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윌리엄 브록케돈은 시계를 고치던 아버지가 사망하자 15세의 나이로 가업을 이어받았다. 13살 때 아버지를 도와 번개에 맞은 교회 시계탑을 수리한 경험이 있을 정도로 재능이 많았다.
 

브록케돈이 개발한 흑연가루 압축 기계
브록케돈이 개발한 흑연가루 압축 기계

런던에서 본격적으로 기술을 배워 고향으로 돌아와서 5년간 시계 수리공으로 일하던 그는 남는 시간에 그림을 그리곤 했다. 그의 그림을 눈여겨보던 지역 인사가 영국의 수도 런던으로 유학갈 수 있도록 후원했다. 브록케돈은 6년간 공부하면서 화가로서 큰 성공을 거두었다.

1815년 프랑스 나폴레옹이 워털루 전투에서 패배하고 영국에서 프랑스 등 유럽으로의 여행이 자유로워지자 브록케돈은 파리와 알프스 등을 여행하면서 그림과 여행기를 쓰면서 작가로서도 큰 명성을 얻게 되었다. 당시 화가들은 밑그림을 그릴 때 숯을 이용했는데 잘 부스러져서 사용하기 불편했다.

1796년 프랑스 화가 콩테는 한 논문을 보다가 흑연을 이용한 필기구에 관심을 가졌다. 흑연은 과거에도 도자기 염료로도 사용되었는데, 중세 이후 화약무기가 발달하면서 대포알 제작에 활용되면서 국가적 차원에서 엄격하게 관리됐다.

브록케돈이 개발한 흑연 가루 압축 기계 모식도
브록케돈이 개발한 흑연 가루 압축 기계 모식도

흑연 성분은 광택제 등 다양한 용도로 사용법이 확대되었다. 그 중 하나는 필기도구로 활용하는 것이었다. 나무나 쇠 사이에 흑연을 넣은 뒤 글씨를 쓰면 부스러진 흑연 가루가 종이나 천과 같은 물질에 부착되면서 고정되었다. 흑연 역시 상당히 잘 부러지는 특성으로 다루기 쉽지 않았는데, 프랑스에서 콩테라는 화가가 흑연을 점토와 혼합해서 반죽한 뒤에 도자기처럼 구워 보았다.

그 결과 상당히 단단한 흑연 조각을 만드는데 성공했다. 연필로 알려진 흑연 필기도구는 학자나 화가에게 꼭 필요한 도구가 되었다. 브록케돈 역시 연필을 이용해 밑그림을 그린 뒤 채색하곤 했다.

연필은 화가뿐 아니라 문서 기록 등 다양한 부분에 활용돼 매년 엄청난 양의 흑연이 소모되었다. 흑연을 절약하기 위해 당시 과학자들은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었는데, 브록케돈도 부스러진 흑연 가루를 모아서 압축한 뒤 재활용하는 방법을 생각했다. 시계 수리공이어서 생각한 것을 만드는 것을 어렵지 않아 곧 새로운 기계를 제작했다. 가루를 작은 홈에 모아 넣고 강한 압력으로 눌러버리자 단단한 덩어리로 뭉쳐졌다.

새로 만들어진 흑연은 연필로 쓰기에 적당한 강도를 가졌다. 가루로 된 다른 물질들도 새로운 기계에 넣어서 눌러보자 단단하고 동그란 물질로 변했다. 흑연 가루로 연필심을 만들 수 있었던 브록케돈의 기계는 사업적으로 큰 성과를 거두지는 못했다. 그러나 이 기계에 관심을 두고 있었던 것은 전혀 다른 업종에 근무하던 사람이었다.

버로스와 웰컴이라는 젊은 사업가는 약품을 제조하는데 브록케돈의 기계가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당시 약품은 추출된 결정들을 액체에 녹여서 먹거나 혹은 가루에 약간의 물기를 묻혀서 환제로 만드는 방식이었다. 동양에서도 약초를 물에 끓여서 추출한 탕약과 가루를 꿀이나 밀가루 등을 이용해서 동그란 형태를 만든 환약 등이 있었다.

약초를 직접 물에 추출하거나 환제를 만들 경우에 가장 문제가 된 것은 약초 특유의 맛과 향이었다. 자극성이 강한 쓴 맛을 없애기 위해 달콤한 식품을 이용하기도 했고, 환약에 얇은 금박을 입혀 삼킬 때 쓴 맛을 못 느끼게 하는 방법도 동원되었다.

우황청심환 역시 보관과 복용의 편리를 위해 얇은 금박을 입힌 것이다. 동그랗게 만들어진 환약은 물에 녹인 액상형 제제보다 오래 보관할 수 있었으나 보관 유통 과정에서 세균에 오염되거나 부패하기 쉬운 약점이 있었다. 2011년 대한예방한의학회지에 실린 논문에 의하면 일부 환약제에서 곰팡이균이 발견되기도 했다.

서양에서도 동양과 유사해 약초를 물 등에 끓여서 복용하거나 약초가루로 환약을 제조했고, 쓴맛을 없애기 위해 금박을 입힌 것도 비슷했다. 18세기 화학이 발달하면서 환약 제조 과정에 추가되는 물질이 약효에 영향을 주거나 변질시키는 것이 발견되었다. 특히 순수 성분들이 발견되고 약초 자체보다 순수 결정 형태의 물질을 활용하기 시작하면서 제조과정에 추가되는 물질에 대한 거부감이 생기기 시작했다.

브록케돈의 기계는 가루 형태의 순수 물질을 강력한 힘으로 압축해서 다른 물질의 도움 없이 단단한 알갱이로 만들 수 있었다. 버로스와 웰컴은 1879년 제약회사를 설립하고 압축기계를 이용해 의약품을 생산하기 시작했다. 단단한 정제 형태의 약품은 균질된 함량을 가지게 되었고, 장기간 보관이 가능해졌다. 특히 먼 거리를 여행해야 하는 경우 아주 유용했다.

약초를 물에 끓여서 추출하는 방식은 성분이 얼마나 잘 확보되었는지 확인하기 어려웠고, 약효도 들쭉날쭉 할 수밖에 없었다. 추출된 성분을 물에 녹여서 복용하는 방법은 불편했고, 가루는 용량을 확인하기 쉽지 않았다. 정해진 용량을 알약 형태로 만들어질 수 있게 되면서 약효를 보다 명확하게 분석할 수 있게 되었다. 어느 용량에서 효과와 부작용이 발생하는지 확인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코로나19 치료제로 주사제가 아닌 먹는 알약 형태의 약품 개발 소식이 들려오고 있다. 백신 개발에 성공했지만 돌파감염이 여전한 것처럼 다양한 형태의 치료제는 일상으로의 회복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하지만 생활 속 감염을 줄이기 위한 노력은 계속되어야 할 것이다. 코로나19는 우리에게 안전에 대한 투자는 더 이상 미루어서는 안 된다는 점을 알려주고 있다. 용인시도 시민에게 보여주는 형태의 전시행정보다 시민 안전을 위한 투자에 보다 많은 예산을 배정해서 시민 건강을 지켜주는 방향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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