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76년 3월 10일 그레헴 벨은 연구 중 황산을 옷에 쏟았다. 놀란 나머지 조수였던 왓슨을 찾았다. “왓슨, 이리 좀 와, 자네가 필요해!”라는 벨의 목소리는 전화선을 타고 다른 곳에 있던 왓슨에게 전달되었다. 곧 벨이 있는 곳으로 달려간 왓슨은 응급조치를 취하면서 축하했다. 최초로 전화 통화가 성공한 것이었다. 전화기 개발이 성공하면서 많은 사람이 새로운 통신장치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최초의 전화 통화가 의학적 목적이었지만 사람들은 주목하지 못했고, 의료계에서는 의사들을 호출하거나 의견을 교환하는 용도로 사용되었다. 간간이 전화를 통한 진료 경험이 의학 학술지에 기고 형태로 소개되기도 했다. 전화기가 개발된 지 불과 2년 뒤인 1878년 전화기를 통해 숨소리를 전달할 수 있고, 통화 품질을 높일 경우 청진기와 비슷할 수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전문가들은 심장이나 폐 소리를 청진해 분석하는 것은 많은 훈련이 필요하고, 잡음이 섞일 수 있는 전화 통화로는 한계가 있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소리를 녹음할 수 있는 장치가 개발되어 재생이 가능하면 이런 단점을 극복할 수 있지 않을까 한 것이다.

그런데 정말 얼마 뒤 에디슨이 녹음기를 발명했다. 전화 음량을 증폭시키는 기술까지 개발되면서 전화기를 통한 진료가 가능해질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수십 배 증가된 심장 소리와 호흡음은 너무 시끄러웠고, 진단적 가치보다 불편함을 초래했다. 진료의 중요한 과정 중 하나였던 청진음을 먼 거리에 있는 의사에게 전달할 수 있다는 사실은 획기적인 것으로 여겨졌다.

전화 원격진료 기대 불구 한계

1879년 미국 의학전문지 란셋에 익명의 기고 하나가 소개되었다. 미국의 한 엄마가 놀란 소리로 의사에게 전화를 한 것이다. 아기 숨소리가 쌕쌕거리고 기침할 때 컹컹거리는 것 같았다. 경험이 많은 할머니는 성대 부위가 급격하게 부어올라 호흡곤란으로 사망할 수 있는 급성후두기관지염으로 생각했다.

전화를 받은 의사는 놀란 엄마를 진정시키며 아기를 전화기 근처로 데리고 와서 기침을 하게 해보라고 했다. 의사는 기침 소리를 듣고 대답했다. “급성후두기관지염이 아닙니다” 엄마와 할머니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가정은 평화로운 밤을 보낼 수 있었다. 만약 이 통화가 없었다면 이 가족은 아기와 함께 응급실을 방문해서 불안한 가운데 진료를 기다려야 했을 것이다.

전화를 통한 원격 진료가 도움이 될 것이라는 기대와 함께, 단순하게 통화한 것으로 진료비를 낼 것인가에 대한 의문과 대면 진료를 기피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왔다. 새로운 기술 발전과 더불어 이를 활용하는 의료인도 나타났다. 진짜 전화기 진료에 나선 의사들이 나타난 것이다. 전화 진료를 통해 큰 돈을 벌 것이란 희망을 가지고 시작한 의사들은 얼마 뒤 큰 실망에 빠졌다. 얼마 안 되는 수익에 비해 너무 많은 업무와 시간이 소모된 것이었다. 특히 당시 신기술이었던 전화 통화료는 상당히 고액이었다.

전화 통화의 장점도 분명 있었다. 1887년 영국에서 성홍열이 유행하자 환자와 접촉을 줄이기 위해 전화 통화가 시도되었다. 그 결과 불필요한 환자 접촉이 적어 질병 확산을 줄일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게 되었다. 특히 병상에 설치된 전화기는 환자 병실까지 가지 않더라도 수시로 상황을 파악할 수 있는 유용한 도구였다. 입원실에서 환자를 돌보던 전공의들은 전화기를 통해서 교수들과 소통할 수 있게 되었고 빠른 치료가 가능해졌다.

전화가 모든 문제점을 해결한 것은 아니었다. 의사들은 항상 전화기 옆에 대기할 수 없었고, 수십 분 혹은 몇 시간씩 응급 전화를 받지 못하는 상황도 발생했다. 의사들은 개인적인 약속이나 혹은 응급환자를 수술하는 경우도 있었다.

