 때마다 품목을 바꿔 파는 할머니에게 쪽파 씨를 샀다. 오천 원어치의 양을 작은 바구니로 푹 퍼서 검은 봉지에 담고는 큰 주먹으로 두어 번 덤을 주는 할머니의 인심은 우리 집 텃밭 빈 공간을 쪽파로 채우고도 남았다.

할머니는 뿌리 쪽과 작은 싹은 꼭 가위로 자른 뒤 심으라고 당부했는데, 쪽파를 잘 기르는 할머니의 비결을 그대로 따라서 심었다.

갓도 텃밭 한쪽에 심었고, 시장에서 산 마늘은 시간 날 때마다 껍질을 까서 갈아놓았다. 천일염도 여러 포대를 사서 미리 간수를 빼놓았다.

김장 전날 배추를 뽑아 점심을 먹은 후 소금에 절였다. 전원에 살면서 배추 절이고 씻는데 선수가 되었다. 배추 겉잎은 무쇠솥에 삶아서 한 번 먹을 만큼씩 비닐에 담아서 냉동실에 넣었다. 우거지국을 끓일 때 요긴하게 쓰인다.

김장하는 날엔 표고버섯, 다시마, 북어 대가리, 멸치, 사과와 배 등을 끓여서 육수를 내고 찹쌀죽을 쑤어서 식혀 놓았다.

일찌감치 사놓은 생강은 어디에 두었는지 한참을 찾고 뒤늦게 까고 가는 데 시간이 걸렸다. 호박 삶은 것과 연시 그리고 매실로 만든 청이 설탕을 대신한다.

시중에서 파는 멸치젓갈과 새우젓도 준비하고, 생새우도 친정어머니처럼 듬뿍 넣으려 넉넉하게 사 두었다.

아침 일찍 배추를 씻어 물을 빼는 동안 동네 마트에서 서비스 차원으로 썰어준 무채에 준비한 모든 재료를 넣고 속을 버무렸다. 배추에서 노란 잎을 따서 버무려놓은 무채를 넣어 간을 보았다. ‘바로 이 맛이야!’

장기간 보관할 음식이니 간은 보통 때보다 조금만 더했다. 김장하는 날 수육이 빠지면 서운해서 힘들었지만 한 접시 준비했다. 올해 김장김치도 성공이었다. 봄부터 가을까지 우리 먹거리를 위해 애써준 텃밭에 고맙다는 인사로 막걸리 한 사발을 뿌려주었다.

‘텃밭의 흙아, 한겨울 편히 쉬거라. 부지런한 우릴 만나서 고생 많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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