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훈 원장
이동훈 원장

섬나라였던 호주는 스페인 독감이 유행하자 곧 모든 선박에 대해서 해상 검역을 실시했다. 1918년 실시한 해상검역에서 323척의 선박 진입을 중지시켰고, 그중 174척에서 1000여명의 독감 환자가 발견되었다.

확진자가 발견된 배는 전원 마스크를 착용하게하고 2주간 격리시켰다. 호주는 지리적인 장점을 잘 살려 1918년 전 세계적으로 수 천만 명의 희생자를 발생시킨 스페인 독감의 유입을 막았다. 극심했던 스페인 독감은 1918년 말경 감소하기 시작했다. 미국과 유럽, 아시아에 큰 피해를 준 독감이 감소했다.

제1차 세계대전 승리 기념식조차 독감 유행으로 취소되자 국민들의 불만이 증가하기 시작했다. 격리되던 사람들 중 일부도 열악한 환경과 시설에 항의하면서 탈출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검역기간을 줄이지 않으면 증기선을 철수시키겠다는 선박도 나왔다. 일부 지역의 관광산업은 붕괴되었고, 물자 보급이 지연되면서 밀가루가 떨어지는 곳도 나타났다.

1918년 11월 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독감 유행도 감소하자 호주 역시 방역에 대한 관심이 감소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전쟁터에서 돌아온 병사들을 중심으로 독감 환자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처음 발생한 독감 환자는 기존 스페인 독감에 비해 증상이 경미했다. 의료진은 스페인 독감인지 일반 계절 독감인지 감별하지 못했다.

독감예방백신 접종 첫날인 14일 기흥구보건소가 마련한 기흥구청 광장에는 이른 아침부터 예방접종을 받기 위해 시민들이 몰려 북새통을 이뤘다.(자료사진)
독감예방백신 접종 첫날인 14일 기흥구보건소가 마련한 기흥구청 광장에는 이른 아침부터 예방접종을 받기 위해 시민들이 몰려 북새통을 이뤘다.(자료사진)

그 사이에 더 많은 사람이 고열과 호흡곤란을 호소하기 시작했다. 초기 대응이 지연되면서 호주에서도 스페인 독감이 퍼지기 시작했고, 6개월 동안 만 명이 넘는 희생자가 발생했다. 호주에서 시작된 유행은 다시 유럽과 미국으로 전파되기 시작했다. 3차 유행은 1919년 7월까지 지속되었는데 스페인, 세르비아, 멕시코, 그리고 영국이 주로 영향을 받아 수십만 명이 사망했다. 이때 미국은 상대적으로 영향을 덜 받아 도시별로 산발적인 유행만 있었다.

세 번째 스페인 독감 유행은 이전 두 번의 유행과 확연하게 달랐다. 치명도가 크게 약해졌다는 점이다. 평균으로 회귀라는 주장이 있다. 확률적으로 아주 드문 상황이 발생하면 그 뒤에는 자연적으로 일반적인 상황으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바이러스 입장에서도 치명율이 아주 높은 경우 숙주가 사라지기 때문에 확산의 한계가 있다. 선택적으로 치명율이 낮은 변이가 더 많이 생존해 점진적으로 다수가 된다는 주장이다. 스페인 독감은 이후에도 주기적으로 계절 독감과 함께 나타났으나 과거와 같이 우리 사회에 치명적인 영향을 주지 않았다.

코로나19 대유행이 진정된 상황에서 다시 겨울이 다가왔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완화되고 있다. 지난 2년간 관찰되지 않았던 계절 독감 환자도 다시 발생하고 있다. 지난 유행에서 획득한 자연 면역과 백신 효과도 점차 낮아질 것으로 예상되는 시점이다. 독감과 코로나19가 함께 유행하는 상황이 예상되고 있다.

과거와 달리 우리에게는 코로나19 백신과 치료제가 확보되어 있다. 빠른 진단과 적절한 치료를 시행한다면 회복될 가능성이 높아진 것이다. 유럽과 미국 등에서 사회적 거리두기를 완화하고 일상적 활동이 재개되었다.

코로나19로 우리나라 의료 체계를 다시 한번 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안전한 의료 환경을 위해 투자가 필요한 시점이다. 과거 국민소득이 낮았을 때에는 진료를 받기 어려웠다. 그 결과 진찰료는 낮게 만들었다.

전국민 건강보험이 진행되면서 낮은 진찰료로 간단한 질환에도 의료기관을 방문할 수 있게 되었다. 한국의 의료기관 방문 횟수는 2020년 기준으로 연간 14.7회로 OECD 평균 5.7회보다 두 배 이상 많다. 의료기관 접근성은 전세계에서 최고로 좋은 상태다. 의료비가 비싸거나 의료기관이 부족해서 못가는 것이 아니다.

의료의 질적 수준을 높이기 위한 국민적 관심이 필요하다. 병원비 절감을 위해 다인실을 만들고 감염 예방을 위해 다시 1인실로 구조를 바꾸고, 바꾼 1인실을 부수어서 다시 다인실로 만드는 코미디 같은 일이 반복되면 안 된다.

건강한 의료 환경을 위해서 건강한 투자가 필요하다. 2022년 겨울이 코로나19로 어려운 마지막 시기가 될 수 있기 위해 튼튼한 의료로 대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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