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대 홍순석 명예교수)용인특례시, 새로운 정체성 정립 위한 제언
“길은 소통-조화-수용-변화의 바탕”

강남대학교 명예교수 홍순석
강남대학교 명예교수 홍순석

용인은 지정학적으로 우수한 공간자원을 확보하고 있다. 조선 초기부터 지금의 서울시와 맞먹는 면적의 땅을 소유하고 있는 곳이 용인이다. 단지 면적이 넓다는 여건만은 아니다. 전체 용지가 가용지, 즉 무엇이든 사용할 수 있는 살아있는 땅이라는 점이다. 옛날부터 풍수지리적으로 적절하게 산수의 조화를 이룬 곳으로 정평이 난 곳이다.

1414년(태종14)에 용구현과 처인현을 병합하면서 지칭한 ‘용인’이란 명칭이 현재까지 존속되고 있다. 역사적인 사건이나 재앙 등으로 용인의 위상이 강등된 적이 한 번도 없는 복지이다. 예나 지금이나 용인에 산다는 것 자체가 프리미엄이다.

1970년대 새마을운동 모범지역, 변화 이끈 용인

용인이 지금의 도시 형태를 갖추기 시작한 시기는 1970년대이다. 전국적으로 실시한 새마을운동은 전형적인 농촌이었던 용인을 도농복합도시로 전환하는 계기가 되었다.

경부고속국도와 영동고속국도의 개통은 용인을 수도권역으로 바꿔 놓았다. 한국민속촌과 자연농원의 개장은 용인을 한국의 대표적인 관광지로 인식시켰다. 제3야전군사령부의 설치는 용인시를 군사도시로 인식시키기도 하였다.

1980년대 이후로는 강남대·용인대 등 서울 소재 대학이 이전해오고, 경희대·명지대·한국외국어대 등이 제2캠퍼스를 조성하면서 교육도시로서 주목되기 시작하였다. 이젠 전국에서 가장 많은 대학이 위치한 교육의 도시로도 주목된다.

백남준아트센터를 비롯한 문화예술 공간도 타시군에 비해 월등한 곳이 용인이다. 2000년대에 들어와 전입인구와 경제 성장도가 가장 높은 도시가 바로 용인이다.

인구 110만의 특례시로 거듭나다

2022년, 용인은 인구 110만의 특례시로 거듭났다. 용인특례시는 대도시권과 지방의 특성을 모두 가지고 있다. 경기도에서 2번째, 전국에서 9번째로 인구가 많은 도시다. 이러한 여건을 바탕으로 기흥구에 용인플랫폼시티를 추진하고 있다. 국내 대도시에서는 처음으로 미래형 도시개발사업으로 추진되는 대형 도시재생사업이다.

이 사업은 기존의 도시재생사업과는 달리 스마트시티, 친환경도시, 공유경제 등의 새로운 개념을 도입하여 미래형 도시를 구상하고 있다. 특히, 인공지능(AI), 빅데이터, 사물인터넷(IoT) 등 첨단 기술을 활용하며, 청년 일자리 창출과 지역 경제 발전을 위한 다양한 시도를 추진한다.

수여선 철길-일제강점기에서 근대화 시기인 1972년까지 용인 교통의 한 축을 담당했다.
수여선 철길-일제강점기에서 근대화 시기인 1972년까지 용인 교통의 한 축을 담당했다.

시스템반도체 국가산업단지로 거듭나는 용인

‘반도체’는 대한민국의 세계 경쟁력 가운데 핵심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경쟁력을 용인특례시가 주도한다. 시스템반도체를 바탕으로 용인의 지각이 변동하고 있음을 실감한다.

용인특례시는 ‘반도체를 통한 용인 르네상스 실현’이란 기치를 내세웠다. 반도체 산업 활성화를 통해 취업과 소비 증대, 상권 확장, 도시기능 확충을 꾀하는 계획이다. 반도체 인프라 구축을 위해 L자형 반도체 벨트를 구축한다.

기흥구 용인플랫폼시티부터 삼성반도체 기흥캠퍼스, 기흥 미래 첨단산업단지(세매스), 지곡일반산업단지(램리서치), 통삼일반산업단지(서플러스글로벌), 용인테크노밸리, 제2용인테크노밸리를 거쳐 원삼면 용인 반도체클러스터까지 이어지는 반도체 생태계다. 반도체 벨트 하단부를 잇는 73Km의 반도체 고속도로를 건설하고, 국지도 57호선도 확장한다.

반도체 AI고등학교를 설립하고, 관내 대학에는 반도체학과를 신설한다. 도시의 총체적 첨단화를 통해 최첨단 미래형 도시로 도시가치를 재설계한다. 메타버스나 가상현실, 인공지능, 완전자율주행 등을 일상 속에서 구현해 국내 최고의 특색도시로 만들 계획이다.

최첨단 미래형 도시에서 용인의 정체성은 무엇인가?

최근 발표되는 용인특례시의 보도를 보면, 머지않아 용인이 SF영화에서 익숙해진 ‘AI도시’로 재생될 것으로 상상된다. 지금까지 존속해온 용인의 정체성이 재고되어야 하지 않는가라는 질문을 자주 받는다. 40여년간 용인학을 연구하고 강의해 오면서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이 “용인의 정체성이 무엇인가”이다.

우선, 정체성이 무엇인가 되묻는다. 옛 성현들은 인간이 인간일 수 있는 까닭, 즉 인성론을 말하면서 인의예지 사단(四端)을 들어 설명하였다. 바로 인간의 정체성이다. 최첨단 시대로 변한다 해서 사단이 변한다면 인간일 수 없다. 마찬가지 이유로, 용인이 용인일 수 있는 이유가 바로 용인의 정체성이다.