당시 전화기는 교환원이 중간에서 전화 회선을 연결해 주는 형식이었다. 1879년 미국 동부 매사츄세츠주 로웰이라는 도시에서 근무하던 전화교환원 4명이 모두 홍역에 감염돼 격리되어 전화기는 연결되지 못했다. 의사였던 파커는 응급환자 진료에 차질이 발생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전화번호를 알파벳순으로 정리한 전화번호부를 제작했다. 교환원을 위해 시작된 전화번호부는 사업용으로 각광을 받았고, 곧 다른 곳에서도 전화번호부가 제작되기 시작했다.

종합병원 의사들의 필수품 된 ‘삐삐’

전화가 보급되면서 중요한 전화번호를 기록한 책자들이 발간되었다. 전화번호부에는 관공서나 상점뿐 아니라 의료기관 전화번호도 등록되었다. 과거 의사들은 치료 효과를 본 사람들이 새로운 환자를 소개하는 방식의 홍보가 전부였다. 전화번호부의 등장은 의료기관의 새로운 홍보수단이 되었다. 몸이 불편한 경우 전화번호부에서 가까운 의료기관을 찾아서 전화로 문의하거나 진료를 예약할 수 있었다.

전화의 유용성은 모든 의료기관으로 전파되었다. 하지만 의사들은 24시간 내내 사람들의 사소한 질문에 응답해야 하는 것이 피곤하고 고된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결국 일부 의사들은 사적 전화를 공개하는 것을 꺼리기 시작했고, 병원은 당직자만 대기해 응답하는 방식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1900년대 초 전선 없이 무선으로 음성을 전송하는 기술이 개발되면서 라디오 방송이 시도되기 시작했다. 초기 무선 통신은 군사용으로 활용되면서 국가에서는 개인적인 전파 사용을 금지하기도 했다. 1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무선 전파를 이용한 상업적 방송이 시작되면서 라디오는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게 되었다.

1949년 무선 전파를 연구하던 앨 그로스는 특정 주파수에만 반응하는 작은 수신기를 개발해 특허를 냈다. 그로스는 이 수신기를 의사들이 가지고 있다가 응급환자가 발생하면 병원에 전화를 걸어서 응대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1949년 그로스는 새로운 수신 장치를 가지고 필라델피아에서 열린 의학 학술대회에 참가했다. 그로스의 장치를 본 의사들은 난감해했다. 수신기에 즉시 응답하지 못할 경우 환자와 갈등이 생길 수 있으며, 개인적인 휴식시간까지 침해당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뉴욕의 한 종합병원이 그로스의 장치에 관심을 가졌다. 종합병원은 많은 의사와 간호사들이 근무하며 여러 공간에서 진료나 연구 활동을 하기에 문제가 발생했을 때 담당 의료진을 찾기 쉽지 않았다. 간호사가 담당 의료진에게 무선 장비로 호출하면 의사들은 수신음을 듣고 해당 장소로 이동하거나 전화로 응답할 수 있었다. 한국에서는 ‘삐삐’로 소개된 무선호출기는 종합병원 의료진에게는 필수품이 되었다.

새로운 과학기술이 개발되면 가장 빠르게 활용하는 분야 중 하나가 의학이다. 질병의 원인을 찾고 빠르게 치료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이 사용될 수 있다. 실시간으로 통화할 수 있는 전화가 처음 발견되었을 때 원격의료에 대한 많은 기대가 있었다. 그러나 현재는 한계도 명확하게 존재하는 것이 확인되었다.

최근 인터넷과 스마트폰의 발전으로 원격의료의 새로운 시도가 진행 중이다. 코로나19 재택 환자들에게 전화 상담을 통한 관리를 시행하고 있다. 이동하지 않기에 감염 위험성을 줄인다는 장점이 있지만, 비대면으로 생체 징후를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은 쉽지 않고 의료진에게는 더 많은 시간이 소모된다.

지난 20일 공공부문 의료인력을 코로나19 환자 진료에 최대한 투입하라는 문재인 대통령의 지시와 함께 재정 지원도 예고했다. 용인시 보건소는 만성질환 환자 진료량이 경기도 31개 시군 평균보다 6배 많다. 용인시 보건인력이 고혈압, 당뇨환자를 진료하는 동안 일부 증상이 나타난 코로나19 확진자가 보건당국과 접촉하지 못하고 평소 다니던 의료기관에 연락하는 경우도 발생하고 있다.

현재 한시적으로 비대면 진료가 허용되어 지역 의료기관에서 처방할 수 있다. 하지만, 용인시민의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해서라도 용인시 보건인력이 코로나19 환자 진료에 집중할 필요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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