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과교육연구소 안강현 대표
일과교육연구소 안강현 대표

두부찌개를 맛있게 먹고 일어서려는데, 식당 주인이 형제봉을 가리키며 물어왔다. “저어, 저 산 이름이 무엇인가요?”

순간 실소를 금할 수 없었다. 서봉마을 대표 맛집으로 알려진 두붓집인데 바로 마주 보이는 광교산 이름조차 모르고 있었다는 말인가. 마을 입구에는 광교산 입구 교통표지판이 뚜렷하고, 식당 앞길을 지나다니는 마을버스에는 광교산 입구행 표시가 선명한데 말이다.

낯선 사람이나 등산객이었다면 바로 “아 예, 광교산입니다. 용인 팔경 중 제2경이고요. 왼쪽엔 형제봉 그리고…” 하면서 신나게 홍보성 멘트를 날렸을 것이다. 바라만 봐도 시원한 느낌이 들고, 하루가 다르게 짙푸름을 더해가는 광교산의 아름다운 세 봉우리, 광교산 일몰은 알프스 석양에 비견된다는 찬사를 보내는 이도 있을 정도다.

수지 쪽에서 바라보는 광교산은 매력적인 모습으로 마을을 감싸며 내려다본다. 광교산이 멋져서 이 동네에 정착했다는 이들도 꽤나 있기도 하다. 정말 의외라는 표정을 지으며 정말로 산 이름을 모르냐며 되물었다.

“손님들이 산이 너무 멋있다면서 이름을 물어봐서요.”

마치 숟가락이 국 맛을 모르듯이, 어리석은 자는 한평생 어진 이를 가까이 섬길지라도 참다운 진리를 깨닫지 못한다고 한 <법구경> 구절이 떠올랐다. 아무리 유명하고 좋은 것이어도 관심을 두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것일까? 손님들에게 맛난 음식과 친절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에 더해 우리 동네의 대표 브랜드인 광교산, 그리고 천년고찰 서봉사의 문화까지 파는 대박 음식점으로 도약하라는 조언까지 보태어 즉석 광교산 강의를 했다.

그런데 정작 광교산에 대해 무식한 것은 바로 필자 자신이었다는 것을 자각한 것은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성복역 근처 찻집에서 만난 이석순 선배가 느닷없이 물어왔다. 이 선배는 고향을 지키면서 수지지역을 샅샅이 조사하고 연구해 <수지향토문화답사기>를 펴낸 향토사학자이다. 서울로 진학해서 무늬만 고향인 필자와는 비교도 안 되는 애향심이 넘치는 존경스러운 분이다.

“이순신 장군의 고향이 어디라고 생각해?” 너무나 뻔한 질문의 의도가 무얼까를 생각하고 있는데, 선배는 “고기동이 이순신 장군의 고향이야.”라고 했다. 이순신 장군은 서울 충무로에서 태어났고, 장군의 묘가 아산 현충사에 있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없는데, 무슨 말씀일까 하는 표정을 짓자, 이 선배는 확신에 찬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수지구 고기동에는 이순신 장군 할아버지 묘소가 있다면서 묘소 뒤편 봉우리를 장군봉이라 부르는데, 광교산 시루봉에서 시작해 이곳에서 명당 혈을 맺어 이순신 장군과 조카인 이완 장군이 태어났다는 것이다. 조상의 묘소가 있고, 대대로 자손들이 살아온 광교산에서 충무공이 호연지기를 길렀을 것을 의심치 않는다는 것이다.

보통 사대부가에서는 출생하고 성장한 곳뿐만 아니라 조상의 선영이 있는 곳, 그리고 필요한 양식을 조달하는 농토가 있는 곳을 고향이라고 하기 때문에 이순신 장군의 고향은 광교산 고기동이 맞다는 것이다. 그날부터 <수지향토문화답사기>를 읽기 시작했고, 몇 번이나 망치로 머리를 얻어맞는 느낌을 받았다. ‘아니 이런 이야기를 왜 이제야 알게 된 거야’ 하면서.

식당 주인을 한심하다고 했던 필자는 광교산 밑 서봉마을이 고향이고, 토박이라고 했지만, 정작 광교산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없었다.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다. 용마등의 전설 이야기는 듣느니 처음이고, 병자호란 광교산 전투에서 청 태종의 매부인 적장 양고리를 사살했던 승전 이야기에서는 가슴이 뜨거워졌다. 대마도를 정벌한 이종무 장군 묘소 앞에서는 이제야 찾은 무지를 탓했다.

광교산을 공부하자며 몇몇이 모였다. ‘광교산문화포럼’이라고 이름을 짓고 광교산을 답사하고 공부도 한다. 광교산에 대한 역사와 문화 콘텐츠를 발굴하고, 광교산의 가치를 알린다. 광교산에 대한 전시·세미나도 열기로 했다. 관심 있는 이들이 모였다.

타향을 떠돌다가 고향으로 돌아온 지 6년째, 잊고 지냈던 광교산은 다시 일상 속으로 들어왔다. 아침에 일어나면 먼저 광교산과 아침 인사를 나눈다. 오뚝한 코와 턱선이 아름다운 여인의 모습을 한 형제봉, 용마등 능선 위에 솟아오른 종루봉은 가운데에서 균형을 잡는다. 형제봉에서 종루봉을 거쳐 시루봉에 이르는 능선은 어머니 젖가슴처럼 따뜻하고 편안하다.

봄을 알리는 연녹색의 서봉사 뒤뜰 오방란, 떡시루 김처럼 운무에 싸인 한여름의 시루봉, 어깨선에 오색 스카프를 휘감은 가을 형제봉 여인, 그리고 눈 쌓인 용마등에는 김준용 장군의 모습이 겹쳐졌다. 서봉마을회관 앞을 지나는 신봉천 위 다리에서는 광교산이 잘 보인다. ‘광보교(광교산을 보는 다리)라고 이름표를 붙였다. ‘만삭의 여인’을 떠올리게 하는 포근한 느낌의 광교산 세봉우리 능선, 광보교에서 데이트 시간이 점점 길어진다.

수지지역이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수리봉에 올랐다. 시원하게 뻗어 내린 산줄기 사이 아파트 물결 넘어 석성산이 손에 잡힐 듯 가까웠다. 호쾌한 풍경을 바라보며 막걸리 잔을 기울이자니 호항골에서 불어오는 바람 소리에 광교산 전투의 승전 함성이 묻어왔다. 300여년 전 김간 시인의 ‘광교산에 올라’ 마지막 연을 아니 읊을 수 없다.

三盃濁酒登臨興 千載高風慕祝融

광교산에 오르니 막걸리가 흥겹고

천년 절터 산바람에 신선이 부럽지 않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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