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정 변호사
이은정 변호사

재판상 이혼의 경우, 혼인 생활의 파탄에 주된 책임이 있는 배우자는 이혼을 청구할 수 없다는 원칙이 있습니다. 이혼소송에서 유책배우자라고 판단돼 이혼 청구가 기각되었다면, 해당 유책배우자는 평생 다시는 이혼 청구를 할 수 없는 것일까요? 유책배우자라고 하더라도 이혼 청구가 예외적으로 허용될 수 있는데, 이와 관련해 최근 대법원 판결을 소개해드립니다.

대법원은 ‘이혼 청구 배우자의 유책성을 상쇄할 정도로 상대방 배우자 및 자녀에 대한 보호와 배려가 있을 경우, 세월의 경과에 따라 파탄 당시 현저한 유책배우자의 유책성과 상대방 배우자가 받은 정신적 고통이 약화돼 쌍방 책임의 경중을 엄밀히 따지는 것이 더 이상 무의미할 정도가 된 경우 등 혼인 파탄의 책임이 반드시 이혼 청구를 배척해야 할 정도로 남아있지 않은 경우, 그러한 배우자의 이혼 청구는 예외적으로 허용될 수 있다.

이를 판단할 때에는 유책배우자의 책임의 정도, 상대방 배우자의 혼인 계속 의사 및 유책배우자에 대한 감정, 당사자의 나이, 혼인 기간과 혼인 후 구체적인 생활관계, 별거 기간, 별거 후에 형성된 부부의 생활관계, 혼인 생활 파탄 후 여러 사정의 변경 여부, 이혼이 인정될 경우 상대방 배우자의 정신적 사회적 경제적 상태와 생활보장의 정도, 미성년 자녀의 양육·교육·복지 상황, 그 밖에 혼인 관계의 여러 사정을 두루 고려해야 한다(2022. 6. 16)’고 판시했습니다.

그 판단기준으로 이혼 청구 배우자의 유책성이 희석되었다고 볼 수 있는지, 상대방 배우자인 피고에게 혼인 계속 의사가 있는지, 혼인관계의 유지가 미성년 자녀의 복리에 미치는 영향 등을 제시했습니다.

이혼 청구 배우자의 유책성이 희석되었는지 여부는 현재 진행되고 있는 이혼소송 사실심 변론종결을 기준으로 판단해야 합니다. 상대방 배우자 또한 혼인 관계 회복과 양립하기 어려운 언행이나 비난을 계속하고, 쌍방간 별거가 고착화되었으며, 이미 혼인관계가 와해돼 회복될 가능성이 없음에도 협의이혼도 불가능한 상태에 이른 경우 과거의 유책성이 희석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상대방 배우자에게 혼인 계속의 의사가 있는지 여부는 주관적으로 표명하는 의사만을 기준으로 할 것이 아니라, 혼인생활 및 소송 중 나타난 언행과 태도를 종합해 그 상대방 배우자가 악화된 혼인관계를 회복해 원만한 공동생활을 영위하려는 노력을 기울임으로써 혼인 유지에 협조할 의무를 이행할 의사가 있는지 객관적으로 판단해야 합니다.

상대방 배우자 또한 원만한 혼인 관계로의 복원을 위해 협조하지 않은 채 오로지 배우자에게 혼인 관계 악화에 대한 잘못이 있다고 비난하고, 대화와 소통을 거부하는 경우, 이혼소송 중 가정법원이 권유하는 부부상담 등 혼인 관계의 회복을 위해 실시하는 조치에 정당한 이유 없이 불응하면서 무관심한 태도로 일관하는 경우, 혼인유지를 위한 최소한의 노력조차 기울이지 않았다고 볼 여지가 있습니다.

다만, 유책배우자의 이혼 청구를 예외적으로 인정하기 위해서는 상대방 배우자 및 자녀에 대한 보호와 배려가 있어야 하므로 이혼에 불응하는 상대방 배우자가 혼인의 계속과 양립하기 어려워 보이는 언행을 하더라도 이혼 거절 의사가 이혼 후 자신과 미성년 자녀의 정신적·사회적·경제적 상태와 생활보장에 대한 우려에서 기인한 것으로 볼 여지가 있을 때에는 혼인 계속 의사가 없다고 섣불리 단정하면 안 됩니다.

자녀가 미성년자일 경우, 혼인 유지가 자녀의 복리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 측면과 파탄된 혼인관계를 유지함으로써 자녀 복리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측면에 관해 모두 심리·판단해야 합니다.

대법원 판결은 유책배우자의 이혼 청구를 예외적으로 허용할 수 있는 경우와 허용할 수 없는 경우에 대한 판단기준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특히 상대방 배우자의 혼인 계속 의사의 판단기준과 판단 방법을 구체화해 제시한 판결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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