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이서현 용인시청 학예연구사
오랜 시간 생활 유물이야 말로 용인의 진짜 모습
발굴조사 과정 중요, 유적 발굴시 전시관 건립 필요

원삼 일대에 조성중인 SK하이닉스 반도체 클러스터 사업이 새로운 단계에 접어들었다. 토지 및 주거지 소유권이 대부분 사업자 측에 넘어가면서 이미 철거가 시작됐다. 머잖아 수백 년 이상 이어온 마을공동체 전면 해체를 눈으로 보게 될 처지다. 대규모 개발에 따라 추억과 기억을 제외하고 그 공간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 사라진다는 것.

우리는 여러 차례 우리고장 용인에서 경험해 왔다. ‘한 마을이 사라지면 박물관 하나를 잃는 격이다.’ 문화계에 널리 알려진 격언이다. SK하이닉스 반도체 클러스터 사업으로 일부 또는 전부 사라지는 500년 터전은 고당·독성·죽능리에 걸쳐 9곳에 달한다.

이런 가운데 오랜 마을역사·문화·생활 자원을 시급히 수집해 체계적으로 보존해야 한다는 여론이 일고 있다. 지역문화계 뿐 만 아니라 용인특례시의회와 원삼지역 주민대표 조직 등을 통해서도 목소리는 점점 커지고 있다.

이에 용인시가 문화예술과를 중심으로 원삼 이주지역 역사 문화자원 수집 보존을 위한 대책을 급히 마련한 것으로 알려졌다. 2010년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용인시 문화자원 관리와 유물보존에 힘써 온 이서현 용인시청 학예연구사를 통해 계획 전반을 들어본다.

용인시청 학예연구사 이서현 씨.
용인시청 학예연구사 이서현 씨.

-역사 문화자원과 생활사 자원을 수집 보존하는 사업이 중요한 이유는 뭔가?

“잘 알다시피 용인은 2000년대 초반 급격한 개발과 도시화가 진행돼 왔다. 그로 인해 난개발 도시라는 오명과 함께 무수히 많은 역사문화자원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용인시는 그동안 꽤 많은 시간을 투자해 난개발 도시라는 오명을 벗어나려고 노력했지만, 잃어버린 문화자원들을 되돌릴 수는 없다.”

-용인에선 그간 개발로 인한 문화자원을 제대로 지켜오지 못했다는 비판 목소리가 크다.

“도시 정체성은 단시간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랜 시간 역사와 문화가 켜켜이 쌓여오면서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개발로 인해 사라지게 되는 지역 역사와 문화자원이 어느 하나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다. 박물관 진열장에서 볼 수 있는 완벽한 유물이 아니더라도, 오랜 시간 용인 모습을 보여주는 생활 유물이야 말로 진짜 용인 모습을 보여주는 유물이라고 생각한다. 지난 시간 여러 개발사업으로 지켜내지 못했던 용인의 문화자원을 지켜내야 하는 것이 용인시의 책무라고 생각한다.”

-원삼에서 대규모 공동체 해체와 집단이주가 진행되고 있다. SK반도체 클러스터 조성 계획에 따라 사업자 측은 이미 주민들에게 10월말까지 이주결정을 통보한 상황이다. 관계기관 특히 용인시 계획은 무엇인가?

“보상과 이주는 관련부서인 반도체산단과에서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우리 문화예술과에서는 이주 대상 마을의 문화자원을 수집하고 기록하기 위해 용인시박물관을 중심으로 생활유물 수집 계획을 수립하고 유물 기증과 구입을 유도하기 위해 현지조사를 실시할 예정이다.”

-원삼면 지역자료 조사 및 수집사업은 용인시만의 노력으론 어렵다고 본다. 주민과 사업자 측 등이 그 가치와 중요성을 공유하고 공동으로 추진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보는데?

“원삼면은 많은 문화자원이 남아 있는 곳이다. 그리고 이를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이 그 지역 주민들이다. 주민들이 사업자 측에 지역자료 조사와 수집 사업을 요구해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이 과정에서 문화자원을 수집하고 기록하는 것은 전문가의 역할이 필요하므로 이러한 전문가의 역할과 여러 행정적 지원은 용인시에서 뒷받침해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벌써 보상과 이주가 시작되고 있어 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이제라도 주민과 사업자 측, 그리고 용인시가 머리를 맞대고 움직여야 한다. 따라서 용인시박물관에서 진행하는 원삼면 문화자원 현지조사는 이러한 노력의 출발점이라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중요성과 시급성을 인정한다면 현재 유기적 협력관계와 소통은 잘 되고 있나? 어느 단계인가?

“중요성과 시급성에 비해 출발이 늦은 감이 없지 않다. 지난 10월 말 용인시 학예사를 중심으로 현장 방문을 통해 이 사업의 필요성을 원삼면과 원삼협의자조합에 전달했다. 필요성에 대해서는 모두 공감하였으며, 11월부터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잘 아는 주민분들을 찾아가서 문화자원을 조사하는 작업을 시작할 예정이다.”

-예산 관련 준비는?

“지금으로선 비예산 사업이라 전수조사를 할 수 없는 상황이다. 하지만 최대한 용인문화원이 발간한 기존 마을지 자료를 활용해 중요 자원들을 조사하고 수집할 계획이다.”

-용인동백지구 개발로 인해 동백유적전시관이, 수원 광교지구 개발로 수원광교박물관이 사업주체에 의해 기부채납 형태로 지어졌다. 유물과 유적이 나왔기 때문이고 이를 보존하도록 하는 법적 근거에 따른 것으로 알고 있다.

