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영조 기자
임영조 기자

경기도 김포를 비롯해 일부 도시를 서울에 편입시키는 사안이 화두입니다.

최근 가장 활발하게 논의되고 있는 김포는 용인에서 차로 한 시간이 더 걸릴 만큼 거리가 있습니다. 도시 규모뿐 아니라 생활 환경 역시 그만큼 차이가 있습니다.

그러니 굳이 용인시를 서울시에 편입해 달라고 요구하는 목소리는 그리 크지는 않을 듯합니다. ‘서울 용인구’ 아무리 생각해도 어색하기 짝이 없습니다.

만약 시간을 돌리고 공간을 옮긴다면 어떨까요. 1990년대 후반 말입니다. 용인시가 지금보다 도시화가 덜 됐고, 인구 역시 20~30만 정도였던 그때. 지금 처인구 도심을 제외하면 사실상 대부분 도시화 되지 않았던 시절입니다. 도시 기반 시설도 상당히 부족했습니다. 당시 인근 수원시는 용인을 ‘촌 동네’라고 할 만큼 격차가 있던 시절 말입니다.

그 시절 만약 수원시나 혹은 또 어딘가와 통합 이야기가 나왔다면 어땠을까요. 모르긴 몰라도 명분도 없고 가능성도 작았으며 무엇보다 시민으로서 필요성도 전혀 느끼지 못했을 것이라 봅니다. 그러니 당연히 반대하지 않았을까요.

그렇게 용인시는 대도시가 됐습니다. 자족도시를 넘어 경기도를 이끌어갈 중심도시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한번 볼까요. 용인시가 얼마나 대단한지 말입니다. 용인시로 유입되는 인구 중 서울을 떠나 용인으로 온 경우도 상당합니다.

여기에 서울로 통근하는 시민 역시 2021년 기준 전체 통근인구 대비 17%를 넘습니다. 행정 면적은 더 이상 할만이 없습니다. 대한민국 수도와 동일선상에서 비교하긴 뭐하지만 용인 역시 빠지지 않을 만큼 기반 시설이 있습니다. 경쟁력 있는 도시 위상을 확고히 자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이런 경우도 있습니다. 수지 일부에서는 용인시민보다는 수지 사람에 익숙하다고 합니다. 처인구 일부 시민은 여전히 처인구 시가지를 용인 시내라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어디 그것뿐인가요. 기흥구 일부 지역은 수원과 행정구역을 바꿔 달라고 요구하기도 했습니다. 물론 저마다 명분과 절박함이 있는 주장이긴 하겠지만 그들은 용인보다 다른 곳으로 가는 것이 유리하다고 판단하거나 용인 내 조화로움을 미처 생각하지 못한 건 아닐까요.

일상생활이 다르고 처해 있는 형편이 달라서 용인이란 자치단체 소속감은 당연히 옛날 같지 않을 겁니다. 그러니 자기 상황에 맞춰 용인시 어느 한 곳이 수원시가 되고, 또 화성시가 되고, 성남시가 되고 또 서울시가 된다고 해도 큰 관심사가 아닐 수 있습니다.

공동체는 그저 도시명으로 규정되는 것이 아닙니다. 도시명이 바뀐다고 해서 공동체가 가진 장단점이 또 변하는 것도 아닙니다. 이를 정체성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용인시는 그저 하나의 자치단체 명만이 아닙니다. 용구현이란 명칭이 사용된 이후 용인특례시인 지금까지 우리 주변에는 용인시민이 만든 많은 흔적이 있습니다. 이는 수원 시민이, 화성시민이 성남시민이 서울시민이 만든 것이 아닙니다. 용인시는 많은 인구가 유입됐습니다.

다문화가 융합되고 있다고 봐도 될 것입니다. 에너지가 긍정적으로 본다면 도시가 질적으로 크게 성장하는 동력으로 작용하겠지만, 반대일 때 갈등 원인이 될 것이라는 우려도 있습니다.

더 이상 용인은 어느 도시에 편입되거나 통합될 대상이 아닙니다. 오히려 주변을 흡수할 만큼 큰 에너지를 내 뿜고 있습니다.

최근 경기도 일부 지역 서울 편입이 뜬금없이 운운 되는 지금. 지방자치와 공동체를 생각해 보는 계기는 분명 됐습니다. 용인이 용인이 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며, 용인에 반드시 있어야 할 절대 가치는 또 무엇인지 한 번쯤 예상해봤으면 합니다.

누군가 국호를 서울로 바꾸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는 한탄조 주장도 애써 외면할 필요도 없습니다. 용인특례시라도 좋습니다. 아니면 서울 용인구라도 좋습니다. 그것보다 중요한 것은 용인이란 무형의 공동체 의식입니다.

정치 논리와 행정 편의에 행정구역이 쥐락펴락하는 사이 정작 우리는 과거를 잃고 이웃을 잃고 있는지 모릅니다. 용인을 잃고 지금 곁에 있는 이웃을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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