그렇다면, 용인의 정체성은 무엇인가? 바로 ‘길’이다. 길은 ‘소통’, ‘수용’, ‘변화’와 직관된다. 용인은 삼국시대부터 현재까지 대한민국 교통의 요충지이다.

용인시는 서울과 지방 간의 교통 허브 역할을 하고 있다. 경부고속도로와 영동고속도로가 교차하는 유일한 지역이며, 용인~서울고속도로가 있다. 현재 서울~세종간 고속도로 및 수도권 광역급행철도(GTX) 용인역, 용인경전철, 용인 수인분당선, 용인 신분당선, 동백-신봉, 용인 경강선 등의 도로 건설이 추진되고 있다.

조선시대 문인 김수녕이 지은 <용인신정기(龍仁新亭記)>이란 글에서 “용인은 작은 고을이다. 왕도와 인접한 까닭으로 밤낮으로 모여드는 대소 빈객이 여기를 경유하지 않는 적이 없는데, 이는 대개 남북으로 통하는 길목인 때문이다.”고 하였다.

현재 기흥구의 플랫폼시티를 추진하고 있는 지역과 같은 공간이다. 시대는 바뀌었어도 공간의 요체는 전혀 다르지 않다. 서울의 길목인 용인은 과거와 현재, 미래의 자산임이 분명하다.

1872년 용인 군현지도
1872년 용인 군현지도

‘수용’과 ‘조화’를 통해 발전해

용인의 전통문화 유산을 되돌아보면 대립적이면서도 충돌하지 않고 상생해왔다. 선사시대의 유적으로 북방식과 남방식 고인돌이 함께 존재하는 곳이 용인이다. 삼국시대엔 백제․신라․고구려가 점유하던 군사요충지였다. 고려시대엔 불교유적과 처인성 승첩으로 주목받았던 곳이다.

조선시대엔 유학의 성지요, 기호학파의 산실로 인식되던 곳이다. 조선후기 당파의 정쟁이 격렬한 시기에도 모현에는 남인의 대표적 인물인 약천 남구만과 노론계 인물이 주도하던 충렬서원이 상생하였던 곳이다. 용인은 무속신앙이 짙었던 곳이자 천주교의 발상지이다.

3대에 걸쳐 항일독립운동가가 배출되었는가 하면, 송병준과 같은 친일파 인물이 출생한 곳이다. 이처럼 대립적이라 할 수 있는 여러 요소가 공존하면서도 충돌하지 않았다. 바로 ‘소통’하였고 ‘화이부동’의 조화를 바탕으로 ‘수용’하면서 ‘변화’하였기 때문이다.

용인은 이처럼 각 시대마다 다양한 문화 여건 속에서 경향의 다양한 문화를 수용하여 고유문화를 창출한 지역이다. 한마디로 전래의 고유성을 고집하면서도 유입된 문화 여건을 적극 수용하여 새로운 문화를 창출해온 지역이다. 전업농촌에서 도농복합도시, 그리고 반도체 도시로 변모한다고 해서 용인의 정체성이 달라질 이유가 없다.

전통문화유산과 최첨단 산업단지, 상생 위한 조화가 필요

이제 용인특례시는 반도체 도시로 거듭 비약한 만큼, 첨단과학 분야의 기술력과 문화‧예술 분야의 창의력을 융합하여 문화 콘텐츠를 개발하여야 한다. 600년 이상 존속해온 전통문화 유산들을 관광‧문화‧예술 산업 등의 다양한 산업과 결합하여 상생하는 방안을 모색하여야 한다. 이러한 문화 콘텐츠는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수요가 많을 것이다.

현재 전국의 지방자치단체에서 스마트시티를 추진하고 있다. 스마트시티 전용 앱을 이용하여 관광객들은 도시 내의 정보를 쉽게 찾을 수 있으며, 자동차나 대중교통 등의 이동 수단도 더욱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다. 모바일 티켓 하나로 주요 관광지, 맛집, 숙박업소를 할인받아 이용 가능한 투어패스를 실시하고 있다.

전국 지방자치단체 중 관광객 수 1위인 용인특례시는 그 이상이어야 한다. 가상현실(VR)이나 증강현실(AR)을 활용하여 도시 내에서 다양한 체험을 할 수 있는 관광 콘텐츠를 개발하는 것이 가능하다.

이러한 체험형 관광 콘텐츠는 관광객들에게 새로운 느낌을 제공함으로써, 관광산업을 더욱 발전시킬 것이다. 무엇보다도 인공지능, 빅데이터 등 첨단기술을 활용한 박물관, 미술관 등 문화예술공간의 첨단화가 필요하다.

용인의 정체성은 ‘길’에서 찾아진다. 예로부터 지정학적으로 대수도권에 있으면서 전국의 도시와 직결되는 교통망을 갖춘 용인이다. 빈번한 외래문화와 출동하지 않고, 소통하며 수용해 왔으며, 상생의 길을 찾아 스스로 변화하였다. 지금은 전통문화유산과 최첨단 산업단지의 상생을 위한 조화가 필요한 때이다.

‘길’은 우리가 가야 할 방향을 가리키며, 소통은 서로의 생각과 의견을 공유하고 이해하는 것을 말한다. 조화는 서로 다른 개성과 관점을 존중하며 상호작용하는 것을 말한다.

변화는 우리가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고 적응하며, 상생은 서로가 함께 일하며 발전하고 번영하는 것을 의미한다. 변화는 기존 질서에서 진화하는 것이다. 이전의 것이 소멸되고 새롭게 형성되는 것이 아님을 거듭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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