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말선초 두 왕조 섬기지 않는 ‘불사이군’ 충효 상징
부 이중인, 아들 이백찬과 함께 ‘삼대절신’ 추앙받아

용인토성 용인이씨 평은 이사영(?〜1396) 신도비 제막식이 지난달 28일 수지구 상현동 149번지 소재 묘역에서 거행됐다.

지난달 28일 수지구 상현동 149번지 소재 묘역에서 용인토성 용인이씨 평은 이사영(?〜1396) 신도비 제막식이 거행됐다.
지난달 28일 수지구 상현동 149번지 소재 묘역에서 용인토성 용인이씨 평은 이사영(?〜1396) 신도비 제막식이 거행됐다.

용인이씨 참판공파종회(회장 이원문)가 마련한 이날 제막식 행사에는 종원 200여 명과 윤원균 용인특례시의회 의장 등 지역 인사들이 함께 했다. 신도비 제막은 지난해 이사영‧백찬 부자 묘역이 용인시 향토유적 제72호로 지정된 것을 계기로 선양사업의 일환으로 준비돼 왔다.

평은 이사영은 고려조 명문대가에서 성장해 총명이 뛰어났으며 성균관 생도로 있을 때 재능을 인정받아 참관으로 천거되고 후에 청주목사 등 벼슬길에 올랐다. 공양왕 4년 고려가 망하고 조선이 개국하자 부친 이중인과 함께 신왕조에 굽히지 않고 반대했다.

목은 이색과 연루된 사건으로 남원에 유배되었다가 태조 5년(1396) 생을 마쳤다. 공은 당시 최고의 학자였던 목은 이색과 포은 정몽주 이외에도 명신‧명사들과 두루 교분이 두터웠던 인물로서 당대 문사(文士)로 추앙받았다.

그의 아들 영천공 이백찬(1359〜1415)도 고려조에서 어사와 김제현령, 영천목사 등을 지냈으나 조선조에 이르러 벼슬에 나가지 않았다. 이 같은 충절은 조부 이중인으로부터 시작된 바 태조 이성계로 부터 구성백으로 봉한다는 전지가 내려졌으나 받지 않았다.

두문동에 들어간 후 자손들에게 “신정왕조에 나아가지 말고 삼세불사하라”를 유훈을 남겼고 이를 따른 것이었다. 한 때 가문이 현달하지는 못했으나 3대에 걸친 ‘불사이군 삼세불사’ 충절과 효행은 조선조에 이르러서도 선비들의 사표로써 정신적 지주가 됐다.

한편, 용인이씨 시조인 길권은 신라 헌강왕 6년 서기 880년에 용인에서 탄생했으며 용인의 토호로서 고려 태조 왕건이 후삼국을 통일하는데 큰 공을 세운 것으로 기록에 전한다. 이를 계기로 용인을 본관으로 삼게 됐다. 기흥구 영덕동 산8번지 자은교촌 마을 뒷산에 용인이씨 시조 발상지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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