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훈 원장
이동훈 원장

1916년 미국의 마가렛 생어는 계획되지 않은 임신으로 많은 자녀를 가진 가족들의 어려움을 목격했다. 몇몇 가족은 10명이 넘는 자녀를 돌보면서 생계를 꾸려가야 했다.

특히 자리를 잡지 못한 이민 노동자들에게 어려움이 가중되었다. 중세 기독교 문화로 피임과 낙태를 죄악시 여기는 문화로 가족계획 방법을 홍보하는 데에도 어려움이 있었다. 마가렛 생어는 여성들을 상담하다가 경찰에 체포되어 30일 징역형을 선고받기도 했다.

그러나 생어의 투옥은 언론의 주목을 받게 되었고, 피임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증가하면서 의료계에서 피임약을 개발하는 데 큰 역할을 하게 되었다. 생어는 일본, 중국 등 동아시아 지역을 순방하며 자신의 주장을 전파하면서 영향을 주었다.

국내에서 활동하던 서양 선교사들을 중심으로 가족계획에 대한 계몽 활동이 진행되기도 했으나 전쟁 등으로 인력이 부족하다고 인식한 일제는 출산장려 정책을 펼치며 산하제한을 금지시켰다.

6.25 한국전쟁 이후 1950년대 출산율은 6.3명에 이르렀다. 많은 출산은 신생아 건강에도 악영향을 줘 1950년대 1천 명당 영아 사망자 수가 100명 이상으로 추정될 정도였다. 즉 열 명 중 한 명이 한 살도 되기 전에 생명을 잃었다. 한 살이 되면 큰 위기를 넘기고 장수를 기원하는 의미의 돌잔치를 열기도 했다.

1950년대 급격한 인구 증가는 사회적으로 큰 문제였다. 전통적인 농업 중심의 사회 구조상 농지는 한정되어 있었고, 농지개혁으로 개인별로 나누어진 농가경작 규모가 영세해 더이상 쪼개기도 힘든 형편이었다.

잉여 노동력으로 상공업을 발전시켜야 했으나 역부족인 상황이고, 중세시대에나 가능한 영토 확장은 꿈도 꾸기 힘든 일이었다. 가능한 것은 해외 이민과 산아제한 정책이었다. 해외 이민은 그 숫자가 미미했고 정부가 내린 선택은 가족계획정책을 펼치는 것이었다.

1996년 6월 산아제한 폐지 기사
1996년 6월 산아제한 폐지 기사

출산율을 낮출 경우 인구 감소로 국가의 존립이 위험할 것이라는 논란이 있었다. 그러나 1961년 박정희 군사정부는 조국 근대화라는 명분으로 기존의 가족계획을 국책 사업으로 선정하면서 전국적으로 확산했다.

박정희 정부는 전국 수백 개 보건소에 가족계획 정책을 일제히 실시하면서 출산율도 급격하게 감소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3자녀 운동을 시작으로 1970년대에는 ‘둘만 낳아 잘 기르자’, 1980년대는 한 자녀 갖기 운동까지 이어졌다.

단순 계몽과 홍보를 넘어 다양한 방식으로 유인책이 시행되었는데, 불임시술을 받은 가정에는 생계비 지원, 자녀 진료비 경감, 유급휴가 등의 혜택을 주었다. 직장여성의 출산휴가와 자녀 학비수당, 각종 세제 혜택을 2자녀까지로 제한해 자녀가 많은 가정에 불이익을 주기도 했다.

전방위적인 가족계획의 결과, 1950년대 6.3명이었던 출산율은 1970년 4.53명, 1980년 2.83명으로 떨어지면서 전 세계에서 가장 모범적인 국가로 보여지기도 했다. 물론 가족계획 정책뿐 아니라 사회경제 발전과 여성들의 사회 진출이 증가한 영향도 컸다. 1980년대 출산율이 2명대로 감소하면서 정책적 변화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되었으나 1994년에 이르러서야 정책적 변화를 주기 시작했다.

즉 다자녀 가정에게 주어진 불이익을 전면 폐지한 것이다. 그러나 이후 발생한 IMF 경제 위기 등의 영향으로 출산율은 더 떨어져 1990년대 초까지 매년 70만 명이 넘었던 연간 출생아 수가 2000년에 64만 명, 2010년은 47만 명, 2020년 27만 명까지 크게 감소했다.

발전과 여성 건강을 위해 긍정적이었던 가족계획이 현재는 우리 사회의 커다란 고민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국가적 차원에서 다양한 지원을 시도하고 있으나 여성의 사회활동, 안전한 출산과정, 육아, 교육, 경제적 문제 등 그물처럼 얽혀 있는 매듭은 쉽게 풀기 어려운 상황이다.

전 분야에 큰 영향을 주는 저출산은 의료계도 예외는 아니다. 저출산에 가장 큰 영향을 받고 있는 분야는 출산과 영유아 관련 전문분야다. 산부인과와 소아청소년과는 직접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

매년 줄어드는 신생아 수는 해당 분야의 기본적인 지원시설을 유지하기 어렵다. 분만을 위해서는 산부인과 의사 혼자서 가능한 것이 아니다. 교대 근무를 할 수 있는 의료진과 간호진, 수술팀, 신생아를 돌보는 소아청소년과 의료진 등 많은 인력과 자원이 기본적으로 필요하다.

물론 현재도 한국의 의료진은 OECD 평균보다 훨씬 많은 업무를 하고 있다. 국가에서 책정한 의료비용은 기본적인 의료체계를 유지하기도 버거운 상황이다. 건강보험 재정의 여유가 있다고 보험 혜택을 늘리는 것은 쉽다. 그러나 의료체계를 유지할 수 있도록 최소한의 투자가 먼저 이루어져야 한다. 기초가 튼튼하지 않은 상태에서 쌓아 올린 탑은 금방 무너질 수 있다. 건강한 대한민국을 위해 건강한 투자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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