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수아 변호사
조수아 변호사

과거 우리나라는 낙태를 전면 금지했습니다. 모자보건법에서 정하는 일정한 의학적, 우생학적, 윤리적 사유 등이 있는 특별한 경우에만 낙태를 허용하고, 원칙적으로 모든 낙태 행위는 처벌 대상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임신한 모든 사람이 출산할 여력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건강 상태, 어려운 경제 상황, 이혼, 혼전임신, 태아가 기형아일 때 등 산모가 아이를 출산하여 양육하기가 어려운 경우들이 많이 있습니다.

모든 경우 낙태를 전면 금지하고 산모와 의사에게 형사책임을 지우는 것이 타당한지, 낙태는 필연적으로 여성이 할 수밖에 없는데 모든 책임을 여성에게 지우는 것이 불합리한 것은 아닌지, 여성의 자기 결정권보다 아직 태어나지 않은 태아의 생명권이 더 우선하는지 등 낙태죄에 관하여 오랜 사회적 논의가 있었습니다.

여성의 자기 결정권과 태아의 생명권 사이에서 팽팽한 줄다리기가 이어졌고, 헌법재판소는 2019년 4월 11일 낙태죄(부녀의 자기낙태 및 의사낙태)가 헌법에 위반된다는 헌법불합치 결정을 하게 됩니다.

헌법재판소는 “낙태죄는 입법목적을 달성하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정도를 넘어 여성의 자기 결정권을 제한하고 있어 침해의 최소성을 갖추지 못하였고, 태아의 생명 보호라는 공익에 대해서만 일방적이고 절대적인 우위를 부여함으로써 법익 균형성 원칙도 위반하였으므로, 과잉금지원칙을 위반하여 임신 여성의 자기 결정권을 침해하는 위헌적 규정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다만 “자기낙태죄에 대하여 단순 위헌결정을 할 경우, 임신기간 전체에 걸쳐 행해진 모든 낙태를 처벌할 수 없게 됨으로써 용인하기 어려운 법적 공백이 생기게 되므로 2020. 12. 31까지 개선 입법을 이행하여야 하고 그때까지 입법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자기낙태죄, 의사 낙태죄 조항은 2021. 1. 1부터 효력을 상실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오늘날까지 국회는 개선 입법을 하지 않았고, 결론적으로 현재 낙태한 부녀와 의사를 처벌할 수 있는 법 조항은 없습니다.

헌법재판소에서 우려한 ‘임신기간 전체에 걸쳐 행해진 모든 낙태를 처벌할 수 없게 됨으로써 용인하기 어려운 법적 공백이 생긴 상황’이 초래된 것입니다. 임신 몇 주까지의 낙태를 허용할지는 이 논의에서 특히 중요한 부분인데 그 기준조차도 부재합니다. 이는 분명 입법의 미비입니다.

여성의 자기 결정권은 반드시 보호받아야 할 중요한 법익이고, 아직 태어나지 않은 태아의 생명권 역시 너무나 소중한 법익입니다. 그 중간의 어느 지점을 우리는 찾아야 합니다.

임신 6주 태아를 낙태하는 것과 임신 38주의, 언제든 세상에 나올 수 있는 태아를 낙태하는 것은 분명히 다릅니다. 이미 사람과 다름없는 태아를 낙태해야 하는 행위는 산부인과 의사들에게도 엄청난 정신적 고통을 줄 것으로 생각합니다.

아무런 기준이 없는 지금의 상황에서 의사들은 낙태를 해줘도 되는지를 확신할 수 없어 수술해주기 어렵고, 산모들은 여전히 낙태해준다는 병원을 수소문하여 찾아가야 합니다. 음지에서 불법 낙태가 이루어지던 이전과 실상 많이 달라지지 않은 것입니다.

헌법재판소의 결단이 무색하게도 여성의 자기 결정권과 태아의 생명권 둘 다 제대로 보호받지 못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부디 국회의 지속적 논의와 입법이 조속히 이루어지기를 희망합니다.

(법무법인 동천 031-334-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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