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훈 원장
이동훈 원장

미국 의과대학을 졸업한 뒤 유럽으로 연수를 가는 경우도 있었으나 모든 의사들이 가능한 것은 아니었다. 급증하는 인구를 감당하기 위해 의과대학교가 신설되었는데, 1800년 4곳에 불과했던 미국 의과대학은 1860년 47곳, 1900년에 160곳까지 늘었다.

교육은 부실했고 졸업한 의사들은 자기 실력을 믿을 수 없어 진료를 시작하지 못하는 상황까지 발생했다. 의사는 많아졌지만 역설적으로 국민은 치료를 받을 수 없었다.

1892년 오슬러는 미국의 존스홉킨스병원이 개원하면서 의과대학 교육을 새롭게 구상했다. 의과대학생들도 함께 임상 현장에 참여하게 하고 졸업 후 병원에 상주하면서 환자 진료 경험을 쌓게 하는 방식이었다.

오슬러는 의대생, 전공의들과 함께 환자의 병실을 돌면서 증례를 토의하고 함께 논의하는 방식을 가졌다. 중앙 홀이 있고 원형으로 배치된 병실을 돌면서 당시 의사들은 이런 회진을 그랜드 라운드(Grand Rounds)라고 불렀고 오늘날까지 이어졌다.

1920년 플렉스너 보고서는 부실 의과대학교에 대한 철퇴를 내리고 이상적인 교육 모델로 존스홉킨스 의과대학교를 뽑았다. 곧 많은 미국의 의과대학교에서 인턴, 레지던트와 같은 졸업 후 교육과정을 시작하게 되었다.

존스홉킨스 병실 내부 모습.
존스홉킨스 병실 내부 모습.

과학기술 발전과 함께 뛰어난 치료 효과를 보여준 서구 의학은 동양에도 깊은 감명을 주었다. 특히 일본은 메이지 유신 이후 전통 의학을 폐지하고 모든 전통 의사에게 새로운 의학을 배울 것을 지시했다. 그런데 기본적인 의학서적은 번역돼 있었지만 심도 있는 전문서적의 번역은 쉽지 않았다.

영어나 독일어 등의 어학 수준이 확보돼야 했다. 일본은 대학교육을 진행하기에 앞서 예비학교의 필요성을 느꼈고 예과대학을 설치했다. 의과뿐 아니라 공과대학, 자연과학대학, 사범대학 등 외국 선진학문의 연구가 필요한 모든 학부에서 예비학과 과정이 진행되었다.

우리나라도 1899년 대한제국 정부가 3년제 의과대학교를 설립했으나 일제의 침략으로 우리의 독자적인 의학교육이 중지되고 일본식 교육제도가 도입되었다. 일본에서 시행되고 있던 예과제도는 조선에서도 동일하게 이뤄지면서 1926년 경성제국대학에 의예과 2년, 의학과 4년제 의학교육제도가 시작돼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광복 후에는 미국의 영향으로 전문의 제도가 소개되면서 1958년부터 인턴과 레지던트 수련이 추가되었다.

의학교육은 교과서적 지식과 임상 진료 경험이 모두 중요하다. 한국의 경우 전문의 선호 현상으로 졸업생 대부분 전공의 과정을 이수해 전문의 자격증을 취득하고 있다. 전문 인력을 무한하게 증가시킬 수 없다. 최근 응급수술을 받지 못해서 위험한 상황에 빠졌다는 기사들이 보인다.

핵심 분야 인력이 부족하다는 주장도 있다. 내과, 외과, 산부인과, 소아청소년과, 정신건강의학과 등 소위 핵심 전문과 전공의를 지원한 의사 수가 2022년 1076명으로 전체 3328명 중 32%를 차지했다. 반면 피부과, 안과, 성형외과 지원자는 410명(12.3%)에 불과하다. 의사가 부족한 것이 아니라 어렵게 확보한 전문 인력을 우리사회가 활용하지 못하는 것이다.

심장수술을 해야 할 흉부외과 전문의가 미용 성형 시술을 하고 있다면 바람직한 상황은 아닐 것이다. 의학교육 과정은 길다. 어렵고 긴 과정을 거친 의료인들이 불편한 몸을 회복시켜 사회와 가정에 즐거운 시간이 계속될 수 있게 건강한 의료환경을 만들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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