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격적인 수확 철로 접어드니 주말이면 도시나 다른 지역에 사는 동네 어르신들 자식들이 와서 일손을 돕는 모습을 자주 본다.

소일거리 삼아 농사를 짓는 동네 어르신들 텃밭은 초보 농사꾼의 텃밭과 확연히 다르다.
소일거리 삼아 농사를 짓는 동네 어르신들 텃밭은 초보 농사꾼의 텃밭과 확연히 다르다.

일부는 참으로 번거로운 연례 행사 중 하나라 생각할진 모르겠으나, 적어도 자식들과 함께 일을 하는 어르신들 얼굴에는 뿌듯함과 즐거움이 확연하게 보인다. 같은 동네에 사는 필자도 덩달아 즐거워지는 계절이다.

시골에 오래 살면서 나름 또 다른 눈썰미가 추가됐는데, 그중 하나가 오랫동안 농사를 지어온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경력이 오래된 사람과 그렇지 않은)을 구별하게 된 것이다. 텃밭 모양새만 보면 확연히 드러난다.

특히 직업 농사꾼이 아닌 도시에 사는 자식들을 위해 또는 자급자족하거나 이웃에게 먹거리를 나누어주기 위해 필자를 포함해 소일거리 삼아 농사를 짓고 있는 동네 어르신들 텃밭은 초보 농사꾼의 텃밭과 확연히 다르다.

출하량이나 결과물의 우수한 품질은 둘째치고, 가장 눈에 띄게 다른 점은 텃밭이 구조적이든 생김새든 너무 아름답다는 점이다.

타지에 사는 자식을 둔 건넛집 꼬부랑 할머니 텃밭은 예술작품에 가깝다. 봄에는 마늘, 양파와 보리가 조화롭게 어우러지다가 여름이 되면서 밭 경계에 쳐놓은 오이 그물을 타고 올라온 호박 넝쿨이 자연스럽게 담을 만든다.

그 뒤로 옥수수를 드문드문 심어 밭을 지키는 보초병이 되어 고구마와 고추 등 풍성하게 자라는 각종 농작물을 지키는 모습을 보이다. 그런가 하면 가을이 되어 햇빛 아래 오와 열을 맞추어 가지런히 누워있는 들깨는 패턴 아트와 같은 모습이다.

결혼 이후 어느 정도 시간이 생기면서 가장 재미나고 오랫동안 조경을 공부했다. 조경 이론에 대한 필자의 자부심은 매년 다른 모양으로 멋진 텃밭을 만드는 몇몇 어르신들에 대한 경외심으로 바뀌었다.

조경에 대한 자부심은 해마다 멋진 텃밭으로 꾸미는 몇몇 동네 어르신들에 대한 경외심으로 바뀌었다.
조경에 대한 자부심은 해마다 멋진 텃밭으로 꾸미는 몇몇 동네 어르신들에 대한 경외심으로 바뀌었다.

건넛집 할머니에게 비결을 물어보면 항상 수줍은 모습으로 웃으시면서 “그냥 제때제때 잘 심으면 된다”는 말씀만 하신다. 파종 시기가 올 때마다 이것저것 가져다주시지만, 그 아름다움은 흉내조차 낼 수 없다는 걸 깨달은 지 오래다. 물론 중간에 일을 자초해서 만든다는 불만 가득한 가족들과의 티격태격도 계속해서 함께 따라왔다.

윌리엄 모리스는 예술은 일반인들의 노동 가운데 존재하는 ‘즐거움의 표현’이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가 우리 동네 아름다운 텃밭들을 본다면 아마도 자신의 주장이 헛되지 않았음을 알고 기뻐했을 것이다.

자신과 자식과 이웃을 위한 텃밭에서의 노동은 즐거움과 함께 자연스럽게 아름다움을 동반했다는 걸 의식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이뤄지고 있으니 말이다.

봄에는 기세등등하게 올해 농사를 잘 짓겠다는 마음으로 달려 든다. 하지만 막상 여름 장마를 지나 가을이 되면 그 기세는 보란 듯이 사라고, ‘농사는 내 체질이 아니’라며 애써 외면하는 과정을 되풀이해 왔다.

‘내년에는 다르게!’라는 마음으로 고민해보려 한다. 자연스럽게 몸에 밴 동네 어르신들의 미적 감각을 벤치마킹? 하며 예술을 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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