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과 다른 여름이 지나가고 있다. 여름 시작 즈음, 가족이 모두 집에 없는 동안 에어컨을 켜지 않고 버티다 더위를 먹어 며칠 동안 머리가 아팠다. 몇 년 전 같은 상황이었을 때 엄마에게 ‘왜 에어컨을 켜지 않았느냐’고 핀잔을 주었다.

필자 자녀가 더위를 피해 떠난 바닷가에서 잡은 조개를 들어보이고 있다.
필자 자녀가 더위를 피해 떠난 바닷가에서 잡은 조개를 들어보이고 있다.

그런데 내가 똑같이 하고 있으니 이제야 그때의 엄마를 이해한다. 찬물에 개구리를 담가서 물을 끓이면 개구리는 물이 데워지는 줄 모르고 얌전히 죽는다고 한다. 이제 우리도 데워지는 물에 몸을 담그고 있는 개구리가 되었다. 지구 온도는 조금씩 오르고 기후는 점점 변하고 있다. 우리 몸이 더운 여름을 잘 견딜 수 있게 여름 피서가 불가피하다.

8월 극성수기만은 피하고 싶었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같은 목적지를 두고 달리는 차들과 함께 강원도로 갔다. 우리나라 피서철에 한가한 바닷가는 없다. 한가한 해수욕장이 있더라도 어울림이 없는 해수욕장은 재미가 없다. 꽉꽉 찬 해수욕장은 이유가 있다.

올해 바닷가 모래땅에 사는 민들조개(비단조개)도 풍년이다. 발로 모래를 살살 파헤치면 조개는 캐도 캐도 끝이 없다. 바닷물에 몸을 담근 사람들이 튜브에 몸을 맡기거나 파도를 타면서 조개를 잡았다.

산에서 고사리 꺾는 사람들의 마음이 이런 것일까? 바닥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바다가 너무 아름답고 고맙다. 요즘 지자체는 피서객들의 안전과 편의를 위해 해변에 모래를 추가하고 정리하는 바닥고르기 작업을 많이 한다.

주기적으로 파헤쳐지는 바닷가 모래언덕에서 그곳에 있어야 할 식물 보기가 점점 힘들어진다. 해변에 사는 식물은 소금 과잉 상태에서 벗어나는 재미있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대표적으로 털이 많이 나는데, 찬찬히 들여다보면 예쁘고 귀엽고 의미 있다. 올해도 보리사초, 갯메꽃, 해당화, 해송 등 해변에 사는 식물을 볼 수 있어서 다행이다.

한바탕 물놀이를 즐긴 후에는 강원도의 숲을 여유롭게 볼 수 있을 것이다. ‘사람은 푹푹 찌는 더위에 죽어간다’는 표현이 절로 나오는데, 숲은 흔들림 없이 푸르고 짱짱하다.

강원도의 소나무 숲은 단연 으뜸이지만 계곡을 따라 피나무, 오리나무, 버드나무, 신갈나무가 만드는 또 다른 숲도 정말 멋있다. 계곡의 돌을 들어 살피니 가재가 보였다. 산제비나비가 물을 먹으러 여기저기 날아 앉고, 매미가 단체로 울었다 멈췄다 반복하는 소리가 시원했다. 피서지에서 듣는 마음이 여유로워지는 음악이었다.

한밤중 평창 청옥산 육백마지기에 올랐다. 구불구불 길을 따라 올라가다 마지막에 비포장길을 달리면 거대한 풍력발전기가 서 있는 정상이 나온다. 평평한 육백마지기의 농사짓던 땅에 풍력발전기가 웅~웅~ 소리를 내며 돌아가는 것 또한 장관이었다.

강원도 평창군 육백마지기에서 올려다본 밤하늘 풍경이 풍력발전기와 잘 어울린다.
강원도 평창군 육백마지기에서 올려다본 밤하늘 풍경이 풍력발전기와 잘 어울린다.

아무도 없을 것 같은 산 위에 100대 이상의 차량이 빼곡했다. 이곳이 밤하늘 별을 보며 잠을 잘 수 있는 기막힌 장소이기 때문이다. 깜깜한 육백마지기에서 올려다보는 하늘에 별이 더 빛났다. 바람으로 에너지를 만드는 풍력발전기와 깨끗한 밤하늘이 잘 어울리는 커플 같았다.

더울까 봐 준비해간 얼음물이 무용지물이었다. 바람이 살짝 불었는데 겉옷을 준비하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 별자리를 읽을 수 있으면 좋았을 텐데, 아쉬웠다. 모두 숨죽이고 고요하지만, 반짝이는 그 순간을 즐겼다.

도심을 떠나 낯선 곳으로 휴가를 가는 이유는 일상을 벗어나 몸과 마음을 편안하게 하기 위함일 것이다. 돌아왔을 때 일상의 소중함을 느끼기 위한 것이고, 그래서 더 잘 살기 위한 것이겠지. 특히 자연경관이 좋은 곳을 찾아가는 것은 그만큼 우리가 자연에 몸과 마음을 두고 싶어 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자연이 무너지면 우리도 무너진다. 요즘처럼 잦은 이상기후로 걱정이 생기기도 하지만, 아직 피서할 자연이 남아있으니 다행이고 감사하다. 요즘 피서지의 분리수거도 잘 되는 것 같다. 우리는 앞으로도 깨끗한 바다에서 조개를 잡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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