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훈 원장
이동훈 원장

주변에서 부지런하고 온화하다는 평가를 받으며 대인관계가 원만한 마을에서 존경받는 사람을 ‘향원(鄕愿)’이라고 불렀다. 쉽게 말하면 마을에서 인상 좋고 존경받는 어르신과 같은 분을 말한다. 그런데 이런 마을 어르신들이 좋은 경우도 있지만, 일부는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었다.

공자는 그런 향원들을 향해 덕을 훔치는 나쁜 사람이라고 비난했다. 겉으로 후덕한 것처럼 보이지만 개인의 사욕을 챙기는 경우가 있었기 때문이다. 얼핏 보기에 이해할 수 없었던 이야기이지만, 맹자는 공자의 주장에 대해서 자세한 설명을 해주었다.

비판하려고 해도 딱히 집히는 곳이 없고, 말하려고 해도 찾기 힘들 정도로 충실하고, 고결한 것처럼 보여 많은 사람이 존경하지만, 실상은 세상의 욕망에 함께 동조하고 있기에 의로운 사람인 것과 비슷하지만 아닌 것으로 ‘사이비(似而非)’라고 묘사했다.

학문적 내용에서 사용되던 ‘사이비’라는 용어는 여러 분야에 폭넓게 활용되었다. 의학도 예외는 아니다. 정확한 치료 방법이 정립되기 이전에는 사이비라고 불리기 어려울 정도로 다양한 시도가 많았다. 초기 주술적 행위에서 경험적인 휴식과 약초 등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그러나 과학적 검증이 쉽지 않았기에 효과가 있었다고 생각되는 처방은 관습적으로 기록되어 후대에 전승되기도 했다. <동의보감>에도 비슷한 사례가 많이 기록되어 있는데, 흙의 효능을 설명하면서 동쪽벽 흙은 양기가, 서쪽 벽 흙은 기를 내려준다고 기록되어 있다.

물 부분에 있어서는 12월에 내린 눈이 녹은 물을 ‘납설수’라고 부르며 해독 효과를, 정월에 온 빗물을 ‘춘우수’라고 부르며 양기를 키워준다는 구절이 있다. 위생이 좋지 않고 세균에 대한 개념이 없던 시기에 깨끗한 물을 확보하는 방법으로 추측된다.

서구도 비슷한 상황이었다. 화학이 발전하면서 각종 약초에서 효능이 있는 성분을 추출하기 시작하면서 물에 넣어 끓여서 복용하는 방법보다 더 강한 치료 효과를 얻을 수 있게 되었다.

그중 몇몇은 상당한 명성을 얻기도 했다. 1647년 영국의 토마스 대피는 미나리, 건포도, 대황, 감초 등을 술에 녹여서 추출한 물약을 개발했다. 소화와 변비에 도움을 주었다. 배가 아픈 사람들은 ‘대피의 물약’을 먹고 호전되면서 유명해졌다.

햄린 형제의 약품 판매를 위한 마차쇼 재현 모습. 유튜브 채널 History Alive Pop-Up Plays 화면 갈무리
햄린 형제의 약품 판매를 위한 마차쇼 재현 모습. 유튜브 채널 History Alive Pop-Up Plays 화면 갈무리

토마스 대피가 사망한 뒤 이 물약의 효과는 점점 더 과장되기 시작했다. 소화장애는 물론 멀미, 구토, 경련 발작, 진통, 복통 등 거의 만병 통치약처럼 광고되었다. 이런 간단한 소화제 물약 외에도 어떤 종류는 아편과 같은 마약을 함유시킨 기침약이나 진통제가 유통되기도 했다.

전통적인 약초에서 추출된 물질들은 제각각 조금씩 다른 배합으로 수천 종류의 약품으로 소개되었다. 이런 약품 판매는 당연히 치열한 경쟁이 이어졌다.

1861년 미국의 햄린 형제는 장뇌, 사프라스, 정향 등에서 추출한 액체를 판매하기 위해서 마술사의 경력을 살려 쇼를 하였다. 마차를 타고 이동하면서 마술쇼와 음악을 연주하면서 사람을 모아서 자신들의 약을 판매한 것이다.

진통 효과를 선전하던 이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효능을 마구잡이로 늘리다가 급기야 항암 효과가 있다는 주장까지 했다. 도를 넘어선 이들의 주장에 미국 정부는 1916년 벌금을 물리면서 제제하기 시작했다.

전통적인 약초를 혼합해 무분별한 약품 개발과 오남용은 많은 사람의 건강을 위협하기 시작했다. 1881년 네덜란드에서 엉터리 약품과 치료 방법에 대한 조직이 결성되어 이를 퇴치하기 시작했다.

의료인에 대한 교육 과정도 서로 다르고, 대학을 중심으로 연구와 교육 중심의 의사와 진료 현장에서 실제 환자 치료에 전념하는 의사들 간 거리감도 존재했다. 이런 문제를 개선하고자 유럽 국가들은 체계적인 의학 교육을 받은 의사를 대상으로 국가 공인 제도를 실시했다.

유럽에서 시작된 의료인 면허제도는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에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과학의 발전과 함께 체계적이고 전문적인 의학 교육을 통해 많은 검증 과정을 거쳐 인정되지 않은 치료 방법은 조금씩 사라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전통이라는 이름으로 여전히 사람들 사이에 남아 있는 경우도 있었다.

비전문가의 주장과 달리 사이비 의료 행위는 마치 의학적 개념과 지식으로 무장해 접근하기 때문에 더 위험하다. 기본적인 개념은 현대의학의 과학적 성과를 인용해 설명한 뒤 마무리는 자신들이 판매하는 치료법을 선전하는 것이다.

현대의학적 개념과 사이비 치료법이 객관적인 연관성이 없더라도 대중이 이를 구별하기란 쉽지 않다. 심지어 노벨의학상 수상자의 저작물을 가지고 다니면서 판매한 경우도 있는데, 그 모든 것이 허위였다.

모든 질병을 다 치료한다는 만병통치제는 없다는 기본적인 진리와 상식을 뛰어넘는 고가의 물품을 판매한다면 가까운 의료기관을 찾아 상담해보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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