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훈 원장
이동훈 원장

1592년 4월 13일 고니시 유키나와는 400여 척의 함선을 부산에 상륙시키면서 순식간에 부산, 동래를 함락하고 조선의 수도인 한양을 향해 진격했다. 왜군을 막기 위해 경상도 지역의 조선군은 대구로 모이기 시작했다. 5만여 명이 넘는 병력이 집결했다. 조선의 군사전략은 지방 군벌을 막기 위해 중앙에서 파견한 장군이 현장 병력을 통솔하게 했다.

북방에서 여진족과 전투에서 명성을 날리던 이일이 대구로 급파되었다. 그러나 이일이 도착하기도 전에 왜군이 대구로 향하고 있었다. 수 만 명의 병사들이 모였지만 군량도 무기도 지휘관도 없었다. 순식간에 모였던 병사들은 흩어졌고, 이일은 얼마 남지 않은 병력을 이끌고 상주에서 저항했지만 결국 참패하고 말았다. 임진왜란 초기에 발생한 조선군의 전략적 실패다.

적은 규모의 병력을 여러 곳에 분산 배치시켰을 때 유지비용과 대규모 침공에 대응하기 어렵다는 인식으로 한곳에 집중해 대규모 병력으로 임무를 수행하게 한다는 발전된 개념이었다.

조선군의 전략에는 결정적인 문제가 있었다. 이일이 활약했던 북방지역에서는 지휘관이 현장에서 근무하면서 필요시 병력을 집결해서 대응했다. 1587년 100명도 안 되는 수비병력이 있던 녹둔도에 1000여 명이 넘는 여진족이 침공했을 때, 이순신의 뛰어난 능력이 아니었으면 전멸당할 수밖에 없었다. 이일은 곧 북방의 병력을 모아 2500여 명으로 여진족을 공격해 승리했다.

북방의 경험은 남쪽 지역에 바로 적용될 수 없었다. 지휘관이 없었던 대구에 집결한 병력은 두려움에 왜군이 도착하기도 전에 사라졌다. 그러나 이렇게 흩어진 병사들이 모두 없어진 것은 아니다. 지방 곳곳의 유력자들이 인솔하던 의병 조직에 흡수되면서 10만이 넘는 왜군을 상대하면서 진격을 막고 병참을 차단하는 활약을 했다. 나라를 지키는 데 민관이 따로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

2020년 코로나19가 대한민국을 비롯한 전 세계에 큰 충격을 주었다. 의료 선진국이라고 하는 미국과 유럽 역시 상상을 초월하는 새로운 형태의 전염병에 속수무책으로 큰 피해를 보았다. 대한민국 역시 오미크론 변이 앞에서 국민의 30%가 넘는 확진자가 발생하는 등 의료계가 감당하기 어려운 위기상황에 직면했다.

급증하는 확진자에 유전자증폭검사를 통한 진단에서 신속항원검사로 바꾸면서 지역 의료기관들이 코로나19 대응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약 2개월 동안 500만명 이상이 민간 의료기관에서 확진되었고 곧바로 재택 치료로 이어졌다.

용인시도 내과, 이비인후과, 소아청소년과 등 약 100여 곳에서 코로나19 진단과 치료에 동참했다. 확진자 급증으로 보건소 역량의 한계로 기본적인 유선 연락도 지연되고 있는 상황에서 민간 의료기관의 적극적인 대응은 위기를 극복하는데 도움을 주었다. 용인시의사회가 재택치료를 한 확진자 201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 결과 98%가 만족한 것으로 나왔다.

특히 확진 후 48시간 이내 보건소에서 접촉하지 못한 경우가 23.4%나 되었는데, 지역 의료기관에서 치료가 시작되면서 치료 지연이 줄어든 것이다. 지역 의료진의 경우 평소 질환을 파악하고 있기에 더 적절한 접근이 가능한 경우도 있었다. 호흡곤란을 호소하던 한 70대 환자는 평소 비염이 있던 사실을 알고 있던 의료진에게 비염 치료제 처방으로 증상이 해소되기도 했다. 반면 심장, 호흡기 질환으로 평소에도 숨쉬기 어려워하던 한 환자는 빠른 항바이러스제 처방으로 회복에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국영 의료기관 비율이 100%에 이르는 공산권 국가와 영국을 제외하고 대부분 국가에서는 민간 자본에 의한 의료기관이 운영되고 있다. 한국의 경우 일제시대와 광복 이후 1960년대까지는 국영 의료기관이 주도했으나, 이후 다양한 서비스와 양질의 의료를 제공하는 민간 의료기관이 급증했다.

1977년 시작된 의료보험제도는 의료비 수준을 55% 인하하면서 국영 의료기관에 큰 타격을 주었다. 민간 의료기관들은 다양한 형태의 비보험 진료 영역을 개발하면서 건강보험제도로 발생하는 적자를 메울 수 있었지만 공공성을 표방한 국영 의료기관들은 한계가 있었다. 국립 중앙의료원의 경우 매년 수백억원의 적자가 발생하면서 누적 적자가 2000억원을 넘고 있다. 착한 적자라고 넘기기에는 쉽지 않은 문제다.

적자를 국가 지원으로 메우면서 유지할 수도 있다. 현재 중증외상 치료, 감염병의 경우 보건당국이 책정한 의료비용으로는 운영할 수 없다. 감염예방관리료 최고 수준은 겨우 3000원에 그친다.

그나마 외래 진료에서는 감염예방관리료 자체가 없다. 음압 격리 병상의 경우 병상 하나 만드는 설치비만 2~3억원, 월 운영비용이 3~4천만원에 이른다. 국영 의료기관이 정부 지원금으로 적자를 감수하고 운영하는 경우 해당 진료 분야에서 민간 의료기관들의 진료 위축으로 이어진다. 당연한 결과다. 적자를 감수하면서 나서기에는 이상과 현실의 차이가 크다.

코로나19 유행 과정에서 보건소의 역량을 방역에 집중하기 위해 보건증이라고 불리는 건강진단서를 민간 의료기관에 한시적으로 건강보험적용을 한 결과 큰 호응이 있었다. 국민도 가까운 의료기관에서 쉽게 검사를 받을 수 있었다. 보건소는 방역에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 중앙 정부 차원에서 업무의 융통성과 대응성을 높인 사례로 평가되고 있다.

국가를 지키는데 민관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국영 의료기관과 민간 의료기관 모두 국민에게 차별 없는 진료가 이뤄지고 건강을 지키는 공공 의료기관이다. 공공과 민간으로 나누기보다 용인시 의료기관이 모두 발전하도록 유도하는 것이 용인시민의 안전과 건강을 지키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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