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부터 8월까지 용인시마을공동체지원센터의 마을자원 조사 프로젝트가 처인구 백암 원삼 남사 이동 양지 포곡 모현 등 7개 읍면동에서 진행되었습니다. 5월 한 달 마을기록 및 아카이빙과 관련해 교육을 받은 8명의 조사원은 해당 지역의 자연·문화·역사자원과 마을공동체 등을 직접 방문, 조사를 마쳤습니다.

개인적으로 다른 지역에서 기억수집가 활동 경험이 있지만 용인으로 이주한 지 4년 차, 그나마 코로나19 이전에 이사와 첫해 집 가까운 곳을 매일 걸어 다니며 기웃거린 게 전부이니 죽전과 수지, 탄천을 벗어나면 용인은 여전히 새로움이 가득한 ‘내 고장’입니다.

특히 처인구라니. 거의 용인시의 70%에 해당한다는 넓은 땅. 직접 다니면서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고 하니 반가웠습니다.

새로 알게 된 사실인데 죽전 포은아트홀 앞이나 용인버스터미널에서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처인구 일곱 개 마을 행정복지센터까지 바로 닿습니다. 일반버스도 있고 빨간색 광역버스도 있고, 출·퇴근자를 위한 Y버스도 있습니다. 특히 10번이나 60번 버스는 용인시를 관통하는 노선으로 처인구 구석구석을 긴 시간 살펴보기에 좋았습니다.

처인구 이동읍 송전리에 있는 한 사진관 모습.
처인구 이동읍 송전리에 있는 한 사진관 모습.

이번 조사는 인구 지형 교통 역사 문화 등 전반적인 자료를 다양하게 수집했습니다. 인구 변화는 어떠한지 노령 혹은 1인 가구 증감은 어떤지, 산지․평지도로에 따라 일상생활권은 어떻게 달라지는지, 역사문화유적은 무엇이 남아있는지, 마을 명칭은 어디서 유래한 것인지, 현재 주민이 필요로 하는 건 무엇인지 등등.

구체적인 문제해결을 위한 자료조사가 아닌 다분히 광범위하고 기초적인 자료조사라 “이런 건 인터넷으로 검색하면 다 나오는 데 뭐하러 여기까지 멀리 물어보러 왔어요? 이 땡볕에. 우리도 바쁜데”라고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한국향토문화대전 디지털용인문화대전이나 위키백과, 용인문화원과 경기도문화재단이 발간한 책자에서 자세한 내용을 많이 얻을 수 있었습니다.

설화, 전설, 유래, 역사유적, 우리나라 정치사회경제 발전과 함께한 변화 등 이미 기록된 자료는 차고 넘칩니다.

특히 용인 지역 신문에서는 이 모든 자료와 함께 현재 한창인 이슈들도 자세하게 기사로 다루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사전조사 내용을 현장에서 최대한 확인한 후에는 현장과 관련된 개인적이고 구체적인 이야기를 꼭 여쭈었습니다.

처음 상대에 대한 탐색 허들은 이미 넘긴지라 60년 시간을 넘나드는 우여곡절 이야기가 자연스레 이어집니다. 옛이야기를 물어주는 게 반가웠는지도 모릅니다. 한참 들려준 후엔 여러 가지 심정이 담긴 표정으로 되물으시더군요. “이런 이야기 기록해서 쓸 데가 있으려나?”

낚시를 좋아하는 청년이 용인에 있는 낚시터를 두루 섭렵하다가 세탁일로 자리를 잡으면서 삼십년 넘게 한 자리를 지키고 있다는 세탁소 주인. 가게 앞 흙길이 포장되는 것도, 건너편 시금치밭에 오층 짜리 새 아파트가 올라가는 것도, 번화가를 구가하던 네거리가 시들해지는 것도 지켜보고 있다고 하십니다.

40대에 젊은 이장이 되어 낯선 작물을 들여와 농가 수입도 올렸고 꽃밭 가꾸기로 관광객을 모아볼까 애쓰느라 20년 세월이 훌쩍 지났습니다. 지금은 홀로된 마을 어른들을 아침저녁으로 살피면서 이어가는 새로운 꿈.

종갓집의 내력 있는 입맛을 지녔으니 자신이 아니면 잊히고 말 절기 음식을 손주 세대에 전해야 한다고 말하는 일흔 넘은 막내. 600년 전 선조께서 대국을 당당하게 상대했던 호방한 기개를 자신 안에서 발견한다는 놀랍도록 굳센 의지.

미용기술과 남편 이렇게 둘을 가졌으니 세상에 무서울 것 없었다는 지난날과 힘겨운 슬픔을 견디고 있는 지금도 역시 뚫고 나아가리라는 결심. 두 달 사이에 국군과 인민군에게 집 내주고 밥해 먹였다고 연달아 핍박받은 것도 어린 나이에 공포였는데, 우수한 학업성적도 소용없었던 낙방이 일가친척의 신원조회였음을 뒤늦게 알아채고 어찌나 분하고 억울하던지.

교육에 열과 성을 다했던 교장 선생님을 따라 치맛바람을 휘날렸던 그때의 열혈 엄마들에게 지금 필요한 건 수준 높은 고급 강좌라는 것.

퇴직 후 산록 푸르른 처인구 중에서도 나무언덕길에 이끌려 책방 터를 자리 잡은 곳에서 3.1만세운동 당시 흔적을 발견하고, 고증해 여러 사람에게 꼭 알려야겠다는 다급한 마음. 비가 많이 오면 물이 불어 건널 엄두가 안 났던 도랑에 시멘트 다리가 놓이고, 앞산에 골프장이 들어서고 앞으로는 반도체공장이 들어선다는 기대와 우려.

처인구의 경제발전, 인구 유입과 수려한 자연경관의 삼각관계를 유심히 지켜보고 있는 시선 등 궁극적인 마을 자원은 사람이고 이야기임에 틀림없었습니다.

용인시마을공동체지원센터 조미환 마을조사원
용인시마을공동체지원센터 조미환 마을조사원

“그저 하루하루 살다 보니 오늘”이라며 들려주신 이야기가 고맙습니다. 개별기록이 모여 공동체의 기록이 되기에는 특별한 노력이 필요함을 경험으로 안다하며 별 기대를 않고 들려준다는 배려의 말씀도 감사합니다.

짧게나마 지나온 삶에 대해 되돌아보며 생애의 의미를 살피고, 조금이나마 당신을 드러낸 것이 괜찮은 경험이었다 말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처인구 마을자원 조사 기록이 산 중턱에 올라앉은 무심한 미륵돌 만큼 세월을 이기고 전해지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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