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을 갈아서 화선지에 붓글씨를 쓰면 물의 농도에 따라 조금씩 번져나갔다. 미세한 번짐을 이용한 효과는 붓글씨의 매력이기도 하다. 잔잔하게 흰 공간에 퍼져나가는 먹물의 번짐은 물의 기운이 다하면 멈춘다.

흰 종이에 검정색 먹으로 글씨를 쓰는 것과 같이 천에 색깔을 입혀 아름답게 꾸미는 것은 의복이 개발된 이후 지속적으로 발전했다. 선명한 붉은색 빛깔은 고귀함을 상징하기도 했다. 색깔을 내는 염료를 얻는 방법은 색깔이 있는 식물 등에서 추출하는 고된 작업이었기에 비싼 가격이었고 서민들이 사용하기에 어려움이 있었다.

18세기 서구에서 철강을 제련하기 위해 석탄 사용이 급증했다. 좋은 강철을 만들기 위해서 석탄에 섞여 있는 불순물을 제거해 코크스로 높은 화력을 낼 수 있었다. 코크스가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휘발성 물질은 가스로 활용되었지만 흙갈색의 걸쭉한 물질도 함께 나왔다.

석탄의 진물처럼 나온 이 물질을 콜타르라고 불렀는데, 초기에는 옻칠처럼 나무 표면에 칠을 하는 방부제로 활용되었다. 그러나 산업혁명이 일어나면서 엄청난 양의 석탄이 사용되었고, 그 과정에서 콜타르도 급증했다. 넘쳐나는 콜타르는 활용처를 찾지 못했고, 강물로 흘러들어가면서 치명적인 환경오염을 유발했다.

룽게가 발견한 침전현상, 1850
룽게가 발견한 침전현상, 1850

1834년 독일에서 화학교수로 일하던 룽게는 낮은 급여로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화학지식을 활용한 소위 벤쳐 사업을 꿈꾸던 그는 당시 고가로 판매되던 염료를 개발하는데 관심을 가졌다. 버려지던 콜타르를 가공한 결과 파란색 물질을 추출할 수 있었고, 이 물질은 옷감을 염색하기에 충분했다.

룽게는 자신의 발견을 활용해 염료 공장 설립을 주장했으나 경영자들은 이 위대한 발견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실망한 룽게는 다양한 연구를 시도해서 제안했으나 갈등만 증가할 뿐이었다. 결국 1851년 해고되었다.

56세에 일자리를 잃은 그는 자신의 작은 연구실로 돌아갔다. 기업체에서 운영하는 대형 연구시설이 사라지자 부엌 한쪽에서 소량의 물질을 활용한 작은 기구들을 가지고 연구를 이어갔다. 화학약품도 정말 아껴야 했기에 한 방울 한 방울씩 사용하고 분석해야 했다. 약품을 아끼기 위해 새로운 시험 방법을 개발하기도 했다.

약품 분석을 위해 종이에 한 방울 떨어뜨린 뒤 그 퍼져나가는 모습을 관찰하는 것이었다. 그러던 중 우연히 새로운 사실을 발견했다. 먼저 한 약품을 종이에 떨어뜨린 뒤 말린 후 다른 약품을 그 위에 떨어뜨리자 두 번째 물질이 퍼져나가면서 불규칙한 원형 침전물이 형성된 것이었다. 분명 새로운 관련성이 있었고, 기존에 알려진 전기나 자력과는 다른 원인이었다.

룽게는 새로운 시도로 발견된 다양한 형태의 색상을 이용한 아름다운 모양에 감탄했다. 화학을 이용한 새로운 예술작품으로 생각했고, 그림들을 모아 책으로 출판해 당시 프로이센 왕이었던 빌헤름 4세에게 증정하기도 했다. 룽게의 선물에 빌헤름 4세는 아주 재미난 책이라고 손수 답장을 하기도 했다.

룽게는 여러 화학 물질을 이용해서 다양한 형태의 모양을 만드는 데 성공했지만, 그 현상을 설명하는데 과학적인 분석보다 철학적인 방향으로 움직였다. 침전이 형성되는 힘이 동물이나 식물에 존재하는 기의 영향으로 서로 합쳐져서 만들어지는 현상이라고 주장했다.

