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승희
신승희

최근 2070년에 국산 사과가 사라질 것 같다는 뉴스보도가 있었다. 사과는 추운 겨울을 지나야 맛난 사과가 열린다면서 우리나라의 온도 상승이 결국 사과의 재배지를 줄어들게 해 2070년엔 국산 사과가 없어진다는 뉴스였다. 그걸 듣는 순간 ‘과연 2070년에 사과만 없어질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보도는 2090년~2100년쯤 우리나라 평균온도가 산업혁명 전보다 7도가 올라간다는 예상에서 나온 뉴스였다.

많은 사람이 알고 있듯이 18세기 유럽의 산업혁명으로 전 세계가 산업화·공업화 물결을 타게 됐다. 화석연료인 석탄과 석유를 교통·운송수단의 직접적인 에너지로 사용하고, 화력발전을 통해 전기 생산의 자원으로 사용했다. 플라스틱과 비닐, 합성섬유 따위 제품의 원료로 사용하면서 많은 양의 이산화탄소가 발생하게 됐다.

그렇게 200년 가까이 누적된 이산화탄소가 온실효과를 가중시켜 지구 온도를 높이는 결과를 만들었다. 그래서 항상 지구 온도 상승의 기준을 산업혁명 이전, 화석연료 사용 전, 이산화탄소의 인위적인 배출로 지구에 영향을 주기 전으로 잡는다. 그때에 비해서 지구 평균온도가 세계적으로 섭씨 6.5도 오르고, 우리나라는 7도가 오른다?

7도가 오르면 어떻게 되는지 알고 사과 걱정을 하는 것일까? 7도가 오르면 사과를 먹을 수 있는 인류가 얼마나 남아있을까 걱정해야 한다. 6도 이상만 올라도 인간이 살 수 있는 육지 면적은 얼마 남지 않는다. 섭씨 36.5도 체온보다 높아진 온도로 건강에 위협을 받는 적도와 저위도 지역을 떠나 고지대와 극지방으로 인구는 몰릴 것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대부분의 대도시는 강을 끼고 있거나 해안가에 위치해있는데, 남·북극의 얼음이 녹아내려 해수면이 급격히 상승해 이미 잠겨버릴 것이다. 한강을 끼고 있는 서울을 빗겨갈 것이라고 장담할 수 없다.

온도가 올라간다고 단순히 얼음만 녹을까? 바다가 많은 지구의 고온은 공기 중에 수증기를 증가시켜 지구 전체 기후시스템에 문제를 일으킨다. 뜨거운 일상은 당연하고 가뭄과 폭우, 태풍과 산불, 쓰나미 등 자연재해가 더 빈번해지며 그 위력은 더 강력해진다. 인간이 간신히 살아남는다 해도 전체 생물 종 가운데 90% 가까이 사라져 과연 우리가 먹을 게 있을지 가늠조차 할 수 없는 시대가 된다.

기껏 사과 걱정을 하고 있다면 그나마 다행이다. 지금이 2022년이니 7도 상승이 예상되는 2090년까지 이제 68년 남았다. 필자가 죽고 나서 올 시대이기에 다행으로 느껴진다. 너무나 끔찍한 미래기에. 그러나 우리 아이들은 별일 없다면 당연히 맞닥뜨릴 시간이다.

이 비극적 시나리오를 누구도 원하지 않는다. 그러려면 변해야 하고 바뀌어야 하고 줄여야 한다. 그런데도 지금껏 누려온 생활의 편리와 풍족한 물질을 절대 내려놓을 생각이 없다. 여름철 블랙아웃이란 말을 하면서 더 많은 화력발전소와 원자력발전소를 지어 에너지를 불편 없이 맘껏 사용하게 해주겠다고 한다. 옳지 않다. 지구는 무한대로 퍼주는 화수분이 아니라 쓰다 보면 말라버려 바닥을 드러내는 우물이다.

녹색성장, 지속가능발전, 이런 말들이 한창 나오더니 요즘은 탄소중립이 대세인가 보다. 여기저기에서 그 말이 들리고 있다. 탄소중립이란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0으로 하자는 얘기인데 이는 인간의 활동을 멈춰 이산화탄소를 전혀 배출하지 말자는 것이 아니다. 불가능하다.

다만 배출하는 것만큼 없애는 탄소량을 늘려 궁극적으로 산술적인 결과가 0이 되도록 하자는 것이다. ‘발생하는 탄소량 - 없애는 탄소량 = 0’의 아주 단순한 공식이다.

정부가 ‘탄소중립2050’이란 슬로건으로 탄소중립 실천계획을 세웠던 2020년엔 2030년까지 탄소배출량을 절반 수준으로 줄이고, 2050년엔 0으로 해 온도 상승의 폭을 1.5도를 넘지 않도록 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그러나 최근 나오는 기후에 대한 연구보고서를 보면 전 세계가 탄소중립 목표로 잡고 있는 1.5도 상승 기한이 애초 예상했던 2050년이 아니라 2035년, 아니 그보다 빠를 수도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2050년을 바라보며 ‘아직 시간이 있네’ 할 게 아니라 당장 십년안에 많은 것들을 해야한다는 얘기다.

초반에 언급했듯이 이산화탄소 발생은 화석연료인 석탄과 석유 사용에 기인한다. 석탄과 석유를 가장 많이 사용하는 분야는 에너지이다. 그러니 에너지를 적게 사용하고, 관련 제품을 적게 생산, 소비하는 것이 탄소 발생량을 줄이는 방법이다.

펑펑 써가면서 탄소를 적게 발생하게 할 수는 없다. 또한 탄소가 적게 나오거나 아예 나오지 않는 에너지원을 개발하는 것도 방법이다. 자연에서 나오는 에너지 태양, 바람, 물, 바이오 등이 그것이다. 요즘 관심을 받고 있는 수소도 그에 속한다.

발생한 이산화탄소를 흡수하는 가장 원초적인 방법은 식물을 활용하는 것이다. 식물은 광합성이라는 과정을 통해 이산화탄소를 흡수하고 산소를 내뿜는다. 흔히 보이는 풀, 나무는 물론, 바다에 있는 식물성 플랑크톤도 그 역할을 한다. 식물뿐만 아니라 갯벌이나 습지 등도 이산화탄소의 거대한 저장소이자 흡수원이다.

그러니 그들이 사는 숲과 바다를 잘 보존하고 확장해 나가는 것이 탄소를 없애는 중요한 방법이다. 아직 수준이 미비하지만 직접 공기 중의 탄소를 포집 저장하는 과학기술도 노력해 나가야 할 부분이다.

이렇듯 사회 산업, 경제, 과학기술, 환경 등 관련 분야에서 어떻게 제도를 만들어가느냐가 탄소중립 방향과 속도를 결정할 수 있다. 사회 공동체와 지구적 관점에서 공존의 철학이 바탕이 된 좀 더 적극적이고 커다란 개혁, 강력한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 전등 잘 끄고 쓰레기 분리배출이나 잘하면 된다고 선전하는 수준은 이미 넘어섰다. 뒤에서 펑펑 쓰고 있는데 언제까지 콩나물 가격이나 깎고 있을 수는 없지 않나 말이다. 탄소와 기후는 인류 생존의 문제다.

대통령선거가 얼마 전에 끝났다. 그리고 6월 지방선거가 우리의 선택을 기다리고 있다. 여러 가지 선택 기준이 있겠지만 얼마나 탄소중립을 실현해나가는데 정책을 가지고 있고, 의지를 보이는지 반드시 따져봐야 한다.

탄소중립에 대해 고민하지 않는 단체장, 의회 의원은 이제 퇴출해야 한다. 시대의 변화와 흐름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 정책을 조사하고 연구하지 않는 사람은 뽑지 말아야 한다. 기후위기의 원인을 반성하고 앞으로의 세대에 책임감 있는 사람을 뽑아야 한다.

그러나 막상 투표용지를 보고 고르라고 하면 마땅히 손이 가지 않는다. 필자가 그 분들을 잘 몰라서 선택을 주저하기도 하지만 대부분 비슷한 공약과 비슷한 단체 경험을 가지고 있다.

작은 동네를 비롯해 용인특례시라는 도시의 정치계에도 몇몇이 무리 지어 서로 감투를 나눠가지는 경향이 있다보니 그런 결과가 나온다.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서로 서로 조직으로 연결돼있다. 정책에 대한 연구보다 조직을 다지는데 더 힘을 기울이고, 분야에 대한 전문성보다 누구 줄인가를 더 강조한다. 마치 탱자나무 가시울타리처럼 그들끼리 견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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