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가 많이 더워졌다. 아침 산책 시간을 1시간 정도 당겨서 오전 5시 30분쯤 집을 나선다. 산책로 논길 양쪽으로 키를 잰 듯이 고만고만하게 피어있는 하얀 개망초꽃이 눈부시다. 하얗게 줄 선 꽃길을 남편과 앞서거니 뒤서거니 걷다 보면 드라마 주인공이라도 된 듯하다.

텃밭에서 자라고 있는 토마토
텃밭에서 자라고 있는 토마토

우리 부부는 함께 살아온 지 40년이 훌쩍 넘었다. 필자는 젊은 시절 도시에서 아이들 키우고 시댁 대소사로 바쁘게 살다가 전원으로 이사 와서 남편과 작은 텃밭 농사를 짓는 재미에 푹 빠져있다.

텃밭에 고구마, 감자, 고추, 토마토, 오이 등 손가락으로 세어보니 재배하는 푸성귀 가지 수 만해도 20종이 넘는다. 주말 집에 오는 아이들 손에 쥐어준 봉지에는 우리 집 농산물 중 최고의 것들만 골라서 담는데, 아이들 주는 재미까지 더해져 행복감은 도시에 살 때보다 훨씬 크다.

우리 부부는 농촌에서 태어나 부모님 농사짓는 것을 보고 들으며 자랐다. 하지만 농사일에 익숙치 않아 모종 파는 가게 사장님의 조언과 인터넷을 참고로 7년째 텃밭 농사를 짓고 있다.

이렇다 할 농기구도 없어 호미, 괭이, 삽 등 기본적인 것만 구입하고, 남편이 삽으로 땅을 파서 퇴비를 뿌리고 이랑과 고랑을 만들어 작은 텃밭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지금은 기후변화로 많이 변하긴 했지만, 절기에 따라서 파종하고 모종을 심는 농촌에 전해 내려오는 농사짓는 계절 시계가 있다.

여기저기에서 듣고 배워 씨앗 종류와 지역에 따라 다른 계절 시계에 맞추어 작은 텃밭 안에는 비어 있는 공간이 없을 정도로 채소를 심었다. 첫해에는 결과물이 좋지 않았다. 퇴비 몇 포대 뿌린다고 마사 토질인 텃밭이 채소들을 잘 자랄 수 있도록 변하게 할까.

이후 가을이면 들깨 깻묵을 기름집에서 몇 덩이 사고, 농업기술센터에서 가져온 유용한 미생물(EM)을 넣고 발효시켜서 밭에 뿌리기를 여러 번 하니 흙 색깔이 거무스름하고 기름지게 변했다.

정성 들여서 만든 텃밭에 땅 파고, 거름 주고, 씨앗 뿌리고, 모종 심기를 여러 해 반복하다 보니 이제는 농사짓는 기술이 조금씩 늘어가는 것 같다.

첫해 심은 김장 배추는 속 노란 부분이 많지 않고 질깃질깃했는데, 이젠 시장에서 사는 김장 배추처럼 포기도 크고 연한 김치 맛을 볼 수 있게 배추 농사도 제법 잘 짓는다. “안 되는 일 없단다 노력하면은~” 하는 노랫말처럼, 우리 텃밭 농사는 해마다 쨍하고 해가 뜬다.

텃밭에서 키우고 있는 오이
텃밭에서 키우고 있는 오이

텃밭 농사를 지으면서 친정 부모님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다. 두 분은 봄엔 오이와 호박을, 가을엔 배추를 심어서 시장에 내다 팔아 우리 5남매를 키웠다.

우리가 어릴 때 비닐이 없어서 들기름을 먹인 종이로 고깔 모양의 모자를 만들어 오이와 호박 모종에 하나하나씩 씌웠다. 이른 봄 추위를 막기 위해서인데 작은 비닐하우스라고 보면 된다.

5월과 6월에 몸집을 불려야지 열매를 많이 딸 수 있는데, 그 시기엔 가뭄이 들 때가 많다. 낮에는 뙤약볕 아래 밭에서 김매고 오이, 호박을 건사하고, 밤이 되면 우물터에 가서 물을 길어다 고랑에 한 양동이씩 부어주길 밤새도록 했다.

몇 날 며칠 반복되는 일상이었다. 그러다 소나기라도 한바탕 내리는 날엔 옷이 흠뻑 젓어도 부모님은 비설거지로 신이 나 있었다.

60여년 전 여느 해였다. 그해도 가뭄이 심하게 들었다. 학교 앞 용머리에서 시끄럽게 하면 비가 온다는 속설이 있어서 인근 동네 몇 개 마을이 너른 용머리 뜰에 모여 씨름대회를 했다.

그곳에 모인 사람들은 함성을 크게 질렀고, 일등 한 동네 어른들은 상품으로 받은 삽자루를 휘저으며 비가 내리길 기원했다. 기우제를 잘 지내서인가 정말 비가 내리기 시작했고, 물을 애타게 찾던 오이와 호박은 쑥쑥 자라서 며칠간 부모님 얼굴이 싱글벙글했다.

그런데 웬일인가? 고맙게 내리던 비는 장마를 알리는 서막이었고, 어찌나 비가 많이 왔던지 팔당댐과 청평댐 수문이 열렸다. 그 많은 물은 한강지류에 있는 우리 동네 논밭을 물바다로 만들었다.

한강 수방 시설이 제대로 되어있지 않은 시절이라서 밀려 들어오는 물에 완전히 무방비 상태였다. 물속에 잠겨버린 오이와 호박은 비가 그치니 서서히 물이 빠지면서 바로 누렇게 말라 죽어버렸다.

지난겨울부터 준비하고 가꾸던 농작물이 하루아침에 다 날아가 버린 것이다. 많이 허탈해했을 부모님 표정을 우리 남매는 기억하지 못한다. 나이도 어렸고 철이 없었다. 부모님은 그 고통스러운 상황을 우리 모르게 해결하였다.

우리 텃밭 규모는 농사랄 것도 없이 규모도 작고 생계가 걸려 있지도 않다. 그런데도 생각지도 않은 이런저런 경험을 하게 되면서 고인이 된 친정 부모님의 애환과 정성을 늦은 나이에 알게 되었다.

올해에는 친정어머니가 좋아하셨던 과꽃을 한가득 심어 놓았다. 과꽃이 우리 집 밭둑에 피어날 때 부모님이 하늘 위에서 활짝 웃으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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