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성만
오성만

혈기방장하고 푸릇푸릇했던 청년은 환갑을 넘긴 지 두 해가 지나가고 있습니다. 황금 들녘, 벼 이삭이 고개를 숙이듯이 제 나이도 어느덧 고개를 숙이는 나이가 되었습니다.

들녘을 가득 채웠던 알찬 벼를 다 베어내고, 해 저무는 텅 빈 들녘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퇴임을 앞두고 만감이 교차합니다. 수확의 기쁨은 없고 괜스레 아쉬움만 찔끔찔끔 삐져나옵니다.

돌이켜 보니 세월을 제대로 낚지 못한 아쉬움이 가득합니다. 나름 열정적으로 그리고 치열하게 살아왔다고 자부합니다. 하지만, 머리로 아는 것과 몸으로 느끼고 실천한다는 것은 하늘과 땅만큼 거리가 멀다는 걸 뼈저리게 겪고 체감한 세월이었습니다. 그저 앞만 보고 겁 없이 무작정 달려왔습니다.

그러나 내 영혼은 늘 춥고 곤궁한 날들이었습니다. 결핍을 통해 성장했고, 성장하는 과정을 통해 완전하지 않더라도 온전해질 수 있었습니다. 추위에 떨어본 사람만이 햇빛의 고마움을 안다고 합니다. 이제 그 햇살 한 줌을 주머니에 담아 봅니다.

누구에게나 화양연화(花樣年華)한 시간과 세월은 있지요! 꽃이 만개해 그 향기가 벌과 나비를 희롱하고, 푸릇푸릇한 잎사귀 같은 청춘의 시간이 바람에 흔들려 내는 인생에서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순간들이 있었습니다. 이런 세월을 지나고 보낸 후에야 비로소 깨닫는 것 같습니다.

인생은 일장춘몽이란 것을…. 그러나 선각자는 “세월은 가는 것이 아니라 오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때가 오고 또 새로운 계절이 자리하면서 사람은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과일처럼 익어간다고 합니다.

후학을 가르치고, 그림을 그려 온 지 어언 35년의 세월,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지요? 강산뿐만 아니라 제 삶이 꼭 그렇습니다. 물속에서 자라는 수초처럼 일렁이며 살다 보니 언제나 나를 힘들게 하는 것은 나였습니다. 어떤 이들은 미술을 통해 후학들에게 꿈을 심어주고, 그림을 그려오면서 자기만족을 다 느끼고 살아온 나를 부러워하는 이도 있습니다.

그 부러움이 무엇인지 되물으니, 나만의 퀘렌시아(Querencia) 즉, 영혼의 안식처가 있음을 부러워하고 있었습니다. 그 퀘렌시아가 바로 그림 그리는 일이며, 지금까지 나만의 아우라를 작품을 통해 마음껏 펼칠 수 있는 그 모습이 참 보기 좋다고 합니다. 부럽다고 말합니다.

돌이켜 반조해보니 삶의 단계들을 지나오면서 일궈낸 것을 어떻게 한껏 지고 가느냐가 아니라, 지금까지 가지고 있는 것의 군더더기와 버려야 할 것들을 어떻게 훌훌 털어내느냐가 가장 큰 화두로 자리 잡습니다. 비워내야 새로운 것을 채울 수 있듯이, 이제 욕망과 집착을 덜어내고 마음자리를 비워내면 스스로 빛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새는 날아가면서 뒤돌아보지 않는다고 하지요. 이제 날아가는 새처럼 지난 세월을 뒤돌아보지 않고, 자유롭게 창공을 날아다니는 나이 든 젊은 청년으로 살고자 합니다. 세월이 흘러 잊을 만할 때, 제 작업실에서 얼굴 마주하며, 소주 한잔 기울이면서 회포를 풀어보는 것도 좋을 듯합니다. 웃는 얼굴로 다시 봅시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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