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사광선을 피해 습하지 않은 건조한 곳에서 밀폐 보관하세요.’ 

커피 원두를 구매하면 보관방법에 이같이 표기되어 있는 문구를 본 분들이 많을 것이다. 커피는 지난번 로스팅 시간에 밝힌 것처럼 생두에 열을 가해 섭취가 가능하게 만든 가공식품이다. 그렇다 보니 로스팅 과정 중 고온의 열로 인해 생두가 가진 수분은 대부분 증발하게 되고, 그로 인해 유해한 균과 곰팡이의 번식에 노출되는 위험이 낮은 식품 중 하나이기도 하다.

원두의 유통기한을 살펴보면 대부분 6개월에서 1년으로 표기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하지만 제조일로부터 유통기한에 따른 원두의 변화와 그에 따른 보관방법에 대해 정확한 정보 공유가 되지 않다보니 맛있는 커피를 유지하지 못하고 버리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이번에는 커피 원두의 제조에 따른 유통기한과 보관 방법에 대해서 알아보고자 한다.

갓 볶은 원두가 좋을까?

몇 년 전 모 프로그램 소개되었던 ‘착한커피’의 정의를 보면 신선한 커피는 로스팅을 한 뒤에 곧바로 추출이 된 커피여야 한다고 소개된 바 있다. 정말 곧바로 로스팅한 커피가 신선한 커피일까? 물론 신선함의 기준은 커피가 기호식품인 것처럼 그 기준 또한 개인의 성향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일반적으로 커피는 생두에 열을 가해 원두가 되어 갈 때 일어나는 마이야르 반응으로 이산화탄소가 발생한다. 이산화탄소는 커피가 열에 의해 원두 속의 다공질이 넓어지면서 그 안에 향기 성분과 함께 갇히거나 곧바로 배출된다.

소비자들이 원두를 구매할 때 원두봉투에 붙어 있는 아로마밸브로 배출되는 이산화탄소를 마시며 향기가 좋다고 느끼는데, 이산화탄소와 함께 향기 물질이 배출되기 때문이다. 그렇듯 이산화탄소는 커피가 본래 가지고 있는 품질을 저하시키는 요인이기도 하다.

한편으로는 산소와 만나 산패가 진행되는 속도를 늦추는 고마운 역할을 하기도 한다. 이때 원두가 지닌 이산화탄소를 배출해주는 것을 디게싱(Degassin)이라고 하며, 분쇄된 상태일 경우 디게싱의 시간은 짧아진다. 그렇듯 착한커피의 기준이 되는 신선함이 맛이라면 갓 볶은 원두는 착한커피가 될 수 없지만 장기보관을 위한 신선함이 기준이 된다면 착한커피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디게싱 시간은?

이산화탄소가 완전히 배출되는 시간은 커피 배전도에 따라서 달라진다. 강배전으로 갈수록 원두 속 다공질이 넓어 디게싱 시간이 짧고, 약배전으로 갈수록 다공질이 좁아 디게싱 시간은 길어진다. 물론 배전도 뿐만 아니라 디게싱에 영향을 주는 요인은 많다.

생두의 밀도, 생두가 지닌 수분 함유량, 로스팅 시간, 보관 시 외부 온도, 습도, 산소와 닫는 시간 등 많은 요인이 있다. 또한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로스팅 후 곧바로 분쇄해 포장했을 때 입자 크기가 작아지다 보니 디게싱 되는 시간은 더욱 빨라진다. 때문에 커피를 오래두고 보관하며 마시기 위해서는 되도록 원두(홀빈) 상태로 보관을 하는 것이 좋다.

커피를 내려 마실 때마다 분쇄해 마시는 것이 향미를 유지하며 마실 수 있다. 디게싱은 대체적으로 강배전일 경우 2일에서 5일 정도의 시간이 소요되며, 중배전일 경우 7일 정도, 약배전일 경우 10일 정도의 시간이 소요된다. 일반적으로 커피의 향미 품질이 좋은 기간은 제조 후 1주에서 4주 사이이며, 환경에 의해 원두의 컨디션은 변할 수 있다.

커피의 산패에 대해

커피라는 유기물은 빛과 열, 그리고 공기 중 산소 및 균과 효소 등에 작용해 산화되는데 이것을 산패라고 한다. 산패가 되면 커피 향미의 변화와 원두 자체에서도 불쾌한 향을 느낄 수 있다. 산패를 최대한 막기 위해서는 빛과 열을 멀리하고 산소 공급을 차단해 주는 것이 가장 효율적이다.

원두의 디게싱이 끝나게 되면 산패 속도는 이산화탄소를 머금고 있던 시간보다 더욱 빨라지며, 산패가 진행될수록 커피는 오일을 밖으로 배출하게 되고 불쾌한 기름진 맛과 향을 가지게 된다. 물론 배전이 높을 경우에는 산패와는 무관하게 커피가 가지고 있는 오일을 배출하기도 한다. 이때 오일은 맑은 색을 띄며, 산패가 진행되었을 때 배출된 오일의 색은 노란색을 띄어 오해하지 않아도 된다.

원두의 보관방법과 선택

커피를 보관하기 위해서는 결과적으로 낮은 온도와 습도, 빛이 없고 공기의 접촉이 최대한 적은 보관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이 좋다. 그 외에 소포장을 해서 밀폐용기에 담아 두거나, 커피 보관을 위한 전용 냉장, 냉동고를 활용하는 방법도 좋다.

그리고 되도록 원두 상태로 보관하는 것이 좋고, 분쇄돼 있을 경우에는 가급적 빠른 시간 안에 마시는 것이 커피의 향미를 유지 하는데 좋다. 제일 좋은 방법은 디게싱이 완료된 소량의 원두를 구매해서 1주일 사이에 소비하는 것을 추천한다.

마트에 가서 식품을 고를 때 생산일, 유통기한을 보며 장바구니에 담는다. 완제품으로 나온 식품의 경우 소비해야 하는 기간이 정해져 있지만 숙성을 거쳐야 하는 식품들은 다르다. 일정기간 숙성을 거쳐야 비로소 그 식품이 가진 본연의 맛이 나오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커피가 그런 종류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디게싱을 또 다른 말로 커피의 숙성시간이라고 한다.

이렇듯 커피는 꽤 민감한 식품이자 음료이다. 사람을 매료시킬 많은 향미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가공환경과 추출환경, 그리고 보관환경에 따라 수시로 변하는 변덕쟁이이니 말이다. 만약 원두를 구매했다면 하루하루 변하는 커피의 향미를 느껴 보고, 가장 맛있는 변덕쟁이의 시간을 맞춰 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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