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망구란 말은 분명 점잖지 못하고 천한 말이고, 비칭(卑稱)이란 낮추어 일컫는 말이지만 지금도 흔히 들을 수 있는 말이다. 얼마 전 고향에서 얻어들은 ‘박 영감네’ 이야기 먼저 하려 한다. “여보, 할망구, 서울 큰 애에게 김장김치 보내줘야 하지 않소?” “또

어머님 보고 해대는 말이군.” 고리타분한 남존여비 생각이 머리끝까지 가득 찬 박 영감이 아내인 할매에게 상의 아닌 명령 투의 말이다. “아무리 남자라고, 집 대주라고 하더라도 어머니에게 그렇게 말을 마구 해대지 않고 다른 말로 오순도순하게 말할 수는 없을까? 방에 대고 하더라도 할망구가 뭐야” 하고 방안에 있던 애들이 아쉬워하더라는 이야기다.

언어학의 대가 교수의 말에 의하면 할망구는 ‘늙은 여자를 얕잡아 일컫는 말’이고 이 ‘얕잡아’는 실제보다 ‘업신여겨 깔보다’는 말이다. 남을 업신여겨 호락호락하게 제 손안에 넣고 보는 것이며, 눈을 아래로 뜨고 흘겨보는 것이니 한마디로 할망구란 늙은 자기 아내의 인격을 모두 무시하고 자기 아랫사람으로 치부해 부르는 호칭이다. 할망구, 할망구텡이, 할망구테기 라고도 지방에 따라 각각 다르게 불리지만, 모두 남편인 영감이 부부간을 무촌 간 동격이라는 생각도 없이 자녀나 다른 사람 앞에서 서슴없이 불러댐은 옛날부터 전해온 탓이라고 했다.

얼마 전 손에 잡힌 소설 ‘○○○의 반란’을 읽다 보니 심심소일은 되나 할망구 소리가 너무도 자주 나왔다. 200여 쪽으로 할망구 소리가 앞으로 몇 번이나 더 나올까 일부러 세어 보고도 싶었다. 소설이기에 이야기 흐름으로 보아 꼭 그렇게 끌고 갈지 모르나 작가의 머릿속에 들은 것이 온통 하찮고 질 낮은 단단한 고철 덩어리 같은 말뿐이라고 그 작가를 평가절하하고 싶었다. 할망구라는 소리는 너무한 쌍소리로만 들렸다.

그 교수는 이어 “지금 우리는 76억 인구 속의 한사람으로서 이들이 각기 쓰는 6000개의 언어 가운데 한글이라는 유성(有聲)으로 된 표음문자를 가진 민족입니다. 지금 몇몇 국가를 제외하고는 우리의 표현만능인 한글문자를 부러워하고 있음은 잘 아는 사실입니다”라고 말을 보태줬다.

이런 훌륭한 언어인 한글을 가진 민족으로 그동안 듣고 자라온 부부간의 호칭을 아는 만큼 나열해 보면, 제멋대로 부르는 것으로 누구 엄마, 누구 아빠, ○○○씨, ‘자기야’ 란 애칭에 어이, 자네, 여보야, 이봐, 임자, ○○삼촌, 오빠, 아빠, 당신 같은 별칭 등 수없이 많다. 이런 말을 조용히 불러준다면 서로 존경심도 더해지고 사랑도 더 깊어질 것이라고 했고, 더 감미롭지 않을까?

이렇게 감미로운 대명사로 호칭을 나열해 놓고 보니 부부가 함께 만나 혼인한지 예순 돌인 회혼례(回婚禮)가 가까워 얼굴에 핏기 가셔가는 나이에 설령 ‘어이, 할망구 배고프다 밥 줘. 막걸이 한 사발 주구려’ 하는 투의 천한 말씨도 살을 섞어 부드럽게 말한다면 서로 오래 살아온 옛정으로 반가이 받아들일 수 있다.

하지만 ‘저 늙은 영감탱이가 잔소리가 많아’ 하고 말끝을 높이면 남자 쪽도 듣기 싫을 것이다. 이래서 부를 때나 말할 때 서로가 이신일체(二身一体)라는 생각으로 소리의 높낮이를 조절할 줄 알면 지나간 새신랑 새아씨 시절로 돌아갈 수도 있을 것이다. 사랑이 다시 무르익을 것이다.

정말, 할망구나 영감탱이 같은 비칭은 삼가야 할 것이다. 이토록 호칭에 대해 그의 한마당 강의를 여기에 옮겨 보려는 순간, 어릴 때 고향 산, 들이 눈앞에 클로즈업 되었다. “집안의 평화, 이른바 가족 사이의 화목이나 웃음은 집안에 먹고 살 끼니를 끓일 꺼리가 풍족할 때 이뤄진다”고 항상 곰방대 물고 다니던 곰방대 할아버지가 하던 명언이 생각난다. 이따금 구멍 난 울타리 너머로 “저년 서방 잡아먹을 년이야, 애 새끼들 밥도 안 멕이고 어디 쏘다니다가 이제 들어오는 거야”

“그러는 당신은 어젯밤에 집에 들어오지 않고 자식새끼 굶는 것도 모르고 뭣했소, 집구석에 보리나 쌀 알갱이가 없는 것도 모르고” 하고 나자 와락 멱살 잡혀 방으로 끌려 들어가면서 세 아이의 울음 삼주곡(三奏曲)이 이어 터져 나왔다. 곰방대 할아버지 말이 가난은 다시 배고픔으로 이어지는 데 찬물 떠 놓고 성례(成禮) 올린 지 반백년이 가까워오는 부부 사이에 여보, 당신, 누구 아빠 하는 동격의 호칭이 제대로 나올 수 있을까? 그저 소인은 이식위천(小人以食爲天) 이란 말도 다시금 생각나 적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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