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장을 가리키는 마음 심(心)은 과거 심장이 정신을 주관하는 장기라는 인식으로 만들어진 한자다. 고대 동양에서는 심장이 정신 상태를 주관하는 장기로 생각하였고, 뇌는 단지 심장의 열기를 발산시키는 장소로 평가했던 것이다.

기억을 저장하고 주관하는 장기가 심장의 기운으로 생각했기에 기억나지 않는 이유는 심장 이상으로 생각했다. 심장에 있는 혈액이 부족해지면 어지러워지고 의식을 잃을 수 있으니 어쩌면 고대인들의 생각은 그러한 추론의 결과일 수 있다.

<동의보감>에서도 건망을 주로 심(心)과 비(脾)의 문제라고 단정하며 심과 비를 생각하는 것을 주관한다고 주장했다. 뇌라는 중추신경계의 존재를 인식하지 못한 시대적 한계다. 정확한 원인을 모르기에 증상 묘사에 주력했던 고대에는 기억 장애, 주변을 인지하지 못하고 감정 조절이 안 되는 성격의 변화와 행동을 증상으로 표현했다.

그 원인으로 간과 신장의 문제, 기력이 빠지거나 담즙이 움직임의 문제 등으로 추정할 뿐이었다. 실제 간이나 신장 기능이 심각하게 나빠질 경우 독성 성분으로 인한 뇌기능 장애가 발생하기도 한다.

ⓒ아이클릭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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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구도 동양과 다를 바 없었다. 고대 이집트의 경우 미이라를 만들 때 정신이 깃들어 있는 심장은 소중하게 보관한 반면, 콧물을 만드는 장기 정도로 인식된 뇌는 폐기될 정도였다. 기원전 7세기 피타고라스는 인생을 분류하면서 마지막 고령기에 기억이 떨어져서 어린아이처럼 되는 현상이 있다고 주장하였다. 아리스토텔레스나 플라톤도 나이로 인해 발생하는 정신의 쇠퇴는 막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종교가 지배하던 중세 유럽은 인지기능이 감퇴하고, 예상하지 못하는 행동을 하는 것을 원죄에 대한 신의 형벌로 여겼기에 공개적인 연구나 진료가 진행되지 못했다. 르네상스 이후 과학과 기술이 발전하면서 뇌기능에 대한 연구가 본격적으로 시도되고 인지기능 저하 원인에 대한 탐색이 시작되었다.

19세기까지 혈액공급이 원활하지 않게 되어 뇌신경세포의 손실로 정확한 신호 전달이 이뤄지지 않아 정상적인 인지기능을 하지 못하거나 이상 행동을 한다는 주장이 많았다. 1901년 독일의 한 정신병원에 50세의 여성이 입원했다.

딸과 철도회사에 다니는 남편이 있는 평범한 주부였던 이 여성은 40대 후반부터 건망증이 있었다. 건망증은 점점 그 횟수가 늘어났고, 잘못된 기억으로 인한 망상과 고성과 비명으로 이웃과 다툼이 증가했다. 점점 심해지는 폭력적인 현상에 남편은 아내를 정신병원에 입원시켰다. 1901년 정신병원에서 이 여성을 진료한 의사는 알로이스 알츠하이머 박사였다.

알츠하이머 박사는 처음 환자 진료를 위해서 여성의 이름을 물었다. 여성은 자신의 이름을 반복하면서 말하는 등 제대로 된 대화를 진행하지 못했다. 집 주소를 물어보면 자기 집에 가봤냐는 답변을 하고, 돼지고기를 먹으면서 시금치를 먹는다고 답변했다.

시간과 장소에 대한 감각이 없고, 기억이 매우 혼재되어 일관성이 없었다. 알츠하이머는 비슷한 환자들을 진료한 경험이 있었지만 그들은 대부분 고령이었다. 50세의 비교적 젊은 환자는 처음이었다. 이 여성은 점점 증상이 악화되어 몇 년 뒤 사망하였다. 알츠하이머는 가족의 동의를 얻어 뇌 조직을 연구할 수 있게 되었다.

뇌 조직은 너무 부드럽고 투명해서 그 자체로는 아무것도 발견할 수 없었다. 잉크로 염색을 시도해도 잘 염색되지 않았다. 1873년 이탈리아의 카밀로 골지는 염색이 아니라 그냥 은으로 신경 세포의 벽을 도금하는 방법을 시도했다. 모든 세포를 다 파악할 수 없지만 그동안 볼 수 없었던 신경 세포를 확인할 수 있었다. 신경들의 연결로 인한 신호 전달이 사람의 사고 과정에서 중요한 것이라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알츠하이머는 당시로서 최신 기술을 사용하여 환자의 뇌조직을 염색하였다. 그러자 뇌 신경섬유 사이에 얼룩 같은 것과 신경 연결 줄기가 꼬여 있는 것이 관찰되었다. 알츠하이머는 1906년 가을 독일 정신과학회에서 자신의 새로운 발견을 발표했다.

그러나 여러 다른 주제에 밀려 알츠하이머의 발견은 큰 주목을 받지 못했고, 토론도 제대로 진행되지 않았다. 그의 스승이었던 크레펠린은 알츠하이머의 발견을 정리해서 자신의 저서에 인용하면서 병명을 ‘알츠하이머 병’이라고 기록했다.

뇌 신경 세포들을 연결하는 가운데 한 곳이 파괴되거나 손상을 입으면 미로같이 연결된 다른 신경 경로를 찾아 신호를 전달할 수 있다. 나이가 들거나 미세 혈관 손상으로 점진적으로 뇌세포의 손실이 증가하게 되고, 어느 일정 수준을 넘어서면 신호는 더 이상 길을 찾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1909년 크레펠린의 저서를 접한 일본 동경의대 교수였던 쿠레 슈우조는 질병의 어원을 살려 ‘치매(痴呆)’라는 단어를 새롭게 만들었다. 당연히 조선시대에 편찬된 <동의보감>에는 ‘치매’라는 단어가 나오지 않는다.

비슷한 증상의 환자들에게 미친병, 발광병보다 새로운 단어 치매는 바람직해 보였다. 그러나 오랜 시간 사용되어온 치매 역시 편견을 만들기 시작했고, 최근 한자 문화권에서는 치매 대신에 인지증, 실지증 등으로 변경되고 있다.

이동훈 원장
이동훈 원장

1994년 미국 대통령이었던 로날드 레이건은 자신이 알츠하이머병을 진단 받았다는 사실을 밝혔다. 알츠하이머병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기 바랐던 레이건은 아내인 낸시와 국립 알츠하이머병 재단과 함께 로날드 낸시 레이건 연구소를 1995년에 창설해서 치료제 개발에 많은 지원을 하기 시작했다.

치매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면서 여러 치료제가 개발되기 시작했으나 아직 부족한 것이 많은 편이다. 명칭을 바꾼다고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사회적 관심과 지원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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