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92년 10만명이 넘는 왜군이 부산에 상륙하면서 임진왜란이 시작되었다. 왜군의 주력 무기는 여전히 칼과 활이었지만, 조총이라는 이름의 큰 소음과 함께 빠른 속도로 날아오는 탄환은 막을 방법이 없어 조선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임진왜란 이후 조선군은 빠르게 총기 위주로 군 병력을 재편했다.

이후 여진족이 중심이 된 후금과 청과의 전투에서 사용되었다. 1616년 만주 지역에서 활동하던 누르하치는 칸으로 자칭하며 후금을 건국했다. 명나라는 후금을 공격하기 위해 조선에 파병을 요청했다. 임진왜란 당시 큰 지원을 받았던 조선은 강홍립을 총지휘관으로 조총병 3500명, 활을 가진 궁병 3500명, 창과 칼로 무장한 보명 3000명 등 모두 1만3000명의 전투병과 5000명의 보급부대로 구성된 지원군이 꾸려졌다.

1619년 2월 압록강을 건넌 조선군은 3월 4일 만주 심하지역에 도착했다. 평지에서 갑자기 나타난 후금의 기마부대에 채 진을 치기도 전에 전투가 벌어졌다. 전방을 담당해야 할 명군은 순식간에 무너졌고 조선군은 총기로 후금의 기병대와 대치했다. 갑자기 모래바람이 불 때 돌격한 후금의 기병대에 조선군은 단 한 번의 사격 이후 재장전할 시간도 없이 순식간에 무너졌다. 절반이 넘는 8000여 명이 전사하고 고립된 5천명을 이끌던 강홍립은 후금군에 항복하게 된다.

총기는 전쟁의 방향을 바꿀 만큼 큰 충격을 주었지만 중세시대에는 사정거리와 정확도가 떨어지는 한계가 있었다. 당시 군 지휘관들은 이런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 총을 든 병사들이 모여서 일제히 같은 목표에 대해 사격하는 전술을 사용했다.

영화에서도 간혹 보이는 장면으로 군악대의 신호에 맞추어서 걸어가다가 한 줄로 나란히 서서 상대를 향해 총을 쏘는 어떻게 보면 죽음을 각오하는 황당한 전술이다. 낮은 명중률로 집단 사격을 해도 상대를 쓰러트리는 확률이 높지 않았고, 공포로 인해 진형이 무너지는 쪽은 역으로 집단 사격의 목표물로 전락하기에 엄정한 군기를 가지고 마지막까지 사격 진형을 유지하는 쪽이 승리하는 것이었다.

1789년 프랑스 대혁명이 발생하고 혁명의 전파를 우려한 주변 국가들과 전쟁을 벌여야 했던 혁명군은 의용병을 조직하기 시작했다. 얼마 뒤 전국민을 대상으로 대규모 징집을 했다. 총을 들 수만 있으면 넓은 곳에 서서 상대를 향해 사격하는 병사가 한명이라도 더 많을 경우 유리했기 때문에 전투의 규모는 갈수록 커져갔다. 그에 비래해서 희생자도 급증했다.

당시 총기의 화력 수준은 모든 병사들에게 치명상을 입히지 못했지만 엄청난 숫자의 부상병은 의료 역량을 초과했다. 부상 부위의 감염 등으로 고통에 시달리다가 사망하는 경우가 많았다. 프랑스 군의관 장 라레는 부상병을 전투 현장에서 빠르게 후송해서 부상 부위를 치료하는 구급차량 개념을 도입해서 많은 병사의 생명을 구할 수 있었다.

그러나 많은 환자들을 순서대로 치료하자 살릴 수 있는 환자의 진료가 늦어져 오히려 희생이 커진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응급환자와 경상자를 구분하기 위해 팔에 각각 빨간색, 노란색, 초록색, 검정색 천으로 표시하고 팔의 찬 천의 색을 보고 치료 순서를 결정했다.

장 라레의 환자 분류법은 대규모 재난 상황에서 환자 구조에 도움을 줄 뿐만 아니라 평소에도 한정된 의료 자원을 효과적으로 이용한다는 개념으로 현재까지 많은 영향을 주었다. 가벼운 경증 질환은 지역 의료기관을 이용하고, 중증 위급한 환자는 대형 의료기관에서 담당하는 기본 원칙이지만 현실에서 잘 지켜지는 것은 아주 어려운 일이다.

대한민국은 의료기관 이용률이 아주 높고 응급의료기관도 예외가 아니다. 2019년 응급의료통계연보를 보면 전국적으로 응급실을 방문한 환자는 1021만명이나 된다. 이 중 847만명은 응급 진료 후 퇴원했고, 입원 치료가 필요했던 환자는 177만명이었다. 응급실 이용자를 전부 응급환자로 볼 수 없고, 전체 내원환자의 20~30%만이 응급환자로 추정되고 있다. 나머지 70~80%의 이용자는 비응급환자로 야간이나 휴일에 이용할 만한 의료기관이 없거나 빨리 치료 받고 싶거나, 입원대기를 위한 환자로 추정되고 있다.

문제는 이런 비응급환자로 인해서 응급 환자의 진료에 차질을 주고 있다는 것이다. 보건복지부가 2015년 발표한 응급의료기관 평가 결과에 의하면 2014년 과밀화지수가 100%를 넘는 응급실이 있었다. 이는 100%가 넘는다는 의미로 병상이 부족해서 내원환자가 간이침대, 의자, 바닥 등에서 대기하는 상황이라는 뜻이다.

응급실 병상에 여유가 있다고 하더라도 의료진이 부족한 경우에는 추가로 환자를 수용할 수 없다. 과중한 업무와 위중한 환자에 집중하다보면 격무로 지친 의료진들의 휴식 시간도 필요하다. 응급환자를 의료기관에 이송하는 것으로 이송팀의 업무는 끝나겠지만, 응급환자의 투병이 끝난 것이 아니다. 환자는 응급실에서 의료진과 함께 삶을 위한 힘겨운 투쟁을 이제 막 시작하는 것이다. 지역 의료기관 역량이 부족하거나 상급 의료기관의 치료가 필요할 경우 재 이송이 필요할 수 있다.

이동훈 원장
이동훈 원장

코로나19로 응급 환자 이송이 더 어려워진 상황에서 의료기관이 환자를 수용하지 못하는 이유는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최근 경기도 소방소방재난본부의 담당책임자 중 한 명이 현장 상황을 단편적으로 파악해서 의료기관 수용 거부를 살인행위라고 표현하면서 비난했다. 응급환자를 이송하는 기관의 편의를 위해 모든 의료기관이 역량을 초과하는 환자를 수용하는 것이야 말로 환자의 생명을 위협하는 행위다.

머리를 맞대고 지혜를 모아야 할 상황에서 갈등을 조장하고 불신을 키운다면 아주 부적절할 것이다. 응급상황에서 환자를 이송하는 팀이나 환자를 받아 응급치료를 담당하는 의료진 모두 환자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서 노력한다. 2019년 윤한덕 중앙응급의료센터장은 설 연휴기간에도 응급 환자를 대비하면서 근무하던 중 순직했다. 응급의료기관들은 목숨을 걸고 환자를 구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저작권자 © 용인시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