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훈 원장
이동훈 원장

1883년 6월 16일 토요일 저녁 영국 북동부 선덜랜드의 빅토리아 홀에서 공연이 열리고 있었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자선 활동을 많이 하던 목회자 에드워드 백하우스의 기금으로 설립된 빅토리아 홀은 사회, 정치, 종교 행사에 활용되었다. 특히 가난한 어린이들을 위한 공연이 벌어지곤 했다. 6월 16일에도 어린이들을 위한 공연이 열리고 있었다.

페이 남매로 알려진 마술 공연팀은 이미 몇개 학교에서 학생들을 대상으로 꼭두각시 인형극 등 마술 쇼를 보여주면서 아이들을 열광시켰다. 빅토리아 홀은 무대를 중심으로 3개층에 층마다 1000여명이 들어갈 수 있었다.

공연일에도 어린이와 부모들을 합쳐 3000여명으로 가득찼다. 각 지역학교는 무료 공연 티켓을 나누어주었고 많은 홍보가 이루어졌다. 결정적인 것은 공연이 끝난 뒤 아이들을 위해 무료로 선물을 나누어 준다는 점이었다.

빅토리아 홀 참사 희생자를 확인하는 부모들. /자료 wearsideonline
빅토리아 홀 참사 희생자를 확인하는 부모들. /자료 wearsideonline

아이들의 열광 속에 공연은 순조롭게 진행되었고, 마침내 선물을 나누어 줄 시간이 되었다. 공연 티켓 번호를 추첨해 한 명, 한 명에게 선물을 주기 시작했다. 멀리 있는 아이들에게 장난감과 사탕을 던져 주었는데 문제는 2층과 3층이었다.

높은 곳에 던져진 장난감은 아이들에게 전달되지 않고 다시 1층으로 떨어지곤 했다. 선물을 받지 못해 불안해하는 아이들에게 진행자는 나가는 길에 나누어줄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안심시켰다. 공연을 도와주는 사람들이 선물을 가지고 각 층 출입구 앞에 대기하기 위해 이동하기 시작했다. 선물을 가지고 움직이는 사람들을 본 아이들은 출구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가파른 계단을 뛰어 내려가던 아이들은 완전히 열리지 않은 문틈 사이에 막히면서 멈추게 되었다. 표를 확인하기 위해서 한 명 정도만 통과할 수 있도록 만들었기 때문이다.

처음 도착한 아이들은 문 앞에서 멈추어야 했지만 뒤에서 달려오던 아이들은 그 사실을 몰랐다. 뒤에서 밀려오는 압력에 아이들은 넘어지기 시작했고, 그 위로 차례로 밀려서 또 넘어지기가 반복되었다. 아이들은 거의 어른 키 높이만큼 쌓였다.

고통스러운 비명이 퍼지고 직원들은 달려와서 아이들을 빼내려고 했지만 꽉 끼어있는 상태라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몇 명은 간신히 구조되었지만 나머지 아이들은 위층에 올라가서 위에서 아이들을 빼내야만 했다.

처음에는 희생자가 없을 것으로 생각하면서 구조가 시작되었지만 시간이 지나자 아래에 깔린 아이들의 움직임이 없는 것을 발견했다. 위층과 아래층에서 아이들을 구조하는데 30분 정도의 시간이 걸렸다. 움직이는 아이들이 구조된 뒤에 남은 것은 참혹한 현장이었다. 183명의 어린이가 아무런 움직임 없이 누워 있었다. 7살에서 10살 정도의 어린이들이 대부분이었고 3~4세 아이들도 있었다.

빅토리아 홀 참사 추모 조각상(영국 선덜랜드, 1883)
빅토리아 홀 참사 추모 조각상(영국 선덜랜드, 1883)

크고 작은 참사 끊이지 않는 한국사회

이 비극은 모든 사람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모든 자녀를 잃은 부모도 있었고, 한 학교는 반 전체 아이들이 희생되었다. 이런 상황이 다시 재발하지 않도록 원인 조사가 진행되었다.

출구가 적었고 문이 제대로 열리지 않아서 사고가 발생한 것으로 지적되었다. 이후 공연장에는 많은 출구가 필수적으로 설치되기 시작했다. 문 역시 쉽게 밀면 열 수 있는 잠금 장치인 비상 출입 장치가 개발되었다.

여러 조치가 있었지만 재난은 끊이지 않고 반복되었다. 실내 행사는 여러 안전 장치가 개발되었지만, 야외 행사의 경우 통제되지 않을 경우 일부 사람이 넘어지면서 다치는 상황이 빈번하게 발생했다.

우리나라도 그동안 많은 사람이 모이는 가운데 크고 작은 사고가 반복적으로 발생했다. 1959년 부산 공설운동장에서 진행된 시민위안잔치에서 갑자기 내린 소나기를 피하려고 3만여 명이 좁은 출입구로 나오다가 67명이 숨지고 수백 명이 부상 당하는 참사가 발생했다.

1961년 서울역에서, 1974년에는 용산역에서 명절 귀성 열차에 많은 시민이 몰리면서 안타까운 사고가 발생했다. 스포츠나 공연에서도 사고는 끊이지 않았다. 1965년 광주 전국체전에서 관전하던 시민이 밀려 넘어지면서 12명이 희생됐다. 1992년 뉴키즈온더 블록 내한 공연 중 관람객이 앞으로 밀려 맨 앞줄 관객이 넘어지면서 1명이 희생되었다. 2000년 12월 31일에는 보신각종 타종 행사에 운집한 인파로 희생되기도 했다.

이런 사고는 많은 사람이 서로 기대고 밀침으로 발생되지만, 물리적인 공간적 요소와 잘못된 정보도 중요한 요인 중 하나다. 흥분된 상태에서 정확하지 않은 정보로 계속 물리적 압력을 가하면 가운데 있는 사람들의 가슴이 압박되면서 호흡곤란에 빠질 수 있다.

숨을 쉬지 못하는 시간이 몇 분만 지속되면 심정지로 이어질 수 있기에 아주 위험한 상황이다. 많은 사람이 밀집해 있는 상태에서 구조 시간이 지연될 경우 회복되기 어렵다.

가장 좋은 치료 방법은 예방이다. 많은 사람이 밀집되는 곳에는 반드시 응급상황에 대비한 대피로를 사람 한 명이 지나갈 수 있는 공간 정도로 확보되어야 한다. 버스 전용차선과 같이 응급대피로를 확보해야 각종 사고나 질병으로 악화되는 환자를 신속하게 의료기관으로 이송할 수 있다.

최근 이태원에서 발생한 안타까운 참사는 많은 사람이 모이는 곳에 안전을 위한 최소 공간 확보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것도 하나의 원인이라 볼 수 있다. 코로나19로 안전에 대한 관심이 증가한 만큼 우리 주변 여러 상황에 대해서도 다시 한번 점검해 봐야 하는 시기다.

저작권자 © 용인시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