코로나19 신속항원 검사 원리
코로나19 신속항원 검사 원리

룽게와 달리 과학적으로 분석한 사람들도 있었다. 독일의 화학자인 쇤바인은 푸른 색깔인 리트머스 용액을 종이를 길게 잘라서 담가 두면 종이를 따라 물이 올라오면서 파란 색깔도 함께 따라 올라가는 것을 관찰했다. 반면 황산과 리트머스를 섞어 붉은빛을 띠는 액체에서는 종이를 따라 올라가면서 세 개의 층으로 나뉘어지는 것을 발견했다.

가장 빨리 올라가는 것은 물 성분이었다. 그 보다 낮은 층에는 황산, 가장 아래에는 물과 황산, 리트머스가 섞여 있었다. 쇤바인은 종이를 이용해서 물질의 성분을 각각 분리할 수 있다는 실마리를 주었다. 쇤바인의 연구에 관심을 가졌던 것은 그의 제자인 고펠스뢰더였다.

고펠스뢰더는 좁고 긴 종이에 다양한 용액과 염료를 이용해 분석했다. 용액에 종이를 담그고 이동한 거리를 측정하고 성분이 나누어지는 지 관찰했다. 여러 가지 다양한 성분과 환경, 압력을 가하기도 하고 진공으로 만들어보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다양한 시도는 오히려 결과가 모호하고 여러가지로 나와서 결론을 내기 어렵게 만들었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단순히 물질의 이동뿐 아니라 종이와의 결합력 등 다양한 영향을 받는다는 점이었다.

흔히 사용되는 종이를 이용해 물질을 분리할 수 있다는 영감은 과학자들 사이에 전파되었고, 종이뿐 아니라 다양한 재료를 활용한 실험이 이어졌다. 물질을 단순히 분리하는 것을 넘어서 물질이 이동하는 경로에 원하는 물질과 반응하는 성분을 미리 놓아둘 경우 특정 물질의 존재 유무를 확인할 수 있었다. 항원과 항체의 면역반응이 발견되면서 의학적인 활용도가 높아졌다. 가장 먼저 활용된 분야는 여성의 임신 확인법이었다.

임신할 경우 특정 호르몬의 농도가 높아져서 혈액이나 소변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나 검사에 많은 시간이 필요했고 화학적 방법이 동원되었다. 종이에 호르몬에 반응하는 물질을 부착해 두면 소변이 이동하면서 해당 물질과 결합해 특정한 색깔을 나타내게 할 수 있었다.

쉽고 간단하면서 금방 확인이 가능한 이 방식은 임신 확인에 획기적인 변화를 주었다. 임신뿐 아니라 다양한 몸의 상태나 질병 유무를 확인하는 방법으로 사용될 수 있었다. 반면 한계도 명확했다. 체액 성분에 해당 물질의 농도가 낮거나 반응이 미미하게 일어날 경우 확인이 쉽지 않았다.

코로나19 진단 검사에도 같은 원리로 이용되는 신속항원검사가 활용되고 있다. 면봉을 코 안쪽 깊숙한 곳까지 넣어 충분한 양의 검체가 확보될 경우 짧은 시간에 코로나19 감염 여부를 확인할 수 있다. 검체 채취가 불충분할 경우 반응이 일어나지 않기 때문에 감염된 사실을 놓칠 수 있는 단점이 있다. 결과 해석에 주의해야 하고 의료진의 판단이 필요하다.

자가키트의 경우 자신이 직접 채취하기에 검채가 부족할 수 있다. 증상이 있고 확진자가 접촉했을 경우 자가키트에서 음성이라 할지라도 코로나19 감염 가능성이 높으므로 반드시 의료기관을 방문해서 전문가용 신속항원 검사를 진행해야 한다.

이동훈 원장
이동훈 원장

그러나 자가키트 보급에만 신경쓰고 검사 결과에 대한 교육이 부족한 결과, 자가키트 음성만 믿고 사회 활동을 하면서 매일 수십만명의 확진자가 발생하는 대규모 유행을 초래했으니 안타까운 일이다.

지역 의료기관들이 사력을 다해 많은 확진자를 발견하고 최선을 다해 진료와 치료를 진행하면서 피해 규모를 줄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나 현재 상황은 쉽지 않다. KF94 마스크 착용만이라도 강조하고 싶은 안타까운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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