“동백유적전시관은 현재 용인시박물관으로 운영되고 있으며, 수원광교박물관 역시 수원시에서 운영하고 있는 시립박물관이다. 대규모 개발사업을 위해서는 그 지역에 매장된 유적의 유무를 확인하기 위해 발굴조사를 실시한다. 발굴조사 결과 보존 가치가 뛰어난 유적은 현장에 보존돼 그 가치가 유지되도록 보존 조치된다. 위에 언급한 박물관은 보존 조치된 유적의 보존 방법으로 전시관을 지어 보존한 사례다. 성남시에 있는 판교박물관 역시 같은 경우다. 판교박물관은 판교지구 개발 시 발굴된 고구려, 백제 돌방무덤을 해체 이전이 아닌 그대로 전체 이전했다.”

-원삼도 가능성이 당연히 클 것으로 보인다. 관련 법률은 어떻게 되어 있으며, 현실화 되었을 때 로드맵은?

“원삼면은 하천을 따라 낮은 구릉지가 형성돼 있어 옛날부터 사람이 살기 좋은 지역이었다. 그 결과 이전에 이루어진 발굴조사에서도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유적이 확인되었기 때문에 중요 유적이 발굴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만약 발굴조사에서 중요 유적이 발굴되어 보존조치가 내려진다면, 사업자 측과 협의하여 현장 보존 또는 이전 보존에 있어 필요한 전시관을 건립할 필요가 있다.”

-기록관(아카이빙) 형태인가? 아니면 박물관까지 고려하고 있나?

“결과에 따라 다를 것이다. 다만 21세기 박물관의 기능은 유물의 안전한 보존과 전시라는 고유기능을 넘어 지역사회 구성원들을 위한 다양한 문화활동을 하는 곳이다. 박물관이 구심점이 돼 지역주민들이 소통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새로운 도시로 조성되는 원삼면에 발굴로 인한 유적이 보존되는 전시관 또는 박물관이 건립된다면 단순한 전시 기능뿐만 아니라, 지역 주민들을 위한 다양한 문화활동을 영위할 수 있는 복합문화시설이 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내년에라도 원삼 아카이브 구축을 위한 예산이 준비되어야 한다고 보는데?

“현재 용인시박물관에서 진행하고 있는 원삼면 지역 문화자원 수집을 위한 사업은 예산이 수반되는 사업은 아니다. 박물관의 학예인력이 주축이 되어 진행하고 있다. 유물의 기증과 구입이 결정된다면, 이를 위한 기본적인 예산은 확보돼 있다.”

-타 지역의 사례로 볼 때 지역기록 작업의 기대효과가 큰 것으로 나타나고 있는데?

“그동안 용인문화원에서도 용인의 여러 읍면 지역의 마을지 발간 사업을 꾸준히 진행해 온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이에 대한 후속 조치로서 문화자원의 수집이나 기록이 이어지지 못한 측면이 있었다. 이번 원삼면 문화자원 수집 조사가 첫 사례로서 매우 중요한 마중물이 될 것으로 생각된다.”

-최근 용인특례시의회 박은선 의원 등 제대로 된 시립박물관 건립 요구 목소리가 커지고 있지만 이를 대하는 용인시 입장은 답답해 보인다.

“용인시박물관은 기존 동백유적전시관을 리모델링해 사용하고 있으나 개관한지 10년이 넘었다. 증축 없이 운영돼 왔다. 그 결과 수집한 유물을 보관하는 수장고 부족, 정규직 학예사 없이 운영되는 등 용인특례시를 대표하는 박물관으로서 기능을 다하기에는 다소 아쉬움이 있다. 또한 용인시에서 발굴된 매장문화재 2만여 점이 다른 지역 국립박물관 등에 소장되고 있다. 용인은 현재의 박물관 수장고 규모와 유물 전담 관리 인력이 부족해 지역 문화자원을 활용하는데 많은 제약이 있다.”

-그만큼 박물관 재건립과 미술관 건립 필요성을 인정한다는 얘긴데.

“그렇다. 지금까지 용인시박물관은 여러 가지 부족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시립박물관으로서 역할을 다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왔다. 그렇지만 용인시가 100만 대도시로서, 그리고 특례시로서 성장한 만큼 박물관도 성장해야만 한다. 현재의 용인시박물관은 용인의 문화자원을 수집 보존하고 활용하기 위해서는 규모와 운영 인력이 매우 부족한 실정이다. 물론 이와 함께 지역의 문화예술 자원을 발굴하고 활용하기 위한 시립미술관도 꼭 필요하다.”

-용인시에 있는 여러 사립박물관 등을 들어 그 필요성에 회의적인 시각도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나?

“용인에 사는 사람의 기억과 마음을 담아내고, 지역문화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문화자원을 보존하는 일은 지역박물관이 해야 하는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현재 용인시박물관이 동백지구 개발 당시 발굴된 구석기 유적을 현지 보존하기 위해 건립된 것처럼, 용인시가 앞두고 있는 대규모 개발사업이 어쩌면 용인시의 역사와 문화자원을 보존할 수 있는 새로운 기회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개발사업으로 사라져갈 많은 문화자원을 보존하기 위해서라도 용인특례시의 위상에 맞는 박물관 건립이 꼭 필요하다.”

이서현은… 

단국대학교 고고미술사 전공(석사)
동국대학교 미술사학과 불교미술 전공(박사)
2010년 ~ 현재 : 용인시청 학예연구사
2019년 ~ 현재 : 전국학예연구회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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