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연휴를 지내고 옷장을 정리했다. 여름에는 더 얇았으면 했던 옷들이 이젠 보기만 해도 춥게 느껴진다. 아이들의 따뜻한 옷차림을 보면 함께 따뜻해지고, 즐거운 발걸음인 아이들 덕분에 함께 즐거워진다. 베란다에서 키우던 거북이도 거실로 들여놓았다.

갈참나무 도토리
갈참나무 도토리

요즘 변온동물의 움직임이 활발해진 게 아무래도 물이 차가웠나보다. 가을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떨어진 낙엽을 밟을 때, 낙엽을 태울 때 나는 그 냄새를 우리는 가을 냄새로 여긴다.

어릴 적 기억 속에 뒷산으로 성묘를 가는 길에 그령을 스칠 때 났던 풀냄새와 흙냄새가 있다. 그 길에는 언제나 엄마의 손길이 담긴 성묘 음식이 있었으니 음식과 막걸리 냄새도 함께 기억난다. 필자 집안은 술을 마시지 못하는 내력 때문에 가져간 막걸리로 거의 무덤가 잔디만 호강시켰다.

선선한 가을 날씨에 따뜻한 물을 데우던 것은 아궁이에 걸린 큰 무쇠솥이었다. 아궁이에서 장작이 타닥타닥 타면서 나는 냄새는 구수하고 메웠다.

남편은 국민학생(현 초등학생)이 되기 전부터 소여물을 주기 위해 불을 피웠다고 했는데, 필자는 불을 피워본 적이 없다. 언제나 할머니나 엄마 옆에서 따뜻한 불을 쬐었던, 지금 말로 불멍을 오랫동안 했다. 지금 생각해도 여지없는 I(MBTI) 성향이었다.

가을 마당에는 떨어진 홍시로 달달하고 시큼한 냄새가 났다. 가끔 방금 떨어져서 깨끗한 홍시가 보이면 할머니께서 살짝 들어 먹어보라고 주셨다. 요즘 사서 먹는 홍시보다 더 달고 맛있었다. 할머니도 홍시를 많이 좋아하셨는데, 이가 좋지 않은 할머니에게 홍시는 좋은 간식이었을 것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두꺼웠던 감껍질이 어떻게 투명할 정도로 얇아지는지, 그렇게 익을 때까지 높은 나무 위에 달려 있는지 신기하다.

신갈천의 가을.
신갈천의 가을.

감나무도 따뜻한 곳에서 자라는 식물이라 주로 경기도보다 위도가 낮은 지역에 심어서 기른다. 요즘 아파트 단지 내에서 감나무를 보기도 하는데, 얼마나 맛있게 익을지 의문이다.

뒷마당 처마 밑에 걸린 마늘에서 나는 냄새, 방 구석진 곳에 걸려있던 콩나물시루 물 내리는 냄새, 고추 말리는 방에서 나는 매운 고추냄새, 텃밭 옆 두엄더미에서 나는 거름냄새, 볏짚냄새, 감자 삭히는 냄새 등 어릴 적 맡았던 냄새에 대한 기억이 참 많다. 그저 살았을 뿐인데 그 시대 우리 가족들이 준 선물같다.

지금은 그런 냄새를 맡을 수가 없어 그 선물이 더욱 소중하다. 그런 장소와 생활양식이 사라지고 심지어 필자는 도시에 살고 있다.

길을 걸으면 상가건물에서 치킨, 커피, 빵 냄새가 가득하다. 숲에서는 잔잔한 나무냄새, 공원에서의 바람냄새, 수영장 물냄새, 체육관 땀냄새, 시장에서만 맡을 수 있는 다양한 냄새가 요즘 가을 냄새인 것 같다.

향기가 필요한지 느끼지 못하던 때가 있었다. 다양한 냄새를 맡을 수 있었기 때문에 지금은 향기가 없으면 어색한 것 같다.

섬유유연재 향이 점점 오래가게 만들거나, 바디워시와 샴푸 향이 다양해진 것은 사람들이 자연의 다양한 향기를 그리워해서 그런 건 아닐까. 좋지 않은 것을 가리기 위함이나 물질의 풍요가 향기를 부른 것이 아니라, 그저 그리움이 부른 것이라고 생각한다.

냄새는 추억을 부른다. 이제 세상에 계시지 않은 할머니, 할아버지, 아빠의 기억까지도 냄새를 맡으면 되살아난다. 참 마법같은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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