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훈 원장
이동훈 원장

1633년 6월 22일 이탈리아 로마의 산타마리아 소프라 미네르바 성당에서 재판이 진행되고 있었다. 무릎을 꿇고 최종 판결을 기다리고 있는 피고인에게 재판관은 유죄를 선고하고 선고문을 낭독하게 했다. 피고는 괴로운 표정으로 선고문을 낭독했다.

“나는 이단, 즉 태양이 우주에 중심에 있고 움직일 수 없으며 지구가 그 중심에 있지 않으며 태양이 움직인다고 주장하고 믿었다는 강력하게 의심되는 판단을 받았습니다. (중략) 앞으로도 이단의 의혹을 받을 수 있는 그 어떤 것도 절대로 말이나 글로 주장하지 않을 것을 맹세합니다.”

“그래도 지구는 돈다.”

재판정을 나서면서 말한 피고인은 갈릴레오 갈릴레이라는 과학자였다.

갈릴레오 갈릴레이는 기존 망원경을 개량해서 30배 이상 확대해서 관찰할 수 있게 만들었다. 1610년 1월 7일 밤하늘의 목성을 관찰하던 중 주변 별들이 이상하게 움직이는 것을 발견했다.

처음에는 양측에 2개씩 있던 별이 얼마 뒤에는 한쪽에 두 개, 반대편에 한 개, 시간이 지난 뒤에는 세 개가 한쪽에 모여 있고, 얼마 뒤에는 다시 처음처럼 양측에 두 개씩 모여 있었다. 목성과 4개의 별은 깊은 관련성이 있음이 분명했다. 목성에도 달과 같은 위성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고대 그리스에서도 태양이 우주의 중심일 수 있다는 주장이 있었고, 1543년 코페르니쿠스는 <천구의 회전에 관하여>라는 책을 통해 태양 중심설을 다시 소개했다. 코페르니쿠스의 주장은 과학자들의 관심을 받았으나 아직까지 객관적인 증거가 부족했다. 그 무엇보다 당시 세계를 지배하고 있던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라는 고정 관념과 종교적 상황을 극복하는데 어려움이 있었다.

갈릴레이가 발견한 목성의 위성은 지구가 아닌 다른 별들도 위성을 가질 수 있다면 우주의 중심이 지구가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이다. 확신을 가진 갈릴레이는 종교적인 문제에 극도로 조심하며 신중을 기했던 코페르니쿠스와 달랐다.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돈다는 ‘지동설’을 가설이 아닌 확고한 사실로 인식했고, 적극적으로 자신의 주장을 알렸다. 객관성을 유지하라는 종교계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1632년 <천문 대화>라는 저서에서 천동설을 비난하며 지동설을 주장하다 결국 재판정에 서게 된 것이다.

갈릴레이의 재판은 과학계에 큰 충격을 주었다. 갈릴레이는 재판에서 유죄를 받았지만, 지구는 태양의 주위를 돌았다. 인간의 판결이 항상 정확할 수 없기 때문이다. 갈릴레오의 재판처럼 의료계에도 법원 판결이 치료나 국민 건강에 큰 영향을 주기도 한다. 우리나라도 그런 사례가 있었다.

1997년 12월 4일 화장실에서 넘어져 뇌출혈로 서울 보라매병원에 내원한 환자가 응급 수술을 받았다. 의사들은 뇌출혈로 인한 혈종을 제거하는데 성공했으나 뇌가 부풀어 오르면서 호흡 중추가 회복되지 않아 중환자실 치료가 필요했다.

다음날 환자의 아내는 동의가 없는 수술이며 경제적 여유가 없다며 퇴원하겠다고 말했다. 의사들은 보호자의 요구를 거부하며 퇴원 시 환자가 사망할 수 있다고 몇 번이고 설명하면서 1주일을 기다리고 심지어 안정되면 도망가라고까지 말했지만 보호자는 계속 퇴원을 요구했다.

결국 ‘환자의 죽음에 대해 병원은 책임지지 않는다’는 각서를 받은 후 집으로 간 환자는 산소호흡기를 중지한 뒤 사망했다.

사건은 이후 발생했다. 다른 보호자가 나타난 것이다. 조사에 나선 검찰은 죽을 줄 알면서도 퇴원시켰으면 살인이라며 부인과 의료진을 살인죄로 기소했다. 7년에 걸친 재판 끝에 2004년 6월 대법원에서 살인 방조죄를 적용하면서 유죄 판결을 내렸다.

국민 건강에 영향 미친 판결

이 사건은 국민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의료진은 살인죄로 기소될 수 있다는 현실적인 위협 앞에서 위중한 환자들을 집으로 보낼 수 없었다. 중환자실은 항상 가득차게 되었다. 임종 장소는 집이 아닌 병원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2017년 12월 16일 이대목동병원 신생아 중환자실에서 미숙아 4명이 한 시간 간격으로 심정지가 발생하면서 모두 사망했다. 위중한 환자가 있는 중환자실에서 심정지 등의 상황이 발생할 수 있지만, 비슷한 시기에 동시다발로 나타난 것은 매우 이례적이었다.

특히 신생아라는 특수한 상황에 국민적 관심이 집중되었다. 병원 내 감염에 의한 패혈증으로 추정되면서 담당 의료진이 업무상과실치사로 구속되었다. 항암 치료를 받고 투병 중이던 담당 교수뿐 아니라 전공의가 부족해서 교통사고로 팔이 부러진 상황에서도 환자 진료를 위해 근무 중이던 소아과 전공의까지 구속되었다.

이후 재판 과정에서 객관적인 인과관계가 명확하지 않다는 점이 밝혀지면서 해당 의료진은 모두 무죄를 받았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발생한 충격은 작지 않았다. 위중한 환자를 진료해야 하는 전문분야 의료진들은 적극적인 치료를 기피하거나 전공의 지원이 급감했다.

매년 200명 이상 지원하던 소아청소년과는 2022년 30여 명에 불과하게 되었다. 일부 대학병원은 무리하게 중환자실, 입원실을 운영하는 것보다 진료를 축소하는 방향으로 전환하기 시작했다.

2022년 12월 22일 대법원에서 과학 기술의 발달로 개발된 초음파 진단 기기에 대한 판결이 있었다. 초음파를 활용한 장비는 군사분야와 축산, 건축 등 의료계를 제외한 다른 분야에서도 많이 활용되고 있다. 의료분야에서는 면허제도를 도입해 특별한 조건을 갖추지 않을 경우 사용을 금지하고 있었다. 불필요한 의료비 증가나 진단 지연으로 국민 건강을 위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사안도 2년 동안 68회라는 합리적으로 이해할 수 없을 만큼 초음파 진단기기를 많이 활용했음에도 진단을 하지 못해 환자를 위험에 빠뜨린 경우였다. 그러나 국민 건강에 위험을 줄 가능성이 낮다고 판단한 대법원의 판결에 고개를 갸우뚱할 수밖에 없었다.

과학기술의 발달로 전통적인 의료를 고수하기 힘든 것이 현실이다. 고대 전통의서에는 많은 오류가 있고, 진단이 정확하지 않은 상태에서 시도되었던 치료법이나, 불순물이 정제되지 않은 약초로 제조된 치료물질에는 한계나 오류가 있다.

서구도 우리와 비슷한 전통적인 진단과 약초 등을 이용한 치료법이 있었다. 그러나 근대화 과정에서 부정확한 진단과 이론이 퇴출되고 약품의 정제 기술이 발달하면서 약초 추출물도 불투명한 색깔에서 점차 투명한 액체와 복용하기 편리한 정제로 변화한 것이다. 전통의학의 발전된 모습이 바로 현대의학이다.

<이번 호를 끝으로 ‘이동훈 원장의 재미있는 의학이야기’ 연재를 모두 마칩니다. 그동안 의학의 역사를 현재와 연결해 재미있게 풀어준 이동훈 원장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아울러 수년 간 연재를 이어갈 수 있도록 격려해주신 독자들께도 고맙다는 말씀 드립니다.>

저작권자 © 용